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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2 | 인터뷰 [문화를 짓는 사람들]
서로를 억압하지 않는다, 서점 카프카와 소설가 강성훈
서점 카프카 대표 강성훈
문신 시인˙편집위원(2024-02-07 17:42:15)


인터뷰 | 서점 카프카 대표 강성훈

서로를 억압하지 않는다,

서점 '카프카'와 소설가 강성훈


전주시 중앙동. 오래된 건물 2층에서 만난 서점 ‘카프카’는 오후였다. 얇은 유리창을 투과해온 햇살이 사선을 그었고, 걸음을 디딜 때마다 마룻장이 삐걱거렸다. 마치 오후의 햇살이 흰 발목으로 뛰어다니는 듯했다. 그 소리는 한편으로, 책이 내지르는 함성 같기도 했다. 어떤 목소리에 이끌리듯 낯선 이의 책 한 권을 꺼내 펼쳐보았다. 첫 페이지를 열었을 때, 거기 한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한 권의 책과 같다. 이것은 얼마쯤 위험한 발상이다. 그럼에도 부정할 수 없는 건 책이 오래전부터 위험한 인격이었다는 사실이다. 책을 읽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밀도가 높고, 그만큼 외부의 충격에 예민하게 반응할 줄 알았다. 그 충격을 고스란히 내면에 품어낼 줄도 알았다. 그렇게 눌러놓은 내면을 살려내는 일은 스스로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것. 그러므로 한 사람의 인격은 하나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강성훈 대표



불이 다 꺼진, 아무도 없는 무대는 거대한 무덤 같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어둠의 밀도가 점점 높아진다. 심판대 같은 무대 한가운데 홀로 서 있다. 곧 어둠은 폭발한다. 그리고 나는 우주처럼 거대한 검정 알에서 깨어난다. / 그렇게, 유일하게 죄를 사하는 방법은 부활이다.


- 못(2013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중에서


인용문은 강성훈의 등단작 '못'의 마지막 부분이다. 알다시피 ‘부활’은 기독교적 세계관의 핵심이고, 나아가 그것은 유한성에 발목이 잡혀 있는 인간의 부질없는 꿈이기도 하다. 다시 사는 것 혹은 거듭 사는 일은, 그러나, 신의 영역보다는 인간의 일이 될 때 빛나는 듯하다. 그래서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부활’이라는 화두를 멋지게 풀어냈지 않은가, 예술이라는 환상의 형식으로. 어쩌면 강성훈 대표가 소설을 쓰는 일은 일상을 거듭 이야기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라는 형식으로 거대한 우주를 다시 ‘깨어’나게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하나의 인격, 두 개의 이야기

서점 ‘카프카’의 주인 강성훈 씨. 그는 2013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된 소설가다. 공교롭게도 그는 소설가로 등단한 해에 서점을 열었다. 서점 이름은 좋아하는 독일 작가 카프카의 이름을 가져왔다. 카페와 서점을 겸하는 공간 카프카는 그의 삶을 실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책방지기와 소설가라는, 닮은 듯 서로 다른 삶의 길이 강성훈 대표를 잘 설명해준다.

“책과 함께 있는 공간이 저에게 가장 편안한 곳입니다. 카페만 했으면 달랐을 텐데, 서점을 함께 운영하면 장사인 듯 장사가 아닌 걸 경험하게 됩니다. 이곳에서 틈틈이 소설을 쓰고 있지만, 아직은 만족할만한 성과가 없네요. 등단 이후에 있었던 소설 청탁도 시간이 가면서 끊어졌어요. 그래서 몇 년 전부터는 장편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차츰 소설 쓰는 속도가 더뎌지는 것 같아요. 그래도 손에서 소설을 내려놓은 적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운명이라는 불가해한 힘을 믿지 않지만, 돌이켜보면 자기 삶이 운명적이었다고 믿는 경우가 있다. 삶은 뜻대로 전개되지 않아서 곤혹스럽지만, 그 뜻하지 않음이 사실은 현재의 나를 만들어왔다. 가끔 자기 삶이 저녁놀처럼 흐려진다면 그 ‘뜻밖의’ 일들 앞에 다소곳해지면 된다. 소설을 쓰는 일도, 서점을 운영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프란츠 카프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말이란 서투른 등산가이며 서투른 광부이다. 그래서 그것은 산의 정상에서도 산의 깊은 곳에서도 보물을 꺼내오지 못한다”라고. 어쩌면 강성훈 대표가 프란츠 카프카를 좋아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자기 삶에는 서투른 법이니까.

“대학교에 입학해서 서른다섯까지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목표였어요. 그렇지만 책은 열심히 읽었어요. 그렇다고 문학청년의 열병을 앓았던 것 같지는 않아요. 소설을 끄적이긴 했지만, 딱히 작가가 되고 싶은 열망이 크지는 않았던 듯합니다. 그래도 찬 바람 부는 11월이 되면 저절로 신춘문예를 떠올렸고, 운명처럼 소설을 썼어요. 2~3년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덜컥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소설을 공부했던 것 같습니다.”

강성훈 대표의 이야기를 듣고 떠오른 건 또다시 카프카의 말. “인생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두 가지 과제: 너의 범위를 점점 더 좁힐 것과 너의 영역 밖 어디엔가 네가 숨어 있지 않은지 계속해서 살펴볼 것.” 카프카의 말처럼, 우리는 거대한 가능성으로 태어나 결국에는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우리는 조금씩 자기 이야기를 써나가면서 혹시라도 이야기 바깥에 소외되어 있을 자기 존재를 탐색한다. 강성훈 대표가 소설을 쓰는 일이 바로 그러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동안 서점 카프카의 책들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저것들이 사실은 하나의 범위이자 영역이자 이야기가 아닌가! 그러자 강성훈 대표야말로 온갖 자기 이야기로 들끓는 아우성의 한가운데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권의 책과 하나의 세계

독서 인구가 줄고, 책의 온라인 유통이 늘어나면서 서점은 사실상 제 기능을 잃어버렸다. 서점 카프카도 마찬가지다. 이제 서점은 책만의 공간이 아니다. 서점이라는 공간, 책이라는 대상은 SNS에 업로드될 이미지, 즉 하나의 오브제처럼 보인다. 실제로 서점 카프카에는 SNS에 사진을 올리려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다. 그 이미지가 계속해서 재생산되면서 젊은 사람의 발길이 이어진다. 이 또한 책과 서점이 동시대를 호흡하는 방식이리라.

“저는 중개상, 매니저라고 생각해요. 소비자와 서점 사이의 연결 다리죠. 독자에게 좋은 책을 어떻게 만나게 해줄까 고민해요. 그렇다고 베스트셀러만 가져다 놓으면 또 의미가 없어요. 그래서 고민이 많아요. 제가 생각하는 문학성을 독자에게 강요할 수는 없잖아요. 책을 가져다 놓을 때 제 취향이 많이 반영되지만, 우리 시대가 요구하고 독자들이 찾는 책을 외면할 수는 없죠. 책방의 절반 정도는 저의 안목이고, 나머지는 독자의 안목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서로 다른 생각이, 서로 다른 감각이, 서로 다른 이야기가 서점 카프카에 고여 있다. 한국 소설과 외국 소설이 나란히 꽂혀 있고,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의 숨결이 얽혀 있다. 서점은 그렇게 다름이 충돌하는 격전지여도 좋을 듯하다. 아니, 사실은 오랫동안 카프카는 사유와 눈빛과 언어가 충돌하는 현장이었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 첨예하게 이야기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를 지나는 동안 십여 개의 모임이 해체되고 이제 두 개가 남아 있다. 독서 모임 하나와 서평을 쓰는 모임 하나. 모임을 꾸려가는 이유는 분명하다. 서점은 이제 책을 유통하는 기능적인 공간에 머물러서는 곤란하다. 그건 소설가인 강성훈 대표의 정체성과도 맞물리는 일이다. 그냥 소설을 쓰는 소설가가 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소설 쓰는 시간보다 어떤 소설가가 될 것인가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지도 모른다.

“소설을 쓰는 일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스타일을 만들어가고 싶은 마음과 요즘 소설의 트렌드를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늘 갈등하죠. 하지만 목표는 잘 쓰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작가적 정체성에 관해 누군가 물어온다면 아직은 어색하고 불편합니다. 서점 주인이 조금 편안한 것 같아요. 그래서 카프카에 오신 분들이 좋은 책을 만나면 좋겠어요. 그리고 여기에서 충분히 책을 읽고 가시면 좋겠어요.”



소설가이지만 소설에 얽매이고 싶지 않은 강성훈 대표가 좋아하는 구절은 “문학은 억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억압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이다. 문학평론가 김현의 책 '한국문학의 위상'의 한 대목이다. 앞서 인용했던 그의 등단작 마지막 대목을 떠올리게 한다. 그가 말하는 부활이란 인생을 다시 사는 게 아니라 인생에 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그의 소설은 인생을 말하지 않을 것 같다. 대신 그는 인생을 이야기하는 것의 의미에 관해 곰곰 생각하게 할 것이다.

이것이 서점 카프카에서의 오후다. 햇살이 조금 더 예리하게 기울었고, 투명한 유리창에 산란하는 빛이 부옇게 내려앉고 있었다. 그가 추천해 준 세 권의 책 '목구멍 속의 유령', '어떻게 지내요', '장엄호텔'이 테이블에 놓여 있었다. 앞의 책은 에세이이고, 뒤의 두 권은 소설이다. 기묘한 그 배치가 서점 주인 강성훈과 소설가 강성훈의 현재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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