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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1 | 인터뷰 [문화와사람]
역사의 그늘, 삶의 사슬
최정주(2003-12-24 11:53:52)


 소설가 崔正柱(본명 ··38)를 만나본 사람이면 으례 그의 인상을 말하기를 「매우 뚝심있어 보이는 작가다」라고 한다. 이말은 그가 살아가며 부딪치는 주변 현실들과 그의 내면에서 지조있게 지키고 있는 작가의식이 서로 팽팽히 긴장된 모습으로 나타나 현실에 대한 당당한 극복의지가 있음을 일컫는다. 소설이란 쉽게 말하면 하나의 구성을 가진 이야기이다. 이때 ‘이야기’는우리가 살아가면서 볼 수 있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 작가가 있음직한 어떤 사실을 꾸며 가공적으로 만들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소설이라고 할 때 단순히 「아름답고 슬픈」이야기를 넘어 읽는 이로 하여금 「세상 안에 있다」라는 진한 감동과 함께 「세상을 새롭게 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줘야 하는 의무를 소설은 갖는다. 이때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과 미의식(美意훌뼈, 그의 언어와 탁월한 문체가 요구된다. 80년대 몇 안되는 소설가중의 한사람이다. 그의 작품이 발표될 때마다 현실을 우화적으로 표현해내는 구성과 투박한 문체로 독자들과 문단의 충격을 던진 바 있다. 특히 현실의 알레고리의 한 단위로서 「안개」를 설정, 혼미한 우리 시대의 현실올 날카롭게 꿰뚫어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데뷔 이후6,7년 동안에 그가 발표한 작품만 보아도 얼마나 의욕적으로 현실과 끊임없이 긴장을 유지해왔는가 알수 있다. 또한 작품이 발표될 때마다 평론가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아왔다. 「그늘과사슬」 「술래의 시간」 「안개와박쥐」등의 중편과 「붉은부리갈매기」「안개길」 「야근」 「사라진 날」등의 단편은 80년대의 어둡고 긴 터널을 그가 치열하게 살아왔음을 단적으로 입증하는 한 예가 된다. 이처럼 그가 소설속에서 확보하는 공간은 그릇된 역사가 드리우는 그늘과 그 그늘 안에서 음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또는 독재와 유신의 시대에 삶의 모든 좌표가 불투명해 한치 앞도 가늠하기 힘든 현실을 피작가 특유의 알레고리 수법으로 형상화 해내고 있다. 그가 입버릇처럼 뇌이는 「소설은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에서 엿볼 수 있듯 작가는 소설의 근본적인 테마는 이야기 속에 있음을 환기시킨다. 우리 시대와 역사 상황의 주변을 살아가는 이야기 속에 상징과 우화의 수법으로 그려나가는 그는 건강한 우리시대 작가임에 틀림없다.


 『중구는 역의 플랫포옴에 내려섰다. 후덥지근한 열기와 함께 도시의 시멘트 냄새가 그를 반겨주었다. 촘촘히 터잡은 몸뚱이의 땀구멍들이 금방이라도 땀을 몸밖으로 내보낼 준비를 서두르느라 일제히 스멀거렸다. 중구는 18년 전 겨울의 귀뿌리를 떼겠다고 덤비던 추위를 떠 올렸다. 눈발이 날리던 밤이었다. 꽁꽁 언땅 속에다 어머니를 묻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다시는 찾아오지 않으리라. 삭막한 가슴에 소주를 부어넣으면서 수십 번도 더중얼거혔다.』1982년 韓國文學 백만원고료 신인상에 준당선한 그의 소설 「그늘과 사슬」첫 대목이다. 「그늘과 사슬」은 일본인 스즈끼와 한국여인 사이에서 태어나 한국인과 일본인도 되지 못하는 역사를 전공하는 지식인 姜中九의 정신적 갈둥과 고뇌를 그리고 었다. 소설의 발단은 주인공 중구가 18년만에 하향하면서 시작된다. 어머니의 묘가 파해쳐지고 있는 전보를 고향의 친구로부터 전해받은 주인공이 지나간 날들을 우울히 추억하며 고향인 N시로 돌아오는 전형적인 소설구조를 「그늘과 사슬」은 갖추고 있다. 고향 마을 뒷동산에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가말 부락은 전기(轉織)를 맞는다. 가말 부락은 중구에게 있어 어두운 유년의 기억들로 가득차 있는 저편의 세월이었다. 그런데 묘를 이장하던 중 가말 부락의 대표적인 강씨문중의 사람들이 뜻하지 않은 죽음을 겪는다. 강씨 문중은 중구에게는 의붓아버지 문중이다. 이에 문중에서는 새삼스럽게 중구 어머니의 묘가 자리잡고 있는 터를 이유삼는다. 중구의 모친 묘가 강씨 문중 선산 쪽에 엉덩이를 향하고 있어 그같은 망칙함을 당했다고 주장하며 묘를 파헤친다. 이같은 대립은 어린시절부터 중구에게 다가오는 뼈아픈 실존 위기이다. 중구의 의붓아버지가 공산을 넘어온 빨치산들의 짐을 지고 끌려갔다가 돌맞은시체로 발견되었을 때에도 시체를 마을 근방까지 끌고 온 강씨 문중 사람들은 중구 어머니나 어린 중구를 근접하지 못하게 했고 결국은 중구의 집을 방화해 버리는 사태를 일으켰다. 이처럼 갖은 수난과 박해 속에서 자라온 중구는 또다시 M대학 일본어과 파견 교수인 와다나베로가 데리고 온 記者에 의해서 갈등을 겪는다. 마에다 712는 일본이 패전 후 40여년 동안에 놀라운 경제적 도약을 해왔으나 가장 중요한 어떤 것을 빠뜨렸음을 지적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패전후 한국 땅이나 중국, 동남아시아의 곳곳에서 그땅을 지배하고 살았던 일본인들이 본국으로 후퇴하면서 빠트리고 간 것이 있읍니다. 즉, 자신들의 씨앗이죠 다시 말하면서 일본인의 씨앗말입니다.』결국 중구는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서 태어난2세로서 뼈아픈 갈등속에 휩싸이면서도 그의 몸 속에 흐르고 있는 일본인의 피에 대해서 한국인으로서의 강한 자각을 갖는다. 그러나 와다나베 교수의「우리는 이땅에 언젠가는 돌아옵니다. 화려하게」라는 결의에서 우리에게 일본의 문제가 심각한 것임을 보여주는 「그늘과 사슬」은 곳곳에 우화적인 소설 장치를 곁들이면서 소설 읽는 재미도 십분 보여준다. 중구는 그러나 다시 한국여인을 사랑하게 되면서 더욱 고뇌를 느낀다. 강씨문중 사람들의 턱없는 문중에 대한 집착과 중구에 대한 배타가 끝내 비극으로 몰고가게 되는 「그늘과 사슬」은 한일 민족간의 변화와 갈등을 그린 문제작으로 취급되어왔다. 이와 함께 「술래의 시간」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실종된 아버지의 80년 생애를 통해 일본인들로부터 수탈당한 한국인의 고통을 그린 역작으로 평가받았고 「눈과 발톱」은6 ·25때 부친의 과거로 인하여 상처를 안은 아들의 좌절과 방황을 그린 심리소설로서 「여름 우화」는 석달의 장마 끝에온 마을을 끓게한 소문을 어린 아이의 시각을 통해 그려진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그림으로써 작가의 역량을 키워왔다.
중편 「그늘과 사슬」(700장) 「술래의 시간」(300장) 「눈파 발톱」(400장)「여름 우화」(300장) 둥 도합 1700장으로 이루어진 그의 첫 창작집은 시적인 문장과 빈틈없이 짜여진 구성, 역사의 그늘 속에서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삶의 옥최이는 사슬로 독자에게 감동적인 주제를 전한다는 명을 얻었다.
또 「붉은부리갈매기」 「안개길」 「야근」 「사라진 날」둥의 단편을 통해 삶의 고귀한 진실들을 보여주고 있다. 답답하고 질식할 것만 같은 현실에 대해 인간에 대한 믿음과 역사의 진실들을 신념으로 보여주는 작가 崔正住는「내 가슴에 어떤 피가흐르건 상관없이난 한국인으로 살아왔오」라는 말이 암시하듯 조국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작가 崔正住는 이른바 「안개정국」이라고 불리우는80년 벽두에 「안개를낚다」라는 희곡이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후 소설로 전환하여 왕성한 창작을 보이며 지금까지 중편 5편, 단편 20여편에 가까운 작품을 발표했다.
그는 소설을 통해 세상을 선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려는 자세를 터득했고,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소설의 재미와 감동의 체험으로 이 세상이 아름다운 자리임을 알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소등을 타고 논두렁을 돌아다닌 일이나 독사가 많은 골짜기에 소 풀 먹이러 다녔던 유년이 기억이 많다. 특히 비오는 날 비탈에서 풀짐지고 돌아오다 넘어졌던 어두운 유년의 기억들은 그의 소설 공간에 깊숙이 감추어진 빛나는 것들이다. 예민한 감성의 사춘기 시절 中3때 기차를 타고 막막히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했던 감정들이 소설산기의 시작이 된 그에게 있어 가난하고 궁핍했던 삶은 큰 스승이다. 작가 崔正住는 요즘 「분단문학」과 관련 작품을 구상중에 었다. 일제때 경성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민족계몽운동에 뛰어든 한 실존인물의 삶을 통해 주인공이 갖게 되는 사회주의 시각과 해방이후 反美운동을 시작하면서 미군부대 앞에서 데모를 주동하다 당국에 체포 투옥되고 감옥에서 나와 보도연맹에 가입 6 ·25때는 면 인민위원장을 거쳐 지리산에 입산, 정통 사회주의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숙청된 주인공을 조명하리라 한다.
첫 창작집 r그늘과 사슬」에 이어 고려원 소설문고판으로 『술래의 시간』2권의 작품집을갖고 있는 그는 올 봄 새로이 창작집을 묶을 계획이다. 복잡하고 다양한 현실 상황을 짧고, 간결한 문체로 그려나가는 작가 崔正住는 현재 「全北日報」에 〈달빛그림자〉를 연재 중에 있으며 부인 周季順여사(38)와의 사이에 아들 東國(6)과 딸 東轉(2)와 함께 南原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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