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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7 | 연재 [교사일기]
농촌교육의 새살(辭說)
이 중 수·칠보종합고등학교 교사(2004-01-27 15:22:07)

교육감의 임용장을 받고 부터 면단위 소재 고둥학교에서만 5년여를 재직하고 있는 시골교사로서 그간 안타깝게 보아 온 농촌학교의 실상을 적어보고 바람직한 방향을 조심스럽게 제시하고자 한다.
5·16정변 후 공업화에 역점을 둔 경제개발계획이 추진되면서 우리나라의 농촌사회는 경제발전의 들러리나 서는 2차적 고려의 대상이 되었고, 급기야는 실질적인 농업포기정책에까지 이르게 되어 탈농민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공업제품수출에 대한 반대 급부적인 농산물수입개방으로 농촌은 더욱 핍폐되어 대부분의 농민은 상대적 빈곤감, 소외감, 박탈감에 빠져 신음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이러한 사회 ·경제적 구조 속에 위치한 농촌의 학교가 자기 나름의 특수성을 갖지 못한 채 교육적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므로 인해서 매년 입학생 정원을 못 채워 신입생 유치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농촌지역에 소재한 실업계 고교생은 물론이고, 일반계 학생들도 인근 도회지 연합고사에 응시조차도 못했거나 낙방의 쓰라린 경험을 맛본 학생들이며, 입학당시부터 심한 열풍의식과 패배감에 빠져 있다. 그럼에도 이들에게 행해지는 교육형태는 도회지의 일반계 고교와 마찬가지로 대학진학을 위한, 소수 엘리트를 양성하는 교육형태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 대학에 진학할 학생수는 극소수에 불과하고 그외 대다수 학생들은 또 다른 절망감과 열패감 속에 학교를 마치고 스스로치욕(?)스례 여기는 도시 저임금 근로자로서의 길을 나설 수밖에 없다.
검게 그을려 땀흘리는 부모님의 모습과 초라한 농촌의 현실은 대중매체를 통해본 중류층 이상의 생활상과는 영 딴판으로, 고통스럽고 희망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무조건 도시를 동경하고, 가출을 일삼으며, 그 곳에서 접하는 열려진 도시의 향락·퇴폐문화가 그들을 구제할 수 없는 비행의 길로 몰아넣기도 한다.
돈이 최고의 가치요, 소비적 향락문화가 팽배한 사회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조건 경쟁에서 이져야 되는 강박감과 과열입시 경쟁 속에서 시달리는 것이 도시지역 학생들의 당면한 문제라면, 가난한 농촌학생들은 이러한 경쟁의 대열 속에 끼지도 못 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다행인 듯 싶으나, 기실은 열등감과 패배의식에 빠져있는 것이 분명한 현실이다.
맑은 공기 외에 모든 환경이 열악한 농촌지역 학교에 근무하는 우리 교사들은 부끄럽다. 대부분은 초임교사의 발령지인 농촌학교와 학생들을 연수지나 연수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러다가 근무연한이 차거나 연줄만 닿는다면 도회지로 전근하는 현실이 보여주듯 농촌지역학교는 점수 따는 곳, 정확히 말하자면 잠시 쉬어 가는 ‘간이역’으로 여기기 십상이다. 또한, 대부분의 교사가 왕복 2시간이상의 장거리 통근을 하고있다. 아마자녀교육 문제, 지역사회의 폐쇄성이주는 답답함 둥이 원인이겠지만, 그러다 보면 학생들의 교외생활이나 과외생활 욕구충족 면에서 적극적이지 못하여, 그들과 밀착된 생활을 할 수가 없기에 잦은 학생사고를 학생의 일방적 과오로 치부하여 ‘가정환경이 좋지않다, 머리가 나쁘고, 품행이 나쁘다’는 불명을 늘어놓기 일쑤이다. 또한 농촌의 현실과 너무나 유리된 교과내용에 대한 비판이나, 학생수준에 맞는 교과내용의 재구성 없이 교단에 서기 일쑤고, 교육관료의 지시에도 올곧은 소리 하나 내지 못하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나약한 의사 협심중이 더욱 부끄러울 따름이다.오늘도 수업료 납부 독촉을 했고, 낡은 목재 유리창틀이 빠져나가 다치지 않게 하라는 주의를 줬다. ‘충성’이라는 구호와 거수경례도 보고, 학생의 가슴속에 휴전선을 긋는 무기고의 견고한 이중 철조망과 일몰 후‘수하에 불응하면 발포함’이라는 무시무시한 경고문은 우리 교사들의 발걸음도 얼어붙게 하곤 한다.
농촌학교는 해당지역사회에 생활의 기반을 둔 교사가 많이 필요하고, 학교는 향토사회의 발전을 위한 봉사기관이어야 한다. 학생에게 학교는 ‘즐거운 꿋’이어야 한다. 소수 앨리트 양성소가 아닌, 자신감을 심어주는, 자율성을 최대한 신장시키는 그런 곳이어야 한다. 농촌지역학교는 실업계를 주축으로 자기 특수성을 살려 농촌교육 현실화에 주력해야 하고, 상대적 박탈감을 상쇄시킬 무상 의무교육 실시와 도회지 학교보다 나은 문화시설을 갖추어야 한다. 우수교사가 유치되어 농촌지역사회나 교육현실에 깊은 이해나 애정이 수반되어야 하겠고, 교사의 비판적 언행을 왜곡된 시각으로만 보아서도 안될 것이다. 겨례의 고향인 농촌을 살려야 한다. 그 길이 곧 농촌 속의 학교 교육을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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