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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2 | 칼럼·시평 [문화시평]
이철수 형께 보내는 편지
안도현 시 인(2004-01-29 10:26:50)

눈이 오시려는지 하늘이 잔뜩 흐리고 ,바람이 꽤나 맵습니다. 눈이 온다면, 형의 판화 속 이야기처럼 하루 푹 쉬고 싶은 생각이 밀물처럼 밀려오는데, 문화저널에서 형의, 전주 온다라 판화전을 보고 난 뒤의 느낌을 써 보라고 협박한 터여서, 그림동네하고는 영 거리가 먼 동네에서 노는 무식쟁이가 이렇게 편지 형식을 빌어 몇 장 원고매수를 채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닌게 아니라 형한테 편지도 한 번 드릴참이었습니다. 남자사람끼리 그리움이 있다고 한들 밤새워 쓰는 연애편지같이 아릿아릿한 맛도 없을 것이고, 이렇게 공개될 편지를 쓴다고 해서 형이 과히 불쾌하게 여기시지는 않을 듯 싶어서였습니다.
형을 처음 만났을 때 저는, 형의 표현대로 ‘볼품없이’ 생긴 사람도 이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제일 먼저 했습니다. 우리 지역에 사는 시 쓰는 김용택 형보다는 이철수 형이 훨씬 준수한 풍모라고 누가 그럽디다만, 형의 작고 맑은 눈이 그때 제 맘에 쏙 들었습니다. 저는 그 눈을 통해 우리 시대의 역량 있는 한 그림쟁이의 상상체계를 훔처보기 시작했던 거지요.
온다라미술관에서의 첫날은 술먹을 일을 조급히 기다리느라, 그리고 오랜만에 뵙게 된 봉화의 전우익 선생님과의 만남의 기쁨 때문에 70여점의 판화들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아니, 제대로 본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철수 판화가 좀 달라진 것 같다, 웬놈의 절집과 중들이 이렇게 많이 등장하나, 뭐 이런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더랬습니다. 그리고 판화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그림속의 글들이 이뻐서 ‘그림쟁이가 시인의 영역을 침범한 것’ 이라고 형에게 술자리에서 투정도 했던 것이지요. 형은 그때, 그 말을 약간 수긍하는 듯이 보이기도 했는데, 저는 그 뒤에, 해인사 출판부에서 나온 형의 판화집을 비교적 꼼꼼하게 들여다보면서 제가 했던 말을 전면 수정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책의 앞머리에, 그리고 그림마다 붙어 있는 잠언같은 글들을 읽으면서 그림과 글이 주종의 관계로 배치되어 있는 게 아니라, 둘이 서로 어울려 조화를 이루면서 독특한 울림으로 보는 이의 가슴에 와닿는 것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가령, “떠있는 배 위에 탑이 실려 있습니다. 작은 새 한 마리가 날아와 맞은편에 가볍게 내려앉았습니다. 배와 물이 살며시 움직였습니다. 새도 무게가 있습니다.” 와 같은 글이 판화 속에 없었더라면 너무 단순한 아름다움만 남는 그림이 되었으리라 짐작됩니다. 배 꽁무니에 날아와 앉은 그 작은 새 한 마리가 갖고 있는 존재의 무게를 두고 두고 생각하는 즐거움-좀더 말장난이 허용된다면, ‘존재의 즐거움’-으로부터 우리는 그동안 너무 먼 곳에 가 있었습니다. 형은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을 통해서 어려운 시대일수록 놓치기 쉬운 것들의, 작지만 큰, 그리고 소중한 이름들을 불러 보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는지요? 해, 달, 물, 산, 비, 나무, 새, 구름, 집..... 너무 흔하기 때문에 오히려 낯설게 느껴지는 물상들 앞에서 우리는 사람살이가 자연과의 어울림속에 훨씬 넉넉해질 수 있다는 걸 배우게 됩니다. 자연의 이야기가 결국은 사람의 이야기라는 깨달음도 갖게 되고요. 그래서, 새 두 마리가 밤을 새워 달을 물고 가는 장면에서는 사랑의 경건함을 생각하고, ‘윤회’에서와 같이 시장통에서나 볼 수 있는 죽은 닭대가리도 그림이 되는 것을, 오히려 더 힘찬목을 가진 닭으로 우는 것을 보고는 우리가 당도해야 할 세계의 새벽을 예감하기도 하지요.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을 두고 꼬집기를 좋아하는 이들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요. 불교의 옷을 빌려 입고 속세를 떠난 자의 신선놀음이라는 식의 비난 말이죠. 두 번째 만났을 때 형이 ‘용기’라는 말을 자신있게 하던 기억이납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늘 자신없이 글을 스고 자신 없이 말을 하곤 하던 스스로가 부끄러웠습니다. 제가 이해하기를 그것은 ‘정신’의 문제이며, 또한 ‘부드러움’의 문제였습니다. 현실은 정신이며 부드러움을 꿈꾸는 일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심한 경우 정신 나간 인간으로 매도되기도 하고, 혹은 전선에서 이탈한 자라는 불명예를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는 그동안 너무 굳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작품들은 용기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예술을 업으로, 무기로 삼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물론 이번 작품들이 정신의 일방통행만을 주장하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운수납자’에서는 도시빈민문제를, 불교에서는 핵문제를 직접적으로 표현했음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속된 말로 ‘치마 불교’ 이야기를 매섭게 지적한 작품도 있습니다. 대머리로 일컬어지는 한 사내가 숨어 있을 듯한 ‘요사채’ 그림도 있습니다. 그런 메시지가, 형의 체질이라고 여겨지는 유연한 선과 여백의 효과와 맞아 떨어지면서 사회 변혁운동에 복무하는 화가로 자리매김하는데 주저하지 않게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이번 작품들을 한 꼬챙이로 꿰는 메시지는 현실에 대한 직접적인 발언보다는 ‘목어’ 에 서와 같은 발언이 아닐까 싶습니다. 판화집 29쪽에 있는 이 그림에 대한 조각글을 옮겨 적고 싶군요. ‘장작이 모자라고, 불은 사위어가고, 급하면 그림 새긴 널판을 가져다 때는 날이 있습니다. 당장 급한 걸 어쩝니까? 이 집도 그 꼴이 난 셈입니다. 다급해지면 생각잖게 감추어진 사물의 속내가 드러나기도 합니다. 목어, 나무를 깎아 빚은 물건, 껍데기 관념으로는 군불도 때지 못합니다. 시리도록 추운 날, 한점 온기도 보태지 못하는 관념은 장작으로 써도 그만입니다. 그렇습니다. 관념보다 삶이 중요하다는 것, 두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철수 형,
지금, 이 땅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합니다. 저는 ‘개벽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도끼 하나를 들고 큰부처를 내리치려는 어린 스님처럼 가난한 사하촌 집집마다 작은 부처 하나씩을 나누어 주는 일이 우리의 몫이 아닐까요? 형은 벌써 그 어린 스님의 길에 들어서서 깊어지셨지만, 저는 어느 세월에 그 길의 출발점이라도 밟아볼 수 있을지 내심 걱정입니다. 아무 생각없이 지껄인 말들이 형의 세계 속으로 튀어든 똥물이 되지는 않았을까 염려됩니다. 다음에 만나게 될 때 꾸짖어 주십시오. 늘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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