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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0 | 칼럼·시평 [문화칼럼]
"자연과 인간이 하나되는 참문화"
이석영 전북농촌문제 연구회 회장(2004-01-27 16:30:11)

산업혁명이란 것이 몸살을 잉태하고 있었던가! 증기기관이 발명되고, 새로운 기술혁명이 일어나서 사람이 하던 일의 많은 부분을 새롭게 개발했다는 기계가 대신 해주게 되고, 시설을 크게 하여 "대량생산"의 공장이 들어 서서 이제는 살판 났다고 생각했을 때도 뒷구석에 문제는 도사리고 있었다는 실감을 이제 이세상 모든 구석에서 느끼게 되었나 보다. 당시 영국에서 한 쪽에서는 편리한 대량생산 시설이 꾸려질 때 뒷골목에서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요사이 산업혁명의 결과물인 교회마다 있는 주일학교의 발생동기에서 알 수 있다. 글로스터(Gloucester)에 핀을 제조하는 수공업공장이 섰는데 품삯을 아끼느라 부녀자들을 고용해서 노동을 시킨 것이다. 그러니 남자어른들은 할 일 없이 거리를 방황하게 됐을 것이고 어린이들은 부모들의 돌봄을 받지 못한채 골목길에서 난잡하게 딩굴고 놀아난 꼴이 가관이었을 것이다. 그 천진하고 귀하게 자라야할 어린이들이 대단히 난폭하고 거칠게 자랄 것은 뻔한 일이었다. 그때 레익쓰(R. Raikce)가 주동이 되어 일요일에 골목말썽꾸러기들을 데려다 공부를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 주일학교의 시초라고 한다.
"능률을 숭상한다"고 한다. 총대메고 권력잡은 박씨가 국민교육헌장이라는 것을 만들고 온 국민에게 외우라고 우겨대던 일을 기억한다. 그 글에 "능률을 숭상"한다는 말이 들어 있다. 도대체 숭상이란 말은 좀 생소하기도 하고 신 같은 것을 우러러 모실때나 쓰는 말이 아닌가? 5·16군사반란 주모자들이 걸핏하면 내걸고 시끌짝하게 떠들어 댄 것이 경제개발이요 공업화요, 선진국 도약이요, 소득향상이었고 지금의 집권층도 매 한가지로 그런걸로 시끄럽다. 이런 양상이 사회 구석구석에 파급되어 야단들이다. 얼른 산을 깎아서 공장도 아파트도 짓고 논두렁을 메워서 또 이런저런것들을 지어나간다. 중장비를 동원하며 웬만한 산 하나쯤은 며칠안가서 판판해지고 덤프트럭 몇 대면 어지간히 깊은 웅덩이도 언덕으로 되어버려 요사히는 쉽사리 산과 들의 형체가 송두리째 바꿔져 버린다. 참으로 능률지향적으로 일이 되어 간다. 상점이 늘어나고 상품이 쌓이고 품질이 정말로 기막히게 좋아졌다. 공업화의 결과가 볼만하고 경제성장의 향상이 눈 부시게 찬란하다. 그러나 그 능률위주의 성장치 적은 이 땅에 이미 심각한 사회문제를 김재규씨의 능률적 처치만치 신속하지는 못해도 능률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요사히 우루과이라운드가 이 땅을 넘보게 되도록 된 것은 이미 고도성장을 외쳐댈 때에 일이 잘못되어 싹이튼 것이다. 그때 공업화를 서둘면서 시작한 것이 삼백(三白)공업이다. 밀가루, 목화, 설탕이 세가지 백색공업을 시작하면서 너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밀농사와 목화농사가 사라져 버렸다. 밀을 가지고 보더라고 그때 빵 먹으면 건강해지고 머리 좋아진다고 정부가 앞서서 홍보한 터였는지라 밀농사가 없어진 내력을 그때 집권하던 층은 알것이 아닌가? 누가 밀이 나쁘다고 했던가? 우리나라 논밭에 자라는 밀밭과 솜밭은 베르사이유궁전만치 호화롭지 못하고 이집트의 피라밋같이 웅장하지 못하며 미국의 넓은 땅덩어리 만큼 광활하지는 못해도 우리시름 많은 민중에게는 무엇에도 비길수 없는 평화와 안식의 정서를 제공해 주던 곳이다. 농사는 돈만으로 따져서는 안되는 정서가 깃들여져 있는 것이다. 이익이 많으냐 적으냐 다지는 것 자체가 돈놀이의 사고이다. 비교우위론을 말하는 것은 비행기로 농략뿌리고 기계로 비료주고 땅파는 그런 몰인정농업을 하는 나라에서나 할 소리이다. 노예를 부리는 사람을 사고 팔던 권총잽이 난폭자들의 발상이다. 자기들의 치지하고 있는 땅값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았고 농약뿌리는 비행기산업에서 번돈으로 농업용수를 위한 댐건설이나 도로개설에 들어간 돈은 곡물값에 제대로 합산하지 않았을 것이다. 농업은 자연이요, 식물은 산조제조창이다.
넓은 들에 벼이삭이 누렇게 고개 숙여 있는 풍경은 장관이요, 머리를 숙이게 하는 풍요로움과 숙연함이 거기에 있다. 그 노란 벌레 벼 이삭 몇 포기만 잡초로 남고 허허 벌판에 미국의 다국적 거대곡물 상사인 "카길"의 쌀창고 "콘티넨탈"의 밀가루 콘테이너만 설렁하니 육중하게 논발을 차지하고 우쑥 서 있을 모습을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또 "병기", "루이 드레퓌스", "앙드레" 같은 거대 곡물 상사들의 옥수수 저장창고나 쇠고기, 돼지고기 정육창고가 이들판 저들판에 자리잡고 앉아서 위용을 자랑이라고 하고 그 초라한 농촌을 내려다 보게 될냥이면 그 멸시를, 그 좌절을 어찌할려고 그러는가?
능률좋다는 "빠꾸샤" "요꾸싸" "뉴 헴푸샤"에 밀려 우리나라 토종 돼지, 토종닭은 씨가 말라버렸다. 수천년을 우리 풍토에 적응해오면서 우리 민중의 정서에 어울려 병 안들고 맛 좋던 우리 토양의 토종이 사라져 버렸으니 오오 통재라! 이 일을 어찌할꼬! 토종짐승 토종곡식만 없어진 줄 아는가? 우리의 아름답고 훈훈하며 여유 있는 우리 토종(토착)문화가 침탈을 당하고 있다. 향락문화, 소비문화, 퇴폐문화, 낭비병, 조급함, 개인주의, 투기풍조, 군사문화, 가라오케문화… 등, 이런 것은 원래 우리의 것이 아니다. 문화를 빙자한 방자함과 조급함은 우리의 문화가 아니다. 호미, 괭이, 달구지의 정서가 담긴 문화가 참 우리의 문화다. 성급함이 없고 과장이나 낭비가 없다. 알뜸함 바로 그것이다. 자연을 알고 자연과 더불어 알뜰하게 조화하면서 사는 것이다. 노동과 놀이를 조화하는 심미의 경지가 자연과 함께 깃들여 있다. 모를 심어도 여럿이 어울려 노래를 부르며 정성을 심는 양했다. 농업은 기계로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고 마음과 정성으로 가구는 것이다. 그런 정서가 온 도시와 농촌에 확산되어야 이 나라 풍토는 건실해진다. 이 집권층이 도 서둘러 생산시설의 자동화비율을 70%로 끌어올리겠다고 목청을 돋군다. 되도록 사람을 적게 쓰고 생산의 능률을 높이겠다는 심사인데 잘 생각해보라! 사람을 소홀히 다루어도 분수가 있는 법이다. 그 자동화시설 때문에 노동자 몇을 그 생산 현장에서 내몰 작정인가?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하지 않으면 하늘이 노하신다. 성경에 있는 글귀에 귀를 기울이면 하늘에서 노란 소리가 들린다.
「화를 입으리라.
죄없는 사람의 피를 빨아
성읍을 세우는 것들아
남의 진액을 짜서 성을 쌓는 것들아
담벼락 들이 원수갚아 달라고 울부짖으면
집 안에서 들보가 맞장구치리라. (하바국 2장)」
이제 우리는 농부의 알뜰함에 눈을 돌려야 한다. 알뜰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자연을 알고 노동을 익히고 참놀이를 즐길줄 아는 우리 농민의 건실한 삶을 터잡게 하고 그 알뜰하고 훈훈한 터위에 알뜰문화를 굳건하게 지탱해주어야 한다. 농사와 놀이를 자연이 조화되는 어울림의 한 마당에서 삶을 지탱하고 자연과 인간이 하나되는 참 문화를 키워나가야만 자연과 인간이 함께 훈훈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알뜰하게 살고 알뜰하게 발전하는 알뜰문화가 알차게 펼쳐지는 누리를 꾸며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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