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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2 | 칼럼·시평 [시]
별이 지는 날
박남준 시인(2004-01-29 11:32:37)

40. 별빛에 실려
겨울밤의 하늘엔 별들
참 낮게도 내려와 빛을 뿌려요
저 맑고도 고운 별빛
내가 키발을 딛고 훠얼 훨 손짓하면
금세 다가 설 것 같은 별 하나
당신의 훤한 얼굴 실려 왔어요

41. 새의 죽음
간절하다 그대의 노래 안타까운 그리움
나의 아픈 몸 노래가 되어 그대곁에 날지 못하니
어찌 이러할까 작은새 한 마리 젖은 깃을 내려
겨울 비, 나무 끝에 떨고

그대 바람부는 황야 나의 노래 안길 수 없다
부르면 부를수록 그대는 멀어지고
자 때가 되었어 울지 않아 이미 예감한 일이니
이제 깊은 잠 꿈도 없이 고혼으로 떠돌 넋
아득해져 눕고 싶어
아득해져, 가물거리며 아득해져와

42. 잊었는가
생각했다 한때의 사랑을 생각했다 쉬임없이 피어나던 한때의 그리움도 한때의 한때의, 정녕 한때였는가 다시 나는 생각한다 절망을, 그 절망속에 일어나던 증오를 타오르는 적개심을 뼈마디와 뼈마디 온 관절을 우두둑 부딪치며 솟구치던 쓰러지지 않을 분노 이 시대의 눈물나던 참 사랑법을 잊었는가 나는 영영

43. 눈을 감은 사람
그후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어 저벅 저벅 발자국 소리 콰당 - 쇠창을 닫는 소리 내 잠을 비집고 숨조여 오는 밤 제발, 날 이젠 가만히 내버려 둬 가위 눌려 신음하다 외마디 비명에 깨어나는 한밤 미치겠어 어쩌란 말이야 으아 - 머리를 쥐어 뜯으며 도리질을 치다치다 새벽 담배 연기로 토해내는 눈물, 이미 산 사람의 것이 아닌 한숨

44. 한걸음의 발자욱도 부르는 노래가 되어
한걸음의 발걸음도 그냥 뗄 수 없는데
한걸음의 발자욱도
부르는 노래가 되어 나오는데
노래했지요 꽃피고 꽃지는 일
더러 피지 못하고 피어 오르던 꽃
지고 말았어요
다시 노래했어요
눈물 흐르는 일
흘러서 흐르는 일
흐르는데로 흘러 보내며
해 뜨고 해 지는 날로
눈을 감고 눈을 떴어요
무심코 발걸음을 떼고 또
그 길을 따라 걸었다는 것이지요
흰눈 내려 쌓이는 날
뒤돌아 보니 하얀 눈길위 도장을 찍듯
뚜렷이도 따라오는 내 발자국
아 길을 간다는 것, 산다는 것이
저렇듯 눈길위에 발자욱을 새기며
간다는 것이었는데

여기는 어디인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제껏 살아온, 지나온 삶과
그 길우에 내가 새기며 걸어 왔을
무심한 발자욱들, 참담하던 날
한걸음의 발걸음도 그냥 뗄 수 없구나
저 무수한 길을 향해 달려 갔던 사람들
그 발자욱마다에 실려오는
숨가쁜 땅의 역사

한걸음의 발자욱도
부르는 노래가 되어 나오는 구나

45. 별이 지는 날
어디 마음 둘 곳 없습니다
그가 떠나서만이 아니고요
산다는 것이 서러웠습니다

빨래를 널 듯 내 그리움을 펼쳐
겨울 나뭇가지에 드리웠습니다
이제 해 지면
깃발처럼 나부끼던 안타까움도
어둠에 뭍혀 보이지 않을까요

어디 마음 둘 곳 없습니다
별이 뜨고 별 하나 지는 밤
언제인가 내 오랜 기다림도
눈 감을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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