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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1 | 연재 [세대횡단 문화읽기]
판소리란 무엇인가
최 동 현 ·판소리 연구가(2004-01-27 16:47:22)

<판소리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지금까지 판소리의 어의, 기원, 본질, 구성요소 등을 설명해 왔다. 판소리가 무엇인가를 얘기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을 것이지만, 여기서 사용한 방법은 주로 판소리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가지 요소들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었다. 판소리라는 예술에 직접 접해보고, 감성을 길러 감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이 판소리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임에 틀림없다. 아무리 판소리에 관한 글을 많이 읽어도 직접 판소리를 듣고, 판소리로부터 감동을 이끌어낼 수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나 음악이라는 음향적 질료의 속성상 판소리를 읽어볼 수 있는 것으로 환원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글은 필연적으로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다.
기왕에 판소리의 구성 요소들에 관하여 논의를 해 왔으므로, 이번 호에서는 지난번에 이어 음악적 구성요소인 <성음>과 <조>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로 한다.

성음(聲音)
<판소리는 성음 놀음이다>, <판소리에서는 성음이 제일 중요하다> 하고 흔히 말한다. 성음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는 판소리가 성악이기 때문에 당연히 강조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성음>이란 무엇인가? 성음이란 말도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이기 때문에 한마디로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으로는 <음색(to-necolor)>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그러므로 <판소리는 성음 놀음이다>라는 말은 일차적으로는, <판소리는 음색의 변화에서 묘미를 찾는 예술>이라는 뜻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판소리와 서양 음악과의 차이는 여러곳에서 발견되지만, <음색>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느낄 수있다. 우선 귀로 들을 때, 감각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판소리에서 사용하는 성음은 기본적으로는 <목 쉰 소리>이다. 타고난 자연 상태의 목소리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수많은 노력을 통해 거칠게 가공된 소리를 사용하는 것이다. 보통 사람이 쉽게 판소리를 흉내낼 수 없는 이유중의 하나는 바로 이 음색 때문이다. 정상상태의 목소리로는 안되기 때문이다. 판소리에서 요구되는 목 쉰 소리는 하루 이틀에 이루어질수 없다. 따라서 판소리를 흉내라도 내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는 것이다.
판소리 창자들이 소리꾼으로서의 수련 과정에서 가장 힘을 들이는 것도 바로 이 성음 때문이다. 판소리에서 요구되는 쉰 목소리를 얻기위해서 사용하는 수련 방법은 장기간에 걸쳐 성대에 무리를 가하는 방법이다. 있는 힘을 다해 매일 종일토록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그러면 성대는 이를 견디지 못하고 붓게 된다. 부은 성대는 운동이 유연하지 못하기 때문에 거친 소리를 낸다. 그리고 소리를 내게 하는데 훨씬 힘이 든다. 힘들여냄으로 그 소리는 자연히 힘이 붙어 있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을 한번만 겪게 되면 성대는 다시 본래의 모습을 찾게 된다. 판소리 창자들은 언제나 쉰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정상상태의 성대가 거칠게 되어 있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게 하려면 목이 쉰상태에서 성대를 고정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 판소리 창자들은 부은 성대를 그대로 두지 않고 계속해서 무리를 가한다. 부은 성대는 견디지 못해 터지게 되고, 성대가 터지면서 피가 나기도 한다. 명창들이 피를 동이로 쏟았다는 얘기는 바로 이러한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터진 성대는 아물면서 흉터를 남기고, 흉터가 생긴 성대는 운동이 유연하지 못하기 때문에 늘 쉰 목소리를 내게 된다. 이러한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되면 마침내 성대는 흉터 투성이가 되고, 이제는 무리하게 써도 붓지 않게 된다. 그렇게 되면 늘 쉰 목소리를 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과정 속에서 성대가 지나치게 거칠게 되면 목소리가 너무 탁하게 되거나, 고음이 나지않게 되어버린다. 훈련과정에서 성대가 잘못되어 고음이 나지 않게 되는 것을 <목이 부러진다>고 한다. 최근에 작고한 인간문화재 박봉술씨의 목이 바로 부러진 것이었다. 그러므로 박봉술씨는 고음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암성이라 하여 가늘게 해서 발성을 하는 독특한 창법을 써서 대신하여다.
요컨대 판소리에서 사용되는 목소리는 거친 소리이지만 저음에서부터 고음까지를 잘 낼수 있는 거친 소리여야 한다. 뿐만 아니라 거칠기만 해서는 안되고, 거기에 슬픈 느낌이 배어 있어야 한다. 그것을 애원성(哀怨聲)이라 하는데, 이 애원성을 판소리에서는 최고로 친다. 그리고 이러한 목소리를 얻었을 때 <득음(得音)을 했다>고 한다. 물론 득음이라는 것이 단순한 음색의 획득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지만, 일차적으로는 음색을 얻는 것을 가리키는 것만은 틀림없다. 판소리 창자들이 깊은 산 속 절간이나, 폭포수를 찾아가 목숨을 건 수련을 하는 것은 바로 이 <득음>을 위해서이다.
판소리에서 사용하는 쉰목소리는 또 그 특성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천(청)구성과 수리성으로 나눈다. 천구성은 쉰 목소리 중에서도 비교적 맑고 고운 소리를 말하여, 수리성은 상대적으로 더 거친 소리를 말한다. 사람에 따라 개인차가 있으므로 목소리도 이런 차이가 나게 된다.
판소리에서는 천구성을 더 높게치는 경향이 있으나, 이 천구성은 수리성을 동시에 구사할 수 있을 때 더욱 빛나는 것이 된다. 다시말하면 한 사람이 천구성과 수리성을 뚜렷하게 구분해서 함께 낼 수 있다면 좋은 것이다. 그래야만<성음 놀음>인 판소리의 표현력이 증대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소리꾼들은 이 두 성음을 뚜렷하게 구분해서 낼 수 없다. 특히 여자 창자의 경우 수리성을 내기가 어렵고, 대체로 맑은 소리만을 낼 수 있을 뿐이다. 여자 창자의 소리가 단순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판소리 창자 중 이 두가지를 다 갖춘 최고의 목소리의 소유자로는 근대의 명창인 임방울을 들 수 있다. 임방울은 이 두가지 음색의 소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소리를 엮어 나갔기 때문에 화려하고 다양한 음색의 소리를 할 수 있었다. 그러기 때문에 그만큼 감동이 컸다.
그렇다면 판소리에서는 왜 이런 거친 목소리를 중심으로 한 미학이 형성되었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해 볼 수 있다. 이 문제는 음악 이외의 여러 요소와의 관계속에서 깊이 있게 탐구되어야 할 주제이겠으나, 단순하게 결론적으로 말하면 판소리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인간의 삶이-물론 이것은 한국인의 삶이다-이 고운 목소리로는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고 힘겨운 것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 한국인의 인생관·예술관·세계관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어떤 민족음악학자는 음악에 있어서 목쉰 소리는 성적 억압의 정도와 관련이 있다고 했는데, 이도 또한 판소리의 한 측면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사항인 것만은 틀림없다.

조(調)
이제 마지막으로 장단·성음과 함께 판소리 음악을 구성하는 요소인 <조>에 대해 알아보자. <조>에 대해서도 이론이 분분하지만, 여기서는 판소리 일반 청중들 속에 개념화되어 있는 것을 중심으로 하여 창법적 개념, 곧 서양음악에 있어서의 악상(mood)과 같은 것으로 보고자 한다.
판소리 조도 여러 가지로 나눌 수 있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우조와 계면조이다. 우조는 호령조라고도 하며, 씩씩한 느낌의 소리를 말하고, 계면조는 설움조라고도 하며, 슬픈가락을 말한다. 그리고 슬프지도 씩씩하지도 않은 가락을 평조라고 한다. 이러한 조는 음색·사용하는 음계·발성법 등에 의해 종합적으로 실현되는 것이므로 <들어서 아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다분히 주관적인 성격의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판소리는 계면조가 점점 강화되는 방향으로 변화되어 왔다. 그것은 판소리의 역사가 민족의 고난의 역사와 그 궤적을 같이 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보면 판소리는 계면조의 호소력, 곧 설움의 미학에 크게 의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판소리의 전통이 가장 강하게 남아있는 전주 부근의 청중들에게서 더 두드러지는 현상이기도 한다.
이제 판소리는 계면조 중심의 소극적, 영탄적, 패배적 색채를 털어내는 자기 변혁의 과제 앞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판소리가 더욱 생명력을 얻어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런 부정적 요소의 극복이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 때문이다.
이제 이상으로 판소리의 이론에 관한 글을 끝내려 한다. 물론 판소리의 이해를 위해 필요한 내용이 이것뿐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나머지 것들은 다른 이야기 속에서 잠깐씩 언급하기로 하고, 다음 호부터는 판소리 명창들과 관련된 이야기를 전개하기로 한다. 이는 판소리 창자들을 통해서 판소리의 통시적 변화를 살펴보는 과정이 될 것이다.


김영동과 그의 음악세계 심 인 택·편집위원

11월 30일 문화저널사가 주최로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을 초청으로 김영동의 음악세계를 음미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이번 공연에선 김영동이 직접 작품의 해설과 지휘를 맡게 돼 큰 관심을 갖게 한다.
김영동을 순수음악보다는 실용음악에 치중해 많은 작품을 남긴 작곡가이다. 또한 김영동은 김성진 선생의 제자로 뛰어난 정악대금 연주자이며 한범수선생의 제자로 대금산조에도 뛰어나 한범수류 대금 산조를 채보하여 출판하기도 하였다.
김영동은 그의 음악과 관련하여 우리에게 세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그 하나의 얼굴, 또는 그의 예전 모습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모습은 70년대 대학가요 주도 세력으로서의 얼굴이다. 그 모습은 김민기와 비슷하다. 그들은 70년대의 뜨거운 피를 가진 젊은이로서 여러 가지 사회적·정치적 제모습에 가슴 아파했으며 그 아픔은 노래로 승화되었다. 김민기가 주로 미국의 포크송을 중심으로 70년대의 새로운 가요를 만들었다면 김영동은 주로 민요조의 선율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의 민요를 만들려 하였다. 이러한 그의 활동을 보면, 윤동주의 시를 소재로한 <누나의 얼굴>에서 산업근로자의 힘겨운 삶을 노래하는가 하면 <조각배>에서는 도시 빈민들의 삶을 노래로 만들기도 하였다. <어디로 갈꺼나>·<개구리 소리>·<자장가>·<애사당>등도 모두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작품이며, 그가 만든 노래는 현재까지도 대학가의 일각에서 구전민요로 회자되고 있다.
김영동의 또다른 얼굴은 연극·영화·TV의 부수음악에서 찾을수 있다. 물론 그의 첫 번째 얼굴에서 대학가의 노래로 남아있는 작품 중에는 연극이나 영화음악에서 삽입된 노래도 많다. 연극음악의 대표작으로는 오영진 작의 <한네의 승천>을 들수 있으며, 여기서의 <한네의 슬픔>과 <사랑가>는 모두 전통 장단을 바탕으로 한 노래들이다. 영화음악으로는 <땡볕><태><어둠의 자식들><아다다>등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그의 영화음악 작품이 현재 국악기를 사용한 영화음악의 한 전형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반인들은 앞의 두모습은 알고 있으나, 사실 그의 음악세계는 다른곳에 숨겨져 있다. 그의 세 번째 얼굴은 순수음악 분야에서 찾을 수 있다. 대금독주곡 <파문>은 그가 민속악과 정악의 합이을 꾀하듯이 정악대금과 산조대금을 같이 연주한 작품이며 대취타를 주제로한 <외천>도 전통음악에 충실하여 만든 작품이다. 현재까지 자타가 공인하는 그의 대표작으로는 역시 대한민국 작곡상을 수상한 <매굿>을 들어야 하겠다. 매굿은 황석영 원작의 「장산곳매」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서 이 장산곶매는 황해도 지방의 설화로 김영동은 장산곶매의 장별 구분에 관계없이 자신에게 여과된 감흥으로 이 작품을 다스렸는데, 이 작품은 도입부터 징의 은은한 잔향속에서 신비하고도 토속적인 분위기로 일관된 작품이다.

김영동의 작품의 다음과 같다.
★관현악곡
대취타를 주제로한 외천(畏天)
매굿
단군신화
★독주곡
대금 독주곡 파문(波紋)
★성악곡
자장가·누나의 얼굴·애사당·개구리소리·상여길
★불교음악
법고·목어·운판·범종
예불문·발원문·반야심경
★영화음악
땡볕·어둠의 자식들·태·아다다
★연극음악
한네의 승천·태·옛날옛적 훠이훠이
★TV문학관
삼포가는 길·메밀꽃 필 무렵
★경음악
초원·회상·갈대·방황·먼길·사랑의 슬픔·이별·상여·하나·이별의 춤
★가요
조각배·어디로 갈꺼나·멀리있는 무덤·한네의 승천중 사랑·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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