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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2 | 칼럼·시평 [서평]
「완전한 만남」 (김하기, 창작과 비평사. 1990)
조명원 편집위원(2004-01-29 11:23:16)

1990년은 우리 역사상 통일논의가 가장 활발했던 해였다. 임수경과 문목사로 대표되는 선진적인 발걸음은 한반도에 뜨거운 통일 열기를 불러 일으켰고, 때마침 무너져내린 베를린 장벽은 통일을 열망하는 민중들에게 한가닥 희망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차원의 요란한 남북한 교류는 달구어 질대로 달구어진 우리들의 가슴에 갈증만 보태주었을 뿐이었다. 오래 전(7․4공동성명당시)이미 한번 좌절을 경험했건만 ‘이번에는 혹시…’하고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아들, 딸들이었다. 이렇게 더는 외면할래야 할 수 없는 통일문제는 우리 문화 속에서 또 하나의 풍부한 자양이 되고 있다. 그리고 그 자양으로 싹을 틔운 하나의 문학작품이 최근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하기의 『완전한 만남』은 제목이 말해주듯 통일지향, 혹은 분단극복의 소설모음이다. 때로는 감옥소설이라 불리우기도 하지만 그것은 적절치 않은 분류일 것이다. 그 점은 미전향 장기수 소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런 이름이 타당한 것은 극히 좁은 의미에서의 소재적인 측면에 한할 때일 뿐이다.
작가가 감옥과 미전향 장기수를 주요 제재로 삼은 것은 자신이 불과 2-3년 전까지 10년 가까운 세월을 삶의 현장이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사회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미전향 장기수의 문제는 역사의 한 갈피에 묻힌 채 망각되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곧 역사의 단절을 의미한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김하기의 소설에 등장하는 그들의 얘기는 단절된 역사의 기록에 그치지 않는다. 김하기는 그 역사의 현재적 의미를 캐내고, 진정으로 현재와 미래에 계승되어야 할 투쟁정신을 일깨워 주는데 주력한다. 그들의 청청한 신념은 한없이 넓고 따뜻한 인간애를 매개로 하여 눈멀고 귀먹은 젊은이나 청산주의에 사로잡힌 학생운동가의 눈을 띄우고 중심을 세워 새로운 결의를 다지게 하는 힘의 원천이다. 「뿌리 내리기」의 두혁이 후자의 경우라면 「첫눈 내리는 날」의 원기와 「노역장 이야기」의 영배는 전자의 전형이다.
이 점은 김하기 소설의 결말이 모두 낙관적인 전망을 제시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또 여러 곳에서 만나게 되는 그의 탁월한 형상화 능력은 사실주의 작가로서 모자람이 없다.(여기서 ‘전형성’, ‘총체성’, ‘세계사적 시각’등 루카치의 용어를 굳이 도식적으로 적용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비판적 리얼리즘을 극복하고 새로운 현실주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보다 치밀한 구성이 요구되어야 할 듯 하다.
「첫눈 내리는 날」의 원기가 터무니없이 국가보안법에 걸려(북한의 선전삐라를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 동봉한 것이 발각)특사(미전향 장기수들의 특별사동)에 배정된 직후 보이는 반응(“간첩이 뭘 자랑이라고 간첩이 나고 진수는 내 조카라고 떠드는 교. 아무리 한 고향 사람이지만 난 간첩하고는 말 안해요”)은 극히 자연스럽고 전형적이다. 또 그가 한고향 아저씨인 장기수 이상우씨와의 만남을 통해 역사의 진실을 터득해가는 과정도 감동적일 만큼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이런 뒤틀린 역사를 바로 잡아나갈 사람’으로서의 자신의 역할이 주물바가지를 든(그는 군입대전에 주물공장 노동자였다) 노동현장에 있다는 인식으로 발전하는 결말은 약한 성급한 인상을 준다. 반면에 그 바로 앞부분에 묘사된 장벽하물기가 주는 의미는 이 소설의 백미요, 작품집 전체를 관통하는 혈맥이 된다.
「해미」에서 부엌 옆 비밀아지트에 5년 씩 큰아들(6․25때 월북했다가 남파된 간첩)을 숨겨온 할머니가 넋두리로 기다려온 “ 쥑일놈의 툉일,이 왠수녀러 툉일”이 되는 날에야 이루어질 완전함 만남은 어떤 것일까. 「완전한 만남」의 송춘호는 말한다. “저도 이번 상봉으로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마뜩찮게 열 번 백번 만나는 것보다 단 한번이라도 가슴을 열고 만나는게 모든걸 풀 수 있는 열쇠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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