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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1 | 연재 [문화저널]
국립 전주 박물관 개관에 즈음하여
윤덕향·전북대 교수(2004-01-27 16:44:38)

지난 10월 26일 국립 전주박물관이 우여곡절 끝에 효자동에서 김제로 가는 길 옆에 터를 잡고 문을 열었다. 웅장하고 전통적인 양식의 건물과 짜임새 있게 전시된 유물은 오랜 동안 문화공간으로서 박물관 건립을 고대하던 도민들의 마음을 충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어 개관을 더욱 뜻깊게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마냥 축하하고 기뻐만 하기에는 그 앞날에 대하여 한가닥 불안을 떨칠 수 없는 심정이다. 이에 그같은 걱정이 참으로 기우였음이 밝혀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몇가지 생각을 정리하고자 한다.
박물관이 개관됨으로써 어떤 획기적인 변화가 우리네 지역사회 생활에 일어날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우리들의 생활과는 거리가 있는 고리타분한 곳으로 박물관을 인식하거나 그저 한번쯤 들러서 구경하는 것으로 족한 곳으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자칫 박물관이 개관을 즈음한 처음 얼마 호기심과 오랜 기다림에 대한 보상을 얻으려는 심리로 인파가 몰려들고 그것으로 박물관에 대한 관심은 시들해질런지도 모른다. 사실은 이점도 박물관에 가가 위하여 이용해야되는 교통수단을 감안한다면 불확실한 예측인 것이다. 어쨌든 당분간은 박물관에 사람들이 몰려들고 전시된 유물들과 그 내부의 갖가지 시설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얼마동안의 개관 열기가 지난다음, 특히 날씨가 어깨를 움츠리게 하는 겨울을 지난 다음에도 박물관에 사람들이 몰려들 것인가 하는 점은 의문이 아닐수 없다. 박물관을 한번쯤 관람하는 장소로 인식할 경우 250만 전북도민 모두가 하루에 만명씩 관람을 한다고 하면 산술적으로 250여일이면 모든 도민이 관람을 마치게 된다. 그후 박물관은 새로 이 지역을 찾는 사람들이나 들르는 장소로 전락할 위험이 없지 않다는 걱정이다. 이문제는 실제로 다른 지역에서 이미 문을 연 국립박물관들중 일부를 제외한 곳에서 당면해 있는 문제인 것이다. 이 같은 점에서 박물관이 어떤 곳이고 어떻게 우리네 지역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곳인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박물관의 기능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연구, 전시, 교육의 3가지를 들 수 있다. 이중 연구와 전시는 박물관 관계자들의 주도하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지역공동체 성원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일단 접어두기로 하고 교육기능을 먼저 생각하기로 하겠다. 교육이란 잘 아는 바와 같이 교육을 하는 사람과 그 교육을 받는 사람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박물관 관계자들이 교육을 하고자 한다 하더라도 교육을 받을 사람이 없다면 교육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전시된 유물을 보는 것도 일종의 교육이며 단지 그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알수 있도록 전시되어 있고 앞으로 보다 더 효과적인 전시 기법이 발전될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박물관을 한번 들른 것만으로도 적지않은 지적호기심을 충족할 수가 있다. 그런데 같은 전시유물을 보고도 사람에 따라서 얻어지는 교육의 양은 다를 수밖에 없다. 또 지적 호기심은 그 대상에 대한 지식이 증가함에 따라서 보다 왕성하게 성장하는 것이다. 처음 어떤 유물을 보고 그것이 어느때의 것이고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아는것만으로도 충족되었던 호기심은 그 다음단계로 그것이 어떻게 사용되고 만들어졌는가 하는 의문으로 발전될 수 있다. 또 좀더 나아가 그것이 당시 사람들의 생활에서 어떤 의미가 있으며 그 의미가 그들의 후손임에 틀림이 없는 우리네 문화에는 어떤식으로 남아있는가. 아니면 우리의 뿌리는 무엇인가 하는 의문으로 귀결될 수 있다. 우리의 뿌리를 확인하는 작업에 비로소 향토 문화, 향토의 역사를 모두어둔 박물관이 가지는 교육적 기능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박물관 측에서도 교육을 위하여 적잖은 계획은 가지고 있을 것으로 생각되며 또 그같은 기회를 요구하는 것은 지역공동체 성원들의 정당한 요구라고 할 수가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려되는 것은 바로 마련된 교육의 기회를 공동체 성원들이 이용하지 않는다면, 또 박물관이 한번 들르는 곳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또 박물관이 한번 들르는 곳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큰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 문제는 닭이 먼저냐 아니면 달걀이 먼저냐 하는 논쟁이 될 수도 있는데 향토의 역사와 문화에 대하여 관심이 적은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어느 정도 의식주가 해결된 마당에서는 지식의 결여에 연유하는 바가 적지 않다. 즉 모르니까 굳이 생활에 지장이 없는 것을 골치 아프게 알려하지 않으며 그같은 무관심은 자신만이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똑같이 이어지게 될 것이다.
전통문화가 단절되고 정신적 가치관이 혼란을 일으킨 근본배경은 우리가 누구인가를 바라보지 않으려는 데에서도 한 요인을 찾을 수 있다. 박물관은 학교에서와는 달리 학교외의 교육기관, 또는 보조교육기관이며 학생만이 아니라 일반 사회구성원 모두를 대상으로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알리려는 곳이다. 즉 남녀노소 누구든 그에 맞게 우리의 문화와 이 땅의 역사를 손쉽게 자신의 지적 호기심에 걸맞는 수준과 자신이 선택한 방법으로 차분하게 교육받을수 있는 곳이다. 따라서 어린이에게는 그의 조상이 무엇이고 뿌리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곳이며 노인들에게는 그들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고 후손들에게 어떻게 자리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곳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족 모두가 자리를 같이하여 나름대로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장소인 것이다. 이같은 인식이 보편화될 때 박물관은 우리네 삶에 의미가 있으며 존재의 의의가 있는 것이다. 다시말하면 부단히 찾아가서 그때마다 자신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흔들리려는 자신의 뿌리를 재확인하는 곳으로 자리할때 박물관을 우리네 생활의 일부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일단 접어두었던 박물관의 연구와 전시기능을 살펴보겠다. 연구는 연구의 대상이 있어야 하며 연구의 대상은 분야에 따라서 다르다. 그리고 박물관에서 이루어진 연구의 결과는 전시되고 교육되는 것이다. 전북지방의 경우 향토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연구는 지금까지 몇몇 사람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필자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고고학 분야의 연구는 전주시립박물관장을 지낸 전영래 선생의 개인적인 노력이 거의 모두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적지않은 성과가 있었으나 이 지역의 문화, 역사를 밝히는 데에는 다른 지역과 비교하여 상당히 미흡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묘하게도 문화재조사는 지역의 경제발전과는 상반되는 입장에 있다하여 문화재를 보호하고 보존하고 조사하는 것에 대하여 기본적으로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같은 여건에서 전주박물관의 개관을 중심으로 관계자들의 연구가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일정한 한계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향토의 문화와 역사는 지역에서 살아가는 성원들의 것이며 그들의 삶속에 살아있는 것이기 때문에 한두사람이나 기관의 힘만으로 밝혀지고 발전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간단한 예로 최근 여러곳에서 추진되고 있는 농공단지의 설립은 우리 지역의 경제발전을 위하여 필수적이라고 한다. 그런데 농공단지를 조성하다가 문화유적이 발견될 경우 자칫 알려지게 되면 농공단지를 조성할 수 없거나 조성이 늦어진다하여 없애버리게 된다. 이처럼 문화재는 지역발전에 걸림돌로서만 인식되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그 존재를 은폐하고 파괴하는 작업이 행해져 왔다. 그러나 이 경우 문화재를 조사하고 농공단지를 조성하면 되는 것이며 보다 합리적인 방안은 작업을 하기전에 문화재의 존재여부를 확인하고 필요할 경우 먼저 조사를 마치면 되는 것이다. 어쨋튼 박물관의 연구는 결국 지역성원들의 끊임없는 협조와 관심을 기반으로 열매 맺을 수 있는 것이며 전시는 그 연구의 결과를 기초로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같이 박물관은 지역성원이 주체가 되어 이용할 때, 또 관심을 가지고 그 활동을 도울 때 우리네 생활속에 의미있는 것이 된다. 또 그 경우에 비로소 우리는 이 땅의 문화와 역사를 자부할 수 있고 사회 교육의 장으로서, 정신적 휴식의 장소로서 qranf관을 자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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