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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7 | 칼럼·시평 [사람과사람]
수묵회
문화저널(2004-01-27 11:54:37)


 지난 7월 1일부터 5일까지 전북예술회관 2충 전시실에서는 수묵회(修墨會)라고 하는 조금은 생소한 서예전이 열렸다. 그러나 87년 창립전에 이어 두번째 열린 이번 전시회는 그들의 패기와 의욕, 그리고 성숙을 여한없이 자랑한 전시회로 많은 사람들이 명가하였다.
우암 이 태중, 효봉 여 태명, 지당 김지섭, 산영 정 천모, 네 명으로 구성된 이들 수묵회원은 모두 30대 중반들인데 각기 다른 스승 밑에서 운필을 익혀 왔는데 하나의 동아리를 이루어 서예전을 계속해오는 것이다. 이태중은 여산(如山) 권 갑석, 여 태명은 남정(南T) 최 정국, 김 지섭은 강암(江|禮) 송 성용 정 천모는 우관(宇觀) 김 종범 선생에게서 사사했으니 그 다양함이 우선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외적인 면모보다는 그들 자신의 서예 작품들이 이미 하나의 세계를 보여주고 아울러 우리 서예의 앞날을 개척해가는 점에서 가치를 두어야 할 것이다. 임서전(臨畵展)이라고 이름 붙인 87년의 전시회는 이름 그대로 고서체(古書體)를 공부하고 나름대로 궁리한 글씨들을 선보여 이제 시작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경지의 시작이 아닌, 수묵회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2년뒤의 이번 기사전(EE展)은 고금의 모든 서체들을 망라해서 보여준 것이다. 임서뿐 아니라 전 ·예 ·해 ·행 ·초서가 있고 한글 서체 ·전각·동양화까지 모두 망라한 것이었으며 글씨의 크기나 형식까지도 종래의 안일하고 좁은 세계에서 탈피하고자 의도적으로 기획한 대 전시회가 되었다. 효용 여 태명씨(34)는 이 점에 관해 확고한 신념으로 이야기한다.“고래(古來)로부터 전해온 서체를 쓰는데 머물고만다면 그야말로 기(技)에 머물고 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서양인들은 우리가 처음 쓰는 서예 작품을 보고 경탄하는데 다시 또 그렇게 쓰는 모습을 보면 가차없이 기술로 평가하게 되죠 그래서 도(道)가 되어야하며, 부분적으로는 끊임없는 실험 정신과 함께 모든 서체를 섭렵해야 합니다.”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여 태명씨는 한때 붓이 아니라 두꺼운 종이에 날카로운 칼을 써서 글씨를 써보기도 하고 표구 방식을 매듭이나 기타 도구를 곁들여 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작업은 단순한 치기가 아닌 형태로 계속되고 있다.
30대 중반의 나이는 모든 문화 예술가들에게 있어서는 기존에 쌓았던 자기세계로 첨잠해가기 위한 시기로 보여지는데 이둘 수묵회들은 그 점을 결단코 배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은 이들의 젊음과 화려한 수상 경력에서만 오는게 아니라 수묵회의 수자가 암시하듯 끊임없이 닦고 정진하는 마음에 있는 듯이 보인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전주의 서예풍토에서도 충분히 주목받기 시작한 이들은 서예 작업을 단순한 개인적인 차원에 머물지 않고 민족 문화예술로 든든히 자리잡아 가도록 하기 위해 더욱 큰 열의를 기울인다고 한다. 말하자면 서예를 죽은 예술이 아닌, 살아있는, 그리고 살아가는 예술로 만들기 위해 지금 매달 한번씩 모여 진지한 협의와 토론을 하기도 한다. 이런저런 이유들 때문에 그래서 아직은 신입회원을 영입하는 문제는 생각지 않고 있다고 한다. 수묵회 회원들의 다음 전시회가 언제 무엇을 보여줄지는 예측할 수 없다. 이들은 지금도〈갈고〉 〈닦고〉, 그리고 무엇보다〈궁구하고〉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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