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1989.7 | 칼럼·시평 [문화칼럼]
음악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최동현(2004-01-27 11:53:24)


 음악은 〈조직화된 소리〉이다. 음악은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 조직은 인간적인 특성을 갖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음악은 허공에서 그냥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식적인 노력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다시 말하면, 음악은 인간 〈활동〉, 곧 삶의 소산이다. 인간의 삶은 활동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변에는 이러한 기본적인 사실조차도 모르거나, 무시해 버린 생각들이 널리 퍼져 있는 실정이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은, 음악이란 인간의 삶이니 생활이니 하는 것과는 별개로서, 독립자재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생각의 밑바탕에는 보편성을 추구하려는 서양의 〈知〉의 활동의 전통과, 칸트의 미학, 그리고 이를 계승한 그 이후의 수많은 이론, 곧 〈심미성〉에 관한 엄청난 양의 연구의 결과물들이 놓여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형식주의니 구조주의니 하는 것들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음악, 넓게는 예술 일반을 바라보게 되면, 예술이란 인간의 삶이나 활동과는 무관한 것이 되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언제나 흥문화적(inter--cultural)으로 통용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그래서 서양의 음악이 우리 나라에서도 통용될 수 있으며, 중국의 음악이 우리 나라에서 통용될 수 있다는 주장이 생겨나게 된다. 실제 그 동안 우리 나라에서 행해졌거나 행해지고 있는 수많은 예술 활동은 대부분 이러한 전제로부터 출발한 것이었다. 그래서 미술하면 으레 서양 미술이며, 음악도 서양 음악, 무용도 서양 무용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될 정도가 되었으며, 각급 학교의 교육도 물론 그러한 전제하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음악을 포함한 모든 예술은 인간의 활동의 소산이며, 당연히 인간의 삶의 일부이다. 그러기 때문에 서양인들은 자기의 예술을 세계의 여러 지역에 퍼뜨렸으면서도, 다른 나라의 것을 가져다 자기의 것으로 삼지는 않았다. 자기들과는 다른 삶으로부터 나온 예술이 자기들에게 통용될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그 이유를 우열의 차이로 얼버무려버렸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예술이란 인간의 삶과는 동떨어진 독립 자재한 것이라는 생각은, 사실은 서양인들이 자신들의 힘을 배경으로 한 문화적 침투를 정당화하기 위한 이론일 뿐이라는 것이 명백해진다. 그러한 이론들이 본래부터 그러한 이유와 목적에 의해서 구축되었다기보다는, 출발은 어떻게 되었든 간에 결과적으로 문화적 제국주의의 이론적 무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예술은, 특히 음악은 독립 자재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의 일부라는 말은, 음악은 필연적으로 인간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가지 요소, 곧 정치 ·경제 ·문화 ·이데올로기 등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련을 맺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기 때문에 음악을 통해서 정치를 볼 수도 있고, 음악을 통해서 경제를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요컨대 음악은 사회를 정직하게 반영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나라에서 통용되는 음악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사회가 처해 있는 상황과 지향하는 바를 명확하게 볼 수가 있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 통용되는 음악은 크게 보아 서양음악(여기에는 물론 서양의 음계와 기법을 사용해서 우리 나라에서 만든 음악까지 포함된다), 중국계의 음악(소위 아악 혹은 정악), 그리고 우리 고유의 음악(민속 음악)의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여기서 물론 가장 널리 통용되는 것은 서양 음악이다. 서양 음악이 우리 나라에서 가장 널리 통용된다는 사실은 우리의 사회가 서양적인 것을 여러 측면에서 강력하게 지향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서양(구체적으로는 미국과 서유럽) 혹은 서양과 관련된 힘이 직접 ·간접으로 가장 강하게 행사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기 때문에 이 땅에서는 학문이건, 예술이건, 정치건, 경제건 모두 서양적인 것과 관련을 맺어야 성공적일 수가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훌륭한 음악가라면 누구나 다 얼른 베토벤, 모짜르트 등등을 떠올린다. 송흥록이니, 임방울이니 하는 소리꾼도 그에 못지 않은 훌륭한 음악가라고 하면 모두 의아해 할 것이다. 송흥록이나 임방울은 음악가가 아니고, 하찮은 노래 몇 마디 부르다 간 천민 정도로나 생각하는 정도이다. 일반의 인식이 이렇기 때문에 피아노를 사는 사람은 많아져도 가야금이나, 대금, 북을 좋은 악기라 생각하여 사 두고, 교육시키고 그리고 이것을 다룰 줄 아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은 늘어나지 않는다.
우리 음악은 골동품에 지나지 않아서, 〈문화재〉로는 생각하지만, 〈예술〉로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니 대우를 잘 해줄 리 없고, 따라서 돈이나 명성과도 관련이 없다. 우리 고유의 음악을 통해서는 도대체 음악가로서의 성공적인 삶을 누릴 수가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 아악이나 정악에 대한 대우는 서양 음악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우리 고유의 음악에 대한 대우보다는 낫다. 그것을 하면, 그래도 〈예술〉을 한다고 해서, 예술원 회원도 시켜준다. 우리의 음악이 홀대를 당하고, 외국의 음악이 우대를 받는다는 사실은, 우리 고유의 문화가 무시되고, 외국의 문화가 중시된다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 고유의 한국적인 삶이 무시되고, 서양적이거나 중국적인 삶이 존중된다는 것이다.
한국인으로 태어나 한국적인 삶을 거부하면서도 우리가 계속 한국인일 수 있는가? 그러고서도 자랑스런 한국인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우리 것을 거부하면서 어떻게, 무엇으로 자랑과 자부를 느낀다는 것인가? 물론 여기서 우리의 모든 것이 항상 최고의 존중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서양적인 것을 추구함으로써 얻은 결과 전체를 부정하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의 것이 최소한 다른 나라의 것만큼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여러 제도 속에서 보장되어야 한다. 우리가 이 땅에 대대손손 독립된 국가를 이룩하고 살아야 한다면, 마땅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그 이유는 다른 나라와 구별될 수 있는 특수한 그 무엇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 때에 우리의 민속음악은 최소한 음악적으로는 우리가 다른 나라·민족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공동체임을 확실하게 담보할 수 있는 훌륭한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민요 한 가락, 판소리 한 마디는 수십 만의 병력보다도 오히려 강한 우리의 군대임에 틀림없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