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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8 | 연재 [교사일기]
너희야말로 이땅의 진정한 주인이다
황수지 무주고등학교 교사(2004-01-27 15:38:45)

“저에겐 돈이 최고지요, 선생님. 전 그런 놈이니까 더 이상 다른 말 마세요” 드르륵-꽝… 교무실 문이 앞 뒤로 흔들리며 닫힌다. 한숨을 내쉬며 한참동안 그 녀석을 생각했다. 열 일곱의 시골 소년인 그 아이에게 왜 돈이 최고가 되었을까? 곧 있을 여름방학 보충수업을 받아야되지 않겠느냐고 설득했던 나는 그 아이가 내 책상에 던지듯이 두고 간 오천원짜리 지폐를 보면서 부끄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보충수업비는 내겠으나 저는 구천동에 가서 돈을 벌고 싶습니다. 수업시간에 제가 앉아 있으면 뭐합니까? 수업방해만 되지 않겠어요?” 사실 그 아이가 학기초 인천으로 돈 벌러간다고 가출한 뒤 다시 돌아온 다음부터는 이미 학교는 그 애에게 별다른 의미와 보람을 주는 장소가 아닌 듯 했다. “큰 집, 높은 빌딩,많은 자동차, 화려한 백화점이 즐비하더군요. 그런데 난 왜 이렇게 답답하게 살아야 되는 지 정말 모르겠어요. 난 너무 가난해요. 화가나 죽겠어요. 선생님, 저도 돈을 벌어야 겠어요.”라고 내게 하소연한 척이 있었다. 돈이 최고라고 당당하게 말하던 그 녀석에게 뭐라고 말해 춰야할지 큰 고민이었다. 그게 아니야, 그것은 보이는 것 뿐이지 중요한 것은 마음속에 있단다 라고? 아니면 꿈을 잃지 마라, 건전하게 커라. 열심히 학교 생활하면 밝은 미래가 보장된다 라고 말해주어야 할까. 성실한 학교생활마저 농촌 아이들에겐 미래에 대한 아무런 대책을 주지 못하는 게 사실인 특히 이곳은 관광지에 근접해 있는 까닭에 여름이면 늘어선 자가용과 호사스런 피서객들을 보면서 아이들은 상대적 빈곤감과-열등감을 갖게 되는 동시에 ‘부’에 대한 환상을 갖기도 한다. 그래서 자신의 현재 상황이 지겨워지고 자꾸만 도시 아이들 흉내 내기가 일쑤다. 학년이 올라 갈수록 도시로 나가려는 욕구가 강해지고, 어렵게 참고 다닌 고등학교의 졸업장을 받으면 농촌의 아이들은 도시로 도시로 떠나, 그곳에서 저임금 노동자가 된다. 그래서 배부른 자에게 한 점의 비계를 보태주게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농촌의 고등학교는 아무런 기술과 지식이 없는 저임금노동자를 재생산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6~7명와 학생을 제외한 대다수의 학생들에게 실정에도 맞지않는 입시 위주의 교육과정을 유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 나마 학생들이 사회에 나아가서 실 생활에 도움이 되는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권리나 일터에서 필요한 법등을 또는 농촌 생활에 필요한 행정적인 요소를 조금씩 가르치면 좋지 않을까? 지난 가올 첫 발령을 받았을때의 감상적인 교육에의 열정을 되새기며 가끔씩 웃는다.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생활파 미래를 함깨 고민해 주는 교사의 소박하면서도 세심한 열정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직도 교실문을 매일 들랑거리며 교실안에 앉아 있는 학생들 하나하나를 알아 간다는 것이 두려울 때가 있다. 나에게 아니 우리의 교육이, 사회가 억센 말투와 손을 가진 아이들에게 어떤 미래를 줄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입시에서 소외되어 가고 더 나아가 사회에서도 좌절감을 맛보게될, 나를 바라보는 많은 눈망울들에게 불잡고서 뭔가를 말하고 싶다.“너희들을 옥죄는 가난과 소외는운명이 아니라”라고, 그리고 “순박한 웃음과 억센 손과 발을 가진 너희야 말로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이며, 세상을 이끄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라고.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들의 놀이터(무주 리조트)를 짓느라고 검게살을 태우고 있을 우리 반 유철이를 생각하면서 엽서 한 장 띄울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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