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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9 | 연재 [교사일기]
문화인의 '뒷간'
김판용 고창고 교사(2004-01-27 16:21:36)

개학 첫날 보충수업을 하란다. 아니 교재도 없이 무슨 수업이냐고 못 한다고 하자 교재 없으면 특강이라도 하란다. 특강? 구실도 좋다고 시적거리며 고3 아이들에게 무슨 내용이 좋을까 궁리하다가 대학과는 상관없는 어디서들은 이야기와 내 경험을 엮어 한 시간을 때운 적이 있다.·내가 국민학교 1학년 입학하고 였다. 학교 이곳 저곳을 돌며 시설물을 안내하던 담임 선생님은 무척 예쁜 여선생님이었다. 어떻게 하면 관심을 끌까 궁리를 하고 있었는데 어떤 건물 앞에 서시더니 “이곳이 뭐지요”하고 물었다. 기회다 싶어 머뭇거리지 않고 “똥간이요”했다. 그랬더니 선생님은 고개를 저으며 아니란다. 다시 힘주어 “뒷간이요”햇다. 역시 였다. 옆에 있던 녀석이 변소요”하자 웃으며 다 틀렸다는 것이다. “이곳은 화장실 이예요. 그 집의 문화수준은 화장실에 가면 알 수 있는 거예요”하더니 청결한 사용과 청소를 당부했다. 그 날 나는 분했다. 왜 우리 할아버지는 화장실을 ‘똥간’이라 하고 아버지는 뒷간’이라 불러서 나의 꿈을 무참히 깨뜨리고 무안하게 만드는가. 담임 선생님은 나를 미개인으로 여길 게 분명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선생님께서 가정방문을 나온신다 했다. 나는 가슴이 꽁꽁 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틀림없이 우리 집 문화 수준을 알아보기 위해 화장실부터 가실텐데.
걱정 끝에 결국아버지께 ‘뒷간’부터 고치갔더니 바쁜데 헛소리한다고 크게 나무랐다. 문화 수준을 높이자는데 혼줄 내는 우리 아버지는 나보다 더 미개함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슬퍼서 울었다. 그 후 풀짐 지고 오시는 아버지, 호미든 어머니를 피했다. 시장에서 때부수수한 그분들의 어정거림을 볼 때면 얼른 몸을 숨겼다. 그리고 다짐했다. ‘절대로 저분들처럼 살지는 않으리라’ 일요일 기다려 보리 베고 모내고, 아이스크림이나 초코렛보다는 고구마나 강냉이만 쩌주는, 유식한 말투보다, 욕이 앞서고 사투리나 쓰는 저급한 문화인은 되지 않으리라. 그 때 교과서엔 도시의 친구들이 휴일이면 부모랑 공원 가고, 방학 때 가족여행을 떠나는 나와는 상관없는 꿈 같은 내용들이 실려 있었고 선생님은 힘주어 가르치고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건 허구였다.
학교에서 배운 중산충의 환상과 기다리는 80년대의 신기루는 현실과 괴리를 만들며 나를 괴롭혔다. 이제 돌이켜보면 자동차나 넥타이, 주말의 레저가 아닌 지게와 호미 그리고 흙투성이가 만들어 준 나의 현재가 더욱 자랑스럽고 고맙게 생각되고 그분들의 삶이 훌륭했고 떳떳했음을 알게 되었다. 마치 국어공부를 하고 나서 화장실이 미화법이란 수사적 표현임을 알게 되었던 것처럼.
가식성도 포함된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아이들은 즐거워했다. 모처럼 입시를 비껴 가는 내용이라선지 아니면 진학하지 못하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배려에서인지, 그 어리숙한 아이와는 상관이 없다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바르게 가르친다는 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념으로 논박하고 몰고 가려던 ‘참교육’이란 단어는 아직도 교육관료들에게 알레르기반응을 일으키고 있는데 교단에서 그래도 이뤄야 할 일은 너무나 많고 무거운 것들이다. 자기 부모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교육이 우선 되어야 할 것 같다. 그러면 현실을 바르게 보며 주어진 상황들이 무조건 벗어나야 할 굴레가 아닌 든든한 삶의 터전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고물상하는 아버지를 시시하다고 업신여기던 아이 때문에 고민하던 아버지가 아이의 유치원선생님과 상의했더니 그 선생님께서 아이들을 데리고 정비소며 연탄공장 등 힘차게 일하는 곳들을 견학시켰다 한다. 고생하며 일하는 다른 아버지들을 돌아본 아이가 “우리 아빠최고 ! ”라고 으쓱대더란 이야기를 듣고 노 선생님의 교육 방법이 한계는 있으나 대견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참교육이란 그렇게 작은 일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리라. 평소 깐죽거리던 아이가 자기 부모와 같이 있다가 친구나 선생님이 지나가면 얼른 물러서 혼자만 인사하고 무춤대는 부모를 그냥 지나치게 하는 경우를 자주 접한다. 부끄러웠던 내 모습을 보는 것 갚아서 낯이 뜨겁고 아이의 행실이 밉기도 하지만 이해가 간다. 학생들에게 환상만 심고, 생산하며 노동하는 삶이 낮은자들이 이 사회에 기생하는 것 좀으로 치부되는 교육이 계속될 때, 화장실이란 단어만 고귀하고 ‘똥간’ ‘뒷간’이 미개한 사람들의 몫으로 남게 된 것이다. 그리고 고물상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그대로 고물일 뿐이다. 비약적인 일련의 이야기가 요즘 떠드는 가축의 각통질만큼이나 봉대함에 송구하게 마친 보충특강이 지금도 한구석 초름하게 걸려있음은 아마도 어줍잖은 내용과 더불어 나의 참회였기 때문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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