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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 | 칼럼·시평 [문화칼럼]
익숙한 도시를 새롭게 만드는 브랜드
박재항 글로벌브랜드&트렌드 대표(2024-01-10 10:03:08)


익숙한 도시를 새롭게 만드는 브랜드


박재항 글로벌브랜드&트렌드 대표


2012년 겨울, 모터쇼 참관을 위하여 방문한 중국 남부의 대도시인 광저우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공항부터 2008년 올림픽 이후 최신 설비로 개비한 상하이나 베이징과 확연히 차이가 났다. 중국어가 서툴기는 했지만 그럭저럭 통했던 북부의 도시와는 달리 광동어(廣東語)의 높은 벽에 가로막혀 서로 튕겨 나오기만 했다. 출장의 주목적이었던 모터쇼의 준비 상태를 보러 개막 전날 전시관에 갔는데, 가설 전시대를 망치로 두드리는 소리가 이곳저곳 나고, 조형물들이 자리를 잡지 못해 통행로 곳곳에 쌓여 있는 등 도저히 다음 날 모터쇼 개막식이 거행되리라고는 생각할 수 조차 없는 형편이었다. 


처음 1997년 광저우에 왔을 때와 별반 달라진 것 같지 않았다. 당시 세계 주요 도시에서 소비자 조사를 시행하며 다니고 있었다. 중국에서는 상하이를 거쳐 광저우에서 조사를 하기로 하고 방문했다. 미국의 광고 회사 친구들과 함께 갔는데, 미식가이면서 대식가였던 미국 광고 회사 대표가 상하이에서부터 중국 음식을 거북해 하다가, 광저우에 와서는 음식 냄새까지 맡지 못하는 지경이 되었다. 광저우 음식, 특히 고수 향에 질색을 하며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부하 친구들이 전전긍긍하고, 나까지도 괜히 죄스러워지는 분위기였다. 두 번째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마치고 방에 들어왔는데 미국 대표 친구가 신나는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중국 음식 먹느라 고생했지? 광저우에서 아일랜드 음식점을 찾았어. 거기서 음식 포장해서 내 방에 풀어 놓았으니까, 와서 같이 먹자고.” 광저우에 아일랜드 음식점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호기심에 그의 방에 올라가니, 테이블 위에 맥도날드 빅맥과 감자튀김이 무더기로 놓여 있고, 모두 세상 그런 산해진미가 없다는 듯 맥도날드 광고에 나오는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햄버거를 먹고 있었다. 광저우 첫 방문을 그림 한 장으로 남긴다면 바로 그 맥도날드 빅맥 뭉치였다.

 

그 자신이 제국이었지만, 이빨 빠진 호랑이로 서구 제국들에게 속절없이 당하던 시초가 된 1840년 제1차 아편전쟁이 발발한 곳이 바로 광저우였다. 이후 중국 공산당의 집권과 함께 물러났던 서구제국주의가 이제는 패스트푸드를 앞세워 중국으로 밀려드는 느낌이 들었다. 그 뭉치는 15년이 지난 후에도 계속 남아서 광저우의 인상을 지배하고 있었다. 실망스런 모터쇼 준비 상황과 프랑크푸르트나 제네바와 같은 서구 대도시의 모터쇼와 확연히 차이가 나는 어설픈 진행이 광저우 전체의 이미지로 규정되었다.


어쨌든 모터쇼를 끝내고 특별히 광저우 지방색을 띄지 않은 풍성한 중국 음식과 고량주가 어우러진 회식이 이어졌다. 회식 후에 일행 모두 호텔 방으로 들어가는데, 베이징에서 근무하는 주재원이 내 팔을 잡아 끌었다. 광저우를 제대로 알려면 야식을 맛봐야 한다고 했다. 마침 광저우 출신으로 그와 베이징 사무소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가 고향에 내려와 있다며 함께 보자고 했다. 그렇게 만난 광저우 토박이 친구는 베이징이나 상하이에 비하면 광저우는 시골이라고 자기비하와 같은 말로 안내를 시작했다. 그런데 광저우가 먹는 것 하나는 대도시보다 훨씬 맛있고, 다채로우며 무엇보다 따뜻한 겨울 날씨 속의 야식을 먹어야 광저우를 제대로 맛본 것이라고 했다. 그에 이끌려 광저우 시내를 흐르는 주강(珠江)가의 야시장과 같은 곳들을 돌아다니며 새벽 4시까지 새우죽이나 광둥식 닭튀김 등을 먹었다. 1차 회식으로 포만 상태였지만 밤길 산책과 곁들여서인지 장소를 옮기면서도 새로운 곳에 들어갈 때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입맛이 돋았다. 베이징의 친구가 흥에 겨워 주강 다리 위에서 각자 시를 지어 읊자고 했다. 다른 친구들이 어떤 시를 읊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술기운 잔뜩 서린 어설픈 낙서 같은 나의 구절들은 남겼다.


在廣州夜食 (광저우에서 야식을 먹으며)

君請月下遊 (그대가 밤거리를 함께 노닐자 하였지)

南冬鰕粥類 (따뜻한 남쪽 겨울에 새우죽류를 먹었네)

珠江何千流 (주강은 몇천년이나 흘렀나?)

友情億萬留 (우리 우정은 억만년을 두고 남으리)


광저우 시민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생활리듬은 다른 도회와 확실히 달랐다. 야시장에서의 풍경과 음식이 1997년의 첫 방문에서는 느낄 수 없던 광저우의 속살들을 드러냈다. 맥도날드와 제국주의의 침략 교두보로 떠오르던 광저우의 제1연상이 바뀌었다. 새우죽을 비롯한 야식으로 시작하여 강변 경치와 다리 위의 달빛, 시를 함께 읊던 우정과 치기어린 서정으로까지 이어졌다. 역사적으로 중국을 굴욕의 시대로 빠트린 제국주의의 상처와 상하이나 베이징과 같은 규모나 첨단성에서 앞서 간 거대 도시들의 존재 속에서도 광저우는 그 모든 것들을 뒤로 하며 ‘낭만 도시’로 내게 각인되었다. 


이렇게 이름을 들으면, 사람들에게 떠오르는 한 마디가 바로 브랜드의 가장 대표적이고 쉬운 정의 방식이다. 이런 브랜드가 도시를 대상으로 했을 때 ‘도시 브랜드’라고 한다. 광저우라는 도시에 대한 개인의 회고담 형식으로 얘기했지만, 한 꺼풀 들어가보면 도시 브랜드를 구축하는 데 저지르고 있는 잘못들과 그래서 고쳐야 할 대목들을 찾을 수 있다. 


첫째, 도시 행정당국이 내세우는 브랜드 목표는 제대로 먹히지 않는다. 광저우 시당국은 2000년대 초 모터쇼를 개최하면서 첨단 중대형 산업 도시의 이미지를 심고자 했다. 중국의 개방 이후 보통 캔톤 페어(Canton Fair)라고 하는 중국 수출입박람회가 대형 경제 이벤트로 자리를 잡았으나, 너무 경공업에 경도되었다고 판단해 모터쇼를 발족시켰다. 그러나 위에 적은 것처럼 앞서 오랫동안 모터쇼를 개최해왔던 도시들과의 격차만 두드러지며 낙후된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둘째, 약점을 인정하면서 반전을 꾀하라. 서구 제국주의 침략이 시작된 곳, 1년 대부분 후덥지근한 날씨, 중국내에서도 상하이와 베이징이라는 양대 도시에 밀리는 형국 등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자연적, 통계적 사실이다. 광저우 친구는 이런 사실들을 먼저 얘기하며 동의를 구하고는, 그래도 음식, 그 중에서도 밤에 먹는 야식이라는 좁은 범위에서는 광저우도 쓸 만하다는 식으로 유도했다. 자신을 낮추며 관용을 끌어내고, 동정심까지 얹은 공감으로 잇는다. 


셋째, 소소한 강점의 인정을 바탕으로 더 넓은 분야의 긍정적 인식을 이끌어낸다. 새우죽으로 시작한 야식의 만족이 달밤 광저우 주강 강변 산책으로 이어졌고, 우정을 다지는 시회(詩會)라는 작은 문화 행사까지 자발적으로 행해졌다. 결국 광저우 시당국이 슬로건으로 부르짖지는 않지만, ‘낭만’이라는 단어를 브랜드로 남겼다. 


서울시를 제외한 전국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꾀하는 도시 브랜드는 심하게 말하면 ‘서울처럼 되고 싶다’는 ‘욕망’과 ‘서울 만큼 한다’는 ‘인정’의 외침과 몸부림이 주를 이룬다. 결과는 유감스럽게도 차이와 한계만 더욱 크게 노출하기 십상이다. 아주 작은 부분에서라도 서울이나 다른 도시, 지역과 다른 점을 찾아보라. 지역의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게 곁에 언제나 있던 것이라 지나쳐버린 것이 도시 브랜드를 새롭게 새기는 발화점이 될 수 있다. 그 새로움은 외부인들에게 만이 아니라 지역민에게도 자신의 도시를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 ‘친숙한 것을 새롭게 만들거나, 새로운 것을 친숙하게 만들 때 시가 된다’고 했는데, 도시 브랜드 역시 마찬가지이다. 


박재항   

뉴욕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마케팅을 공부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 《브랜드 마인드》 저서와 공동저자로 참여해 ‘일차대전과 국가 브랜딩’, ‘광고 마케팅과 문화상품의 상호작용’ 등의 글을 발표했다. 이러한 연구 활동을 기반으로 인문학, 브랜드 마케팅, 트렌드의 결합을 계속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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