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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1 | 연재 [문화저널]
전북의 민속놀이 산마을의 불꽃놀이
김 익 두·전북대·국문학강사(2004-01-27 16:49:04)

1. 한국의 불꽃놀이
인간이 불을 알게 된 후부터 문명이 급속도로 달라지고 진보했다고 하거니와 그 불을 실용적 목적이 아니라 놀이의 세계로 이끌어들인 역사도 짧지 않은 듯 하다. 다른 나라의 사정은 어쩐지 잘 모르겠으나. 우리나라에서도 불을 가지고 노는 놀이는 오랜 옛날부터 있어온 것으로 생각된다. 예컨대 곳곳에서 전승되어온 '쥐불놀이'라든가 '횃불싸움', '폭죽(爆竹)'등은 그 연원이 아득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갈 것이고, '등(燈)놀이'는 통일신라시대부터 행해져온 것으로 기록이 전한다.
이러한 불놀이들 중에 불꽃의 아름다움과 터지는 소리를 즐길 수 있는 놀이로서 '불꽃놀이'가 있다. 이 불꽃놀이는 보통 등놀이(등불놀이)와 함께 행해지므로 '등놀이'의 정적이고 부드러운 찬란함과 '불꽃놀이'의 동적이고 활발한 움직임이 결합되어, 신선한 생명감을 불러일으키고 일상적 삶의 나태한 리듬을 쇄신해 줄 수도 있다.
이 놀이엔 나라에서 대규모로 행한 화산대(火山臺)와 민간에서의 '줄불', 그리고 '딱총놀이'등 세가지가 있다고 한다.
화산대는 화약이나 기타 폭발물을 포통(砲筒)에 재고 그 아구리와 겉을 종이로 겹겹이 싼 다음, 속에 꽃은 심지에 불을 달아 터뜨리는 것이고, 줄불은 기다랗게 만든 종이전대에 숯가루, 솜같은 것을 다져 넣어 나뭇가지에 달아 매고 밑에서 불을 붙이면 연속적으로 튀면서 찬란한 불꽃이 흩어지는 놀이며, 딱총은 유황 숯가루 같은 것을 한데 버무려 콩알만하게 빚은 다음, 종이에 싸서 장난감 총에 재고 방아쇠로 때려서 큰소리가 나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2. 두문마을의 낙화놀이
전북에서 찾아볼 수 있는 불꽃놀이로 주목되는 것은 임실군 신평면에서 행해오던 것과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 두문마을에서 놀아오던 것인데, 이들은 모두 마을 단위로 행해지던 민속놀이로써 지금은 행해지지 않고 있어서 볼 수 없다.
이중에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 두문마을의 불꽃놀이에 관해서 들은 바를 적어 보면 다음과 같다.
필자는 1982년 8월경에 이 마을을 처음 방문하였는데, 이 마을에 사는 박찬훈(다시 53세)씨는 이 마을에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낙화(落花)놀이'라는 마을의 대동놀이가 있어서 그것이 장관이었는데, 지금은 행하지 않아서 아쉽다고 하면서 그 절차와 방법에 관해서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들려주셨다.
이 마은ㄹ에서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음력 정월 보름날과 사월 초파일날에 불꽃놀이를 행해왔는데, 그 이름은 '낙화(落花)놀이'라고 한다.
음력 정월 보름이 가까워 오면 마을에서는 남자 어르신들이 낙화놀이를 준비하는데, 먼저 봉나무로 숯을 굽고 (뽕나무가 아닌 다른 나무로 구운 숯은 안된다고 함), 말린 쑥과 문종이(창호지)와 소금과 사금파리를 준비한다.
정월 대보름날이 돌아오면 마을의 어른들은 마을 광장에 모여 낙화(불꽃)를 준비하는데, 먼저 뽕나무 숯을 빻아서 가루로 만든 다음, 거기에 사금파리를 빻은 가루와 소금을 넣어 잘 섞어 이것을 창혹지로 일곱치 내지 한자 정도의 길이로 만다. 이때 그 속에는 연필심처럼 말린 쑥으로 심을 박는다. 이렇게 해서 낙화봉을 여러개준비하여 마을 앞의 논에 물을 흥건히 대어놓고, 그 위로 줄을 길게 가로질러 매고, 거기에 그 낙화봉들을 일렬로 쭉 매달아 놓는다.
해가지고 동산에 밝은 보름달이 떠오르면 마을의 풍물패들은 풍물을 신명나게 울리고, 낙화봉들에 불을 붙이는데, 이때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 함께 어울린다. 사월 초파일에도 이와같은 행사가 행해졌다. 이상 아주 소략하게 기술해 본 두문마을 낙화놀이는 우리가 지난번에 살펴 본 팔월 한가위의 강강술래와 비교·대조해 보면 몇가지 재미있는 현상들을 찾아 볼 수가 있다.
우선 게절상으로 볼대 전자(강강술래)는 풍성한 수확의 계절인 가을에 행해지는 데 비해, 후자(낙화놀이)는 한해가 새로 시작되는 정월달에 행해진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히 전자가 '추수감사굿'의 전범을 따르는 데 비해, 후자는 '풍요기원굿'의 전범을 따르고 있다. 특히 후자의 경우, 논에 물을 가득 담아 놓고 굿을 친다는 것은 일년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행위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또 전자가 여성굿의 전형적 형태라면 후자는 남성들의 주도로 이루어지긴 하지만 마을 사람 남녀노소가 한 장에서 어우러진다는 점에서 남녀화합, 음양 조화의 풍요기원굿의 한 전형이랄 수 있다.
전자가 도서·해안 지역에 널리 분포하는 반면, 후자는 내륙·산간지역에서 발견된다는 점도 이 놀이의 성격과 관련이 이을 듯하다.
다음으로 전자가 일종의 '구가형'-풍요를 즐기는 형이라면, 후자는 '기원형'-풍요를 기원하는 형이라고 할 수있다. 전자 속에는 무엇인가를 기원하는 성격은 미약하고 순수한 놀이의 성격이 강한데, 후자는 마을 전체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성격이 매우 강하다. 팔월 보름과 정월 보름은 그만큼 다르다.
이 불꽃놀이가 사월 초파일의 불교적 행사와 관련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고려의 태조가 불교를 국교로 장려하여 팔관회와 연등회를 국가적인 행사의 일환으로 수용되었을 것같다. 특히 평양의 모란봉은 이런 때에 '등산(燈山)'으로 변하였으며 대동강에는 '방석불'로 장식한 배가 강물에 비쳐서 그림처럼 아름다웠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시로 알려져 잇는 주요한시인의 '불노리'라는 시에도 1910년대의 평양시내와 대동가의 불꽃놀이가 잘 그려져 있어서 흥미롭다.

3. 불꽃놀이의 변모와 궁중의 불꽃놀이
이 불꽃놀이는 13세기 후반부터 화약과 같은 폭발물을 사용한 형태로 나타난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사실은 이규보나 이색과 같은 고려시대 문인들의 시에서 짐작할 수 있다.
그후 1373년 최무선이 화약을 우리나라에서 만들게 되어, 병사들에게 화약 기술을 가르치고 놀이도 즐기기 위해서 화약을 이용한 불꽃놀이가 국가적인 행사로 해마다 행해지게 되었다 한다. 1413년에 서울에 왔던 일본의 사신은 이러한 불꽃놀이 행사 때의 요란한 소리와 찬란한 불꽃에 놀라 도망치기까지 하였으며, 1539년에도 외국의 사신들에게 불꽃놀이를 보였더니 한결같이 사람의 조화가 아니라고 감탄하였다 한다.
한편, 왕궁의 불꽃놀이는 군기가(軍器寺)에서 주관하였는데. 그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유황·염초·반묘·버드나무·재 등을 다져서 넣은 통들을 쌓아놓고 그 심지에 불을 붙이면, 연기가 나며 순식간에 불이 붙어 그곳으로 번지면서 포통들이 터져 소리가 사방으로 진동시킨다. 이어서 불화살을 미리 묻어놓은 동산으로 심지를 연결하여 그곳으로 불이 번져가면 불화살이 하늘을 향하여 치솟아 오르고, 요란한 소리가 나며, 아름다운 불꽃이 하늘을 뒤덮는다고 한다.
이밖에도 궁중에서는 뒤뜰에 긴 장대를 수십개 세워, 그 끝에 작은 불꽃 보퉁이를 매달아 놓고 그 근처에 모인 구경꾼들 앞에도 채롱을 달아놓은 다음, 그 채롱에서 불꽃보퉁이를 매단 장대에까지 긴 줄을 이리저리 연결시켜놓고 줄의 첫머리마다 화살을 장치해 둔다. 그리고는 그 채롱 속에 불을 던져 넣으면 큰 불이 무섭게 일어나 채롱 속에 번지고, 거기에 장치해 둔 화살들이 줄을 따라 장대를 향해 차례차례 날아가 긴 장대들을 하나씩 치면 장대끝의 불꽃보퉁이가 터지면서 수레바퀴처럼 둥그런 불테가 이루어지고, 이런 불꽃놀이가 마지막 장대에까지 계속된다고 한다.
이 외에도 궁중에서는 거북이가 엎드린 형상을 만들어 놓고 그 입에서 불과 연기가 쏟아져 나오게 하고, 등에는 글씨를 쓴 팻말을 세워 그 글씨가 사방에서 비치는 불빛으로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고, 또 장대 위에 족자를 말아 매달아 놓고 줄을 따라 올라간 불이 말아 묶은 끈을 태우면 그와 동시에 족자가 활짝 펴지게도 한다. 때로는 길게 숲을 만들어 놓고 꽃·나뭇잎·포도 등을 새겨 매달아 두고 불이 번져나갈 때마다 붉은 꽃 푸른 잎들이 주렁주렁 달린 포도송이들이 삽시간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도록 장치하기도 한다.

4. 불꽃놀이의 장래
오늘날에도 불꽃놀이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토착적인 재료를 가지고 우리가 손수모여서 함께 만들어 함께 즐기는 불꽃놀이가 아니라 화학약품과 재료들을 가지고 특정한 제조회사가 만든 것들이다. 그것은 또 아주 비싸서 대형의 특별한 행사를 제외하고는 쓸 수가 없다. 어린이들의 불꽃놀이 재료들은 위험한 화약제품으로 되어있어서 사고의 위험도 많은 것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이러한 오늘날의 불꽃놀이의 삭막한 변모는 우리가 앞서 살펴본 우리의 전통 불꽃놀이들을 유효적절하게 이용하거나 그것들을 바탕으로 좀더 참신하게 재창조함으로써 충분히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꾸어나갈 수가 있을것으로 믿어진다.
특히 전북지역에서 행해져 왔던 두문마을의 불꽃놀이는 우리 전북지역이 창조해낸 뛰어난 정월 보름맞이굿의 원형적 형태로서 우리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한 것이다.
이러한 불꽃놀이와 같은 대동의 축제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특히 사람들이 밀집되어 살고 있는 도시지역내에 대동으로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는 자유로운 놀이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절실한 현실이라는 점도 여기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서울의 대학로와 같은 놀이공간은 매우 바람직한 것이며, 전북의 경우에도 하루빨리 이러한 공간이 마련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전주시의 경우, 시청 주변의 그 넓은 공간이 자동차 주차장으로만 사용되고 있는 것은 다시 한번 반성해 보아야 할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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