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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2 | 특집 [특집]
마지막 종업식 -마치분교 폐교되던날-
권 진 희 사진작가,시인(2004-01-29 10:39:51)

80년대를 고비로 우리 사회는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10년간의 변화는 옛날 몇 백년의 변화보다 더 큰 것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도처에서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그중에도, 심각한 것은 농촌의 분괴현상이며 특히, 산촌에 갈수록 젊은 새댁과 어린이를 보기가 어렵게 되었다. 농가는 부채가 늘어나 폐가로 쓰러지고 삶의 터전을 등지고 도시로 떠나 어린이 수는 해마다 줄어들어 학교는 문을 닫아가고 있다.
지난 2월에 마치분교(상관초등학교)가 폐교되었다. 1965년에 설립되어 250명의 어린이들의 수가 줄기 시작하여 89년초에 15명이 남고, 그나마도 하나씩 전학하여 1년동안 6명이 줄었다. 90년 2월에 2명이 졸업하자 전교생이 7명밖에 안되는 미니학교로 축소되어 마지막 종업식과 더불어 문을 닫았다.
마치분교는 전주에서 남원가는 4차선 국도를 7분 쯤 달리다 신리에서 동쪽으로 꺾어 3㎞ 올라간 곳에 있다. 깊은 산악지대도 아닌 전주시에서 불과 12㎞ 밖에 안되는 전주의 외곽지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산에 둘러싸인 산촌이라는 지형적인 조건은 살기 위해 고향을 버리고 떠나가는 이른바, 이농현상을 가져오고 이 주변 대흥리 정수리등 5개부락에 살아온던 130여호 농가가 70여호로 줄었다. 인구가 줄어 어린이가 줄기도 했지만 떠나지 못한 집에서도 아이들을 전주 등 도시로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학부모님이 찾아와 상담하는 일이 두려웠습니다. 거의 전학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국철호 선생의 아쉬워하는 말이었다.
마치분교의 폐쇄는 비단 이학교가 없어진다는 사실 뿐 아니라 산업화에 따르는 농촌붕괴현상이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처럼 한 시대의 특징적인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현장에 접근, 마지막의 모습을 영상으로 기록하기 위해 2년간에 걸쳐 사진으로 다큐멘트하였다. 비록 한 단면이지만 80년대에서 90년대로 이행하는 우리 사회변화의 실상을 기록하는 의미가 있다는 믿음에서였다.
마지막 종업식에서 필자의 마음을 더욱 서글프게 한 것은 어린이들이나 학부모의 표정이 담담한 일이었다. 국선생의 「이 학교가 비록 없어진다 해도 본교에 열심히 다니면서 더욱 공부에 노력하라」는 마지막 훈시에 김지영 어린이가 나와 「우리 모교를 영원히 잊지 말자」라는 다소 울먹은 듯한 간단한 소감을 발표하는 순간 잠시 숙연해지는 듯 했으나 어린이들의 표정은 역시 담담하였다. 통학버스로 본교로 다닌다는 기대감에서일까! 아니면 새로운 변화에 대한 적응성 때문일까!
어쨌든 새로운 변화속에 소멸해가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마음은 착잡하였다. 그것은 오늘의 농촌현상의 한 단면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현장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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