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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2 | 연재 [세대횡단 문화읽기]
전북의 민속놀이, 전북의 민속놀이, 전북의 줄다리기
김익두 전북대 국문학강사(2004-01-29 10:25:26)

1. 줄다리기의 세계성과 지역성
‘줄다리기’는 보통 어떤 문화 공동체가 함께 줄을 만들어 편을 나누어 양편에서 이것을 잡아당겨 힘을 겨루고, 이를 통해서 집단과 신명과 결속력을 다지고 강화하며, 풍요와 건강을 기원하던 민속놀이이다.
거개의 민속놀이가 그렇듯이 이 놀이도 놀이 자체만이 따로 독립되어 행해지는 것은 아니었으며, 그것을 행해온 집단 공동체의 축제 형태로 이루어지기 마련이었다.
또한 행사는 기록과 연구에 의하면 타이,중국,한국,일본 등 동남 동북 아시아의 ‘수도경작어로민문화지역’에 두루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지역에 따라 각기 다양한 형태로 행해져 왔따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도서 ‥ 해안과 평야지역에 널리 분포되어 있었음이 확인되고, 지역마다의 독특한 특징들도 발견된다. (그 분포지역은 현재 북쪽은 강원도 삼척에서 남쪽은 제주도에까지 퍼져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음.)
역사적으로는 15C의 「동국여지승람」에서부터 그 기록이 보이며, 그 명칭도 노끈으로 겨룬다 하여 ‘삭전’, ‘인삭전’, 줄의 재료에 따라 ‘도전’, ‘갈전’이라고도 하였고, 이외에 ‘조리지회’, ‘결하희’, ‘견구’, ‘발하’, ‘시구지희’ 등의 명칭도 보인다.
줄다리기가 행해지는 시기는 대체로 음력 정월 보름(15~16)이며, 그 장소는 그 마을이나 지역의 논밭,길거리,광장등이고 행하는 방법은 전북의 경우 걸립→줄꼬기→줄놀이→줄다리기→줄감기→제사→음식 나눔 등의 순서로 이루어 진다.
그 지역적인 ‘변이’도 다양해서 영남지역과 그 인접지대에서는 ‘싸움’이 강조되고, ‘나무쇠 싸움’ ‘동채싸움’ ‘고싸움’ 등-영서 호남지역에서는 대체로 ‘화합’이 강조되는 경향- ‘싸움’이라는 명칭은 거의 없고 그 성격 내용도 화합과 음양조화를 강조하면 여성편이 이기도록 유도 된다- 이 있다.

2. 전북지역의 줄다리기와 그 특징
전북지역의 줄다리기는 동부 산간지역 보다는 서부 평야지역에서 더 많이 행해져 온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 그 흔적을 확인해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곳으로는 동부 산간지역의 운봉, 중간지역의 순창읍, 서부 평야지역의 김제군 월촌면 입석리 정읍군 산외면 정량리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 고창읍 오거리, 서해 도서지역의 위도면 대리마을 등인데, 이런 곳들 외에도 여러 곳에서 줄다리기 행사를 축제 형태로 벌여온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전북지역에서 행해지고 있는 줄다리기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는 고창읍의 ‘오거리 당산제’ 행사에서 행하여지는 줄다리기일 것이다. (순창읍의 줄다리기가 고창읍의 그것과 같은 정도로 지역 대동굿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으나 해방 이듬해 정월까지 행해지고 끊겼따 함) 정읍군 산내면 정량리와 김제군 월촌면 입서리 그리고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 및 위도면 대리마을의 줄다리기는 대체로 한 마을 단위의 대동 축제 혹은 대동놀음으로서 행해지고 있으며, 운봉면의 줄다리기는 원래 면소재지인 동천리와 서천리 등지에 살고 있는 박씨들의 동족 대동굿적인 성격을 까지고 행해지던 것이라는 점에서 그 특성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줄다리기 축제는 한 동족 단위의 줄다리기(운봉)에서 마을 단위의 공동축제 (정읍 김재 부안 위도등)로, 그리고는 다시 이러한 마을과 마을 사이의 힘겨루기 형태의 줄다리기로 확대되고(순창읍). 더 나아가서는 여러 마을들이 함께 모여 한 지역 전체의 대동 노음(고창)으로 점차 확산되어 나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흥미롭다.
이 중에서 가장 큰 대동굿 형태로 행해지고 있는 고창읍 ‘오거리 당산제’중의 줄다리기를 필자가 목격한 대로 약술해 보면 다음과 같다.(이것은 필자가 1987년 2월 26일- 음력 2월 1일에 본 것임)
고창읍에 오거리 당산제가 있다는 것을 미리 조사해놓고 이 행사가 행해지는 날을 기다리던 필자는 1987년 2월 26일 아침 9시경에 고창읍에 도착하였는데 오전 10시경부터 고창군청 근처로 고창읍내의 각 마을들의 풍물패와 주민들이 마을기를 앞세우고 모여들기 시작 하였다. 이들은 군청 앞 사거리에서 모두 모여 ‘합굿’을 치고는 다시 시내 중앙으로 행진해 가다 한 큰 음식점 앞에서 다시 합굿을 친 다음 각 마을기와 풍물들을 음식적 앞에 내려 놓고 그 음식점으로 들어가 각 마을에서 미리 준비해 온 음식들을 차려 내놓고 점심 식사를 마친 다음, 여기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은 주로 풍물패의 구성원들과 임원들인 듯했음. 다시 굿소리를 내어 읍내 거리들을 돌아 몇 군데의 돌로 만들어 세원 당산으로 들러서 당산제를 지냈다. 다시 오거리의 가장 큰 길로 나오니 거기에는 이미 사람 몸퉁만한 굵기의 새끼로 꼬은 줄이 놓여져 있었는데 줄은 두 개로 하나는 줄끝의 구멍이 컸으며 다른 하나는 구멍이 작았다. (전자는 ‘암줄’ 후자는 ‘숫줄’ 이라 하였다) 이 두 줄은 주 끝의 구멍을 마주 보게 놓았으며 그 각 줄의 구멍이 있는 끝 부분은 수십개의 붉고 푸른 초롱등들을 높이 달아 장식해 두었다.
이윽고 각 마을에서 온 사람들이 편을 나누어 양쪽 줄을 잡고 줄 맨 앞에는 사모관대를 한 남자(신랑)와 여자(신부)가 각각 올라타더니 숫줄 쪽에서는 암줄쪽으로 다가가 암줄머리 속에다 숫줄머리를 끼우려고 하고 암줄 쪽은 이를 저지하면서 한참 동안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은 숫줄 머리가 암줄 머리 속에 끼워지고 이것이 빠지지 않도록 비녀목을 꽂고는 줄을 내려 놓고 풍물 굿패들이 굿놀이를 하였다.
다시 줄을 들고 줄머리에는 신랑과 신부가 타고 줄다리기가 시작되어 세 번 겨루었고 신부쪽이 2:1로 이겼으며, 줄다리기가 끝나자 줄을 길가의 돌당산에다 감고 유교식으로 제사를 드린 다음, 음식을 나누고 굿을 치고는 끝마쳤다.
정읍군 산외면 정량리의 줄다리기는 음력 정월 16일 오전에 줄을 꼬아서 -이때 줄은 외줄이었다- 오후에 줄다리기가 벌어졌으며, 마을 사람들이 줄다리기 장소에 나오거나 줄다리기를 실시할 때에 풍물패의 나발을 신호음으로 사용하였다. 마을의 여성들을 색색의 고운 한복 치마 저고리로 갈아 입고 나왔으며 줄의 꼬리 쪽은 여성들과 총각들이 잡고, 머리쪽은 성인 남성들이 잡았다. 줄을 메고 마을 앞의 보리를 갈아 놓은 논에서 ‘달팽이진’ 형의 ‘진풀이’를 하였는데 대단히 아름다웠다. 줄다리기가 끝나면 줄은 감지 않고 당산나무 옆에 또아리를 틀어 박아 둔다.
김제군 월촌면 입석리 서돌마을의 줄다리기는 정월 15일에 행해지며 암줄과 숫줄이 있고 줄다리기가 끝나면 줄을 선돌에 감고 유교식으로 간단한 제사를 지낸다.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 원우동 마을의 경우도 줄에 암수의 구별이 있으며 줄다리기 당일날에 줄을 꼬아 점심을 먹고 줄을 메고 마을을 돌다가 역시 사모관대를 한 신랑 신부를 줄머리에 태우고 줄다리기를 세 번하여 승부를 정한 다음, 역시 여성쪽이 승리 줄을 메고 가서 마을 앞 당산나무 옆에 새로 만들어 세운 신대에다 감고 유교식 제사를 행하고 제물을 나누어 먹고 끝낸다.
위도면 대리 마을의 줄다리기는 아마 이 중에 가장 흥겹고 다양한 놀이일 것이다. 먼저 정월 보름날 오전에 줄을 꼬는데 이 때 ‘줄꼬는 소리’를 부르고 풍물도 친다. 이 때의 후렴은 ‘해-야아 뒤-야-’이다. 줄이 다 꼬아지면 풍물을 울려서 마을에 통고를 하면 마을 사람들이 부둣가로 나오는데 여성들은 머리에 수건을 쓰고 물고운 한복들로 차려 입으며, 줄을 메고 마을 뒷산을 돌면서 당산제도 지내고, 풍물 가락에 맞춰 ‘에용소리’라는 노래를 흥겹게 부르며 줄놀이를 하고 무동도 태운다. 특히 줄놀이 진풀이를 할 때의 소고잽이들은 고깔을 쓰고 각색 한복으로 차려 입은 여인들인데, 이들이 ‘달팽이진’의 한 가운데에서 소고춤을 추면서 손을 일제히 폈다 오므렸다 하는 모습은 꽃봉오리가 피었다 오므라지는 것처럼 아름답기 그지 없다. 줄놀이가 끝나면 마을 앞의 갯벌에 돌아와 줄다리기를 하는데, 이 때 쯤이면 썰물이 되고 보름달이 떠오른다. 줄다리가가 끝나면 줄은 마을 입구의 당산나무에 감고 ‘탈놀이’와 ‘송장놀이’도 한다.

3. 줄다리기의 성격과 의의
줄다리기는 보통 농어촌 사회의 풍요를 기원하는 지모신 신앙의 뿌리요, 용사신앙의 기원 -줄 자체가 용이나 뱀을 상징함-이며, 성행위의 모방주술적 상징을 지닌 농어촌 마을 공동체의 축원적 농경의례로서, 대개는 상원중심이며 일종의 관습화된 모의전쟁적 성격도 지니고 있다는 점들이 지적되고 있다.
그래서 이긴 편 마을이 풍년이 든다든가 암줄과 숫줄을 연결한 부분의 줄을 잘라서 다려 먹으면 임신을 한다든가, 줄을 잘라 다려 먹으면 요통이 잘 낫는다든가, 또는 줄을 썰어서 논에 거름으로 삼으면 풍년이 들고, 어부가 줄을 한 토막이라도 배에 싣고 가면 만선을 한다는 등의 민속신앙을 포함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줄다리기의 이러한 의미들 중에서 그 핵심을 이루는 것은 생명의 쇄신과 확장과 심화의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즉 음양, 암수, 양성의 화합과 조화의 원리를 놀이의 근본 원리로 삼으면서 이로부터 발생하는 생명의 약동과 확산, 진화와 전이의 무한한 생성과정을 줄을 당기는 과정으로 형상화 함으로써, 겉으로 보면 단순한 놀이가, 의미심장한 우주적 원리의 궁극에 육박해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줄다리기의 이러한 성격과 원리는 오늘날의 반생명화 물신화 기계화 되어버린 놀이문화가 어떻게 생명화 영성화 인간화될 수 있으며, 또 되어야만 하는가 하는 문제거리에 대해서 많은 암시를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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