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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2 | 칼럼·시평 [문화시평]
91학년도 예체능계 입시를 바라보며
심인택 편집위원(2004-01-29 11:18:31)




작금의 보도에 의하면 예체능계 입시에 부정 채점과 금품거래가 있는 것으로 되어있고, 몇몇 입시채점자들이 구속되는 사태도 발생했다.
이러한 사례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대학에 예․체능계통의 학과가 만들어지면서 지금까지 누적되어온 것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입시제도의 문제 뿐 만아니고 예술에 대한 가치와 일반 사회의 통념이 잘못 인식되어온 결과이기도 하다.
예술에 대한 가치 기준은 동서양이 다르고 각 나라마다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통적인 예술에 대한 미적 감각이 제대로 정립되지도 못한 상태에서 일제시대와 해방후 외국의 문화 예술이 이땅을 어지럽히게 되었다. 그 결과가 오늘날 예술 지상주의적 풍토는 부정과 부패의 온상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서양의 예술을 수입하면서 예술가는 “예술을 위한 예술”을 하는 것으로 착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예술계 뿐 만 아니라 사회 모든 문화에 만연되어 있는 듯 하다.
문화의 뿌리를 전통문화에 두고 그 가지에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 자체를 흔들어 버리니 잎과 꽃과 열매가 제대로 있지 못하고 세상 풍파에 시달리게 된다.
외래 예술이 잘못 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것대로 그 지역의 풍토에 알맞게 성장하고 그 지역 사람들의 사고와 생활방식에 적합하게 되어 있다. 그동안 우리는 전통예술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 하여 왔다. 전통예술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는 것은 우리의 정신세계가 그만큼 기반이 약하다는 의미와 같다. 전통적인 우리의 정신세계가 흐트러져 있으니 외래의 정신문화를 소화시킬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현행 예․체능계 입시의 부정 사례는 단순히 금전의 문제가 아니고 예술가들의 정신세계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 정신세계는 갑자기 바뀌는 것도 아니고, 법으로 제재를 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은 현행 교육제도와 사회교육의 전면적인 개편을 통하여 다음 세대에나 기대를 해야하며, 현재 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겸허히 자성하고 올바른 예술가의 정신을 공부하고 실천하여야 한다.
전통적인 예술가는 철저한 장인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진정한 예술가는 지고의 미를 창조하기 위하여 자신의 뼈를 깎는 인내와 정신으로 예술세계에 몰입함으로써 당대와 후대에 영원한 작품을 남기고 있다. 예술가는 자신의 수련에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제자를 양성하기가 곤란하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선생과 함께 살면서 선생의 삶과 기예를 함께 배우게 되는 경우가 흔히 있다.
엄격한 선생 밑에서 훌륭한 제자가 성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거꾸로 말하면 훌륭한 제자 두에는 엄격한 선생이 있기 때문에 선생과 제자는 항상 마음과 행동을 같이 하고 있다.
선생은 제자를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으며, 제자는 선생의 뜻에 어긋남이 없도록 생각과 행동을 하여야 한다.
이러한 사제지간의 올바른 교육이 이루어지면 사회에 누를 끼치는 일이 없어지고 예술이 삶의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전통적인 예술교육은 사람을 만드는 과정으로 가르치고 배우게 되었다. 물론 예술을 직업으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것은 일부 계층에 불과하고, 교육적인 차원에서는 다분히 예를 가르치기 위하여 악을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악사상이다.
이러한 예악사상은 조선후기에 들어와 산업사회로 바뀌고, 일제시대를 거쳐 자본주의 사회로 영입하는 과정에서 점점 사라져 갔다. 자본주의와 서양문화를 제대로 흡수하지 못한 채 예술은 정신적인 것보다는 상품으로서 이 사회에 내비치게 되었다. 특히 서양음악의 잘 못된 수입으로 음악의 격을 나누게 되어 잘사는 사람은 당연히 서양음악을 즐겨야 되는 것으로 잘못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자본주의 사회와 음악의 관계가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상태에서 대학에 음악과가 설치되고, 연주악단이 만들어지고,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는 마치 영웅이나 되는 듯이 들려주고, 보여주게 되니 자연히 일부 부유층의 자제들이 음악과에 대거 몰리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현행 예술계 대학의 수업과정을 보면 대부분 기능 위주의 교과 편성으로 되어있다. 물론 전문인을 양성하여야 하는 목적이 있기도 하지만 목적을 위한 과정도 중요하다. 목표에 대한 성취욕을 채우기 위하여 사람이 갖추어야 할 덕목과 예술가로서 살아가야 할 정신은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 짧은 기간에 많은 양을 배워야 하는 부담도 있지만 그것은 본인의 노력과 시간이 해결하는 것이지 제도가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사람 만드는 교육보다 기능을 위주로 하는 교육은 자칫 목적을 위하여 과정을 무시하고 자기 중심적인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 또한 기능 위주의 교육을 하다 보면 남보다 빨리 배워야 하는 욕심에서 급행료를 주어야 하고 선생은 그러한 교육제도를 미끼로 금품을 요구하게 된다.
결국 예술계 입시의 부정을 이러한 현행 교육제도하에 교육자와 피교육자, 그리고 학부모가 만들어내는 작품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전통적인 교육제도에 대한 충분한 연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현행 교육제도 아래 몇 십년을 보낸 지금, 그런대로 한국적인 교육제도(?)로 정착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지…….
또한 예술교육이 현재의 대학제도 아래 교육하는 것이 좋은 일인지…….
앞으로 이런 교육제도에 대한 연구가 깊이 있게 이루어 져야 하겠다.
80년대 이전에 각 대학 자율에 의해 선발되던 예술계입시제도가 80년대초 역시 부정 사례로 인하여 공동관리제가 마련되었으나 심사위원들의 부도덕한 행동으로 인하여 더욱 지능화되었고, 학부모의 부담은 이중․삼중으로 늘어나게 되어 오늘이 이르렀다.
예술계 전공 교육의 특징은 도제식 교육과 각 선생의 특징을 지도․전수하는데 있다.
그렇다면 제자를 선발하는 과정에서 선생의 권한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현재의 선발과정은 남이 뽑아준 학생을 자기 제자로 삼아야 하는 기묘한 교육제도이다. 그 결과 앞으로 가르쳐야 하는 선생은 입시에 관심이 없고, 뜻이 있는 선생도 자기 제자에 대한 애착이 더욱 멀어져 가게 되니 수험생과 학부모는 당연히 공동관리 시험의 허점을 찾게 된다. 그리고 심사위원에 위촉될 수 있는 선생들은 부정 채점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공동관리라는 합법적인 제도에 빨려 들게 된다.
아무튼 입시에 부정이 있다는 사실은 불행한 일이다. 이러한 부정행위는 첫째로 대학에 몸담고 있는 교수의 자질을 의심하게 하는 행위로 볼 수밖에 없다. 예능계 일부의 부도덕한 교수들 때문에 예술계 전체가 괴로움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한다. 둘째로 현행입시제도를 개선하여야 한다. 차제에 한가지 제언을 한다면 예능계 입시는 해당대학교수와 초빙된 심사위원을 일정 비율로 정하고 시험장의 비인간적인 커텐이나 심사위원의 감시보다는 공개시험을 거치는 동안 관계자의 관람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즉 공개된 시험장에서 심사위원의 채점표가 공개된다면 이러한 부정행위는 쉽게 근절 될 수 있으며, 과외지도비에 대한 세무조사도 함께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능계 비리는 단순히 예능계의 책임으로만 돌려서는 안된다. 우리나라의 문화 여건이 이렇나 행위를 유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화예술은 단시간에 고쳐지는 것이 아니다. 오랜 관습과 습성이 바로 이러한 문제를 낳고 있다. 사회 전반에 걸쳐 양심적이고 도덕적인 사람이 올바로 살 수 있도록 되어 있다면 예능계의 비리는 나올 수 없다.
이번 예술계의 비리가 거울이 되어 문화 예술인들의 각성이 있기를 바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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