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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1 | 연재 [문화저널]
겨울 여행
박남준 편집위원(2004-01-29 11:08:40)

작년 이맘때 쯤에 나는 동해의 그푸른 해안을 따라 남해에서부터 계속하여 북상, 북상하고 있었다. 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부터 나는 배낭을 지고 다니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내가 떠나게 될 겨울 동해에 관한 부푼 이야기를 떠 벌리고 다녔으며 어울려진 술판으로 인해 나의 여행은 계속하여 미뤄지고 있었다. 다음날도 또 그다음 날도 사람들은 내게 물었다. 그러다가 이 겨울이 다가는 것 아니냐고, “이거 아직껏 떠 나지 않았어요.” 누군가가 여행은 전송을 받으며 역의 풀랫홈을 빠져나가는 순간까지가 가장 즐거운 것이다 라는 말도 했지만 사실 나는 머릿속으로 그런 그런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여행을 미룰 수 없었다. 이제 떠나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오늘은 정말 떠납니다.” 그날 따라 평소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이 많이 모였고 기차시간 까지는 넉넉한 여유가 있었는지라 우리는 즐겨가던 슬집에 모여 술잔을 돌리고 이야기 꽃을 피웠다.
“며칠 동안의 여행을 예정하고 있는지요?” “모르겠습니다.” “십여일이 될지 한달 두달 아니면,다만 제가 말할수 있다는 것은 남해를 거쳐 동해를 북상한다는 것입니다. 언제 돌아올지, 어디까지 어디 어느곳을 돌며 돌아갈지 저 자신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밤 1시49분 여수행 기차는 마침내 전주역을 덜커덩 거리며 빠져나가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무려 열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손을 흔들며 나의 여행을 전송하고 있었고 전북대에 계시는 지선생과 오선생 두분은 다음역 까지라도 전송해 부시겠다며 무임 승차를 서슴치 않으셨다. 그장면은 내가 마치 다시는 돌아오기 어려운 먼 이국으로의 기나긴 길을 떠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그 풍경은 지금도 생각을 하면 두고두고 즐거운 상상이 되곤 하는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며칠이 될지 모르지만 그냥 헤어지기가 무엇해 다음 역까지 동행해 주시겠다던 두분은 기차안에서 마시는 술맛이 또한 일품이라며 술병을 거푸 내려 놓으셨다. 결국 두분은 다음 역에서도 그 다음 역에서도 내릴 기미를 보이지 않으셨고 승무원이 자나갈 대는 “저 우리는 지금 이사람의 여행을 전송하려고 무임승차를 하고 있습니다”라고 승무원을 잡아 세우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술 한잔 하시겠습니까?” 승무원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근무 중에는 마실 수 없답니다.” 두분은 마침내 남원역에서 담을 넘어 전주로 돌아가셨는데 뒤에서 호각소리가 나는 것같기도 하여 급히 도망을 가느라 엎어지고 자빠지고 혼줄이 나기도 했지만 참 재미있었다는 후일의 이야기를 들었다.
썰물처럼, 그랬다. 썰물처럼 두사람이 빠져나가고 비로소 나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차창 밖으로 먼 불빛들이 밀려오고 밀려갔다. 기약없는 여행, 삶은 때로 기약없이 떠나가는 기나긴 여정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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