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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0 | 연재 [교사일기]
2부제 수업과 우리교육
이정화·경남충무 인평국교 교사(2004-01-27 16:37:51)

오늘은 우리 반이 오후반이다. 앞단추가 제대로 닫게 끼워지지 않은 헐렁한 웃옷을 걸친 복암이는 오늘도 점심 거르고 학교에 온다. '점심 먹고 오기'가 매일같이 타이르는 당부이지만 저도 제 마음대로 안 되는 모양이다.
결식아동도 아닌 복암이가 점심을 거르는 건 2부제 수업 때문이다. 국교1학년인 복암이는 양식업을 주로 하는 어촌에서 생계를 잇는 가정의 사랑하는 아들이지만 바쁘고 인건비가 비싼 요즘 점심을 챙겨 먹일 사람이 없는 까닭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학교는 경상남도 충무의 변두리에 위치해 있다. 지난해부터 계속되는 택지개발로 인해 학생수가 날로 증가추세에 있다.
교실부족으로 작년에 이어 올해도 학교가 온통 공사판이다. 운동장에는 널려있는 위험스런 건축용품들이며 학교를 뒤흔드는 요란한 소리들이 피해자인 내가 가해자인 것 같이 내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그러나 신축중인 교실아 다 지어져도 내년이 되면 또 모자랄 전망이다. 항상 예상인원이 아니라 현재인원을 기준으로 예산배당이 되기 때문이다.
한달씩 오전, 오후반으로 교대를 하면서 운영해온 2부제 수업이 요즘가을 운동회를 앞두고 더욱 어려움에 처해있다. 운동장에서 연습을 하는 사이 다른 반은 교실을 쓰고 하다보니 몇 번을 들락날락 하는지 정신을 차릴 겨를이 없다.
평소 오후반이 시작되는 시간은 12시 30분인데 부모 모두가 일터에 나간 아이들은 아침부터 오거나 10시경부터 학교에 와서 운동장에서 실컷 뛰어 논다. 교대시간이 되면 아침 일찍 일터로 향하는 엄마에게 눈 비비며 받아둔 동전 몇 개로 학교 앞 구멍가게에서 점심을 해결한다. 이들이 수업을 위해 교실에 들어올 때쯤은 이미 지쳐 있다.
이런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리라는 건 학교에 다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으리라. 아동과 교사 모두에게 힘겨운 수업이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학습정도에 따른 개인차가 큰데다가 졸음에 겨운 눈들이 호소하는 바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같이 호흡해야할 참다운 교육현장의 실현은 멀기만 하다.
또 오전반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학습에서 뒤떨어지는 아이에 대한 부진아 지도와 그 외 필요한 개별지도가 어렵다는 점이다.
남은 교실이 없으니 골마루에 엎드려 공부하는 아이들, 오후 수업에 방해가 되는 개구쟁이들을 현실이라며 사랑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2부제 교대시간이 되면 밖에서 기다리는 아이들이 벌서 교실 문을 들어서 있다. 급하게 과제를 내주고 준비물을 적음으로써 어설픈 수업의 마무리를 짓기 일쑤이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이라도 되면 학교는 온통 북새통이 되고 만다.
수년 전부터 도시로의 인구집중으로 인하여 국민학교가 대형화하고 학급당 학생수가 늘어나고 교실의 부족난으로 2부제 수업이 계속 행해지고 있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주소이다.
국민학교 저학년의 경우 학교생활의 짜임을 보면 지식의 전수보다는 생활 지도가 대부분이다. 전인교육의 장으로서 올바른 심성발달을 위해 노력해야 할 사람이 바로 교사이다. 스승이기에 앞서 따뜻한 부모역할도 해낼 수 있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편안한 상태에서 아이들과의 접촉과 이해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배정된 시간 내에 교과 수업에 쫓기다 보면 이산의 역할을 해내기에는 많은 지장을 초래하게 된다.
혹 국교 저학년 2부제 수업을 당연시하고 오히려 교실 활용의 측면에서 능률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 한번 백년대계라는 교육에 대한 참다운 고민을 해주기 바란다.
대한민국의 세계 속에 과시하는 경제발전 속에서도 학교는 교사인 내가 국민학교에 입학했을때와 별로 다름이 없다면 지나친 과장이지 모르나 타분야의 빠른 변화에 비해 그러한 변화를 느낄 수 없는 것이 교육 현실이다.
산적해 있는 교육문제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2부제 수업의 빠른 해결을 촉구하면서 2부제 수업 때문이라는 변명을 일삼은 내 자신을 반성해 본다.
오후반 등교하는 우리반 태인이가 내게 한말이 떠오른다.
"선생님, 아침부터 학교가고 싶어도 꾹 참고 지금까지 기다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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