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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2 | 칼럼·시평 [문화칼럼]
도박심리의 모순이론
김용철 사진작가(2004-01-29 11:33:51)

두 낱말이 일상적인 의미로는 서로 모순되지만 이런 두 낱말을 결합해서 역설적인 효과를 높이는데 문학용어로 모순어법(dxymoron)이란 말이 있다. 예를 들면 “군중속의 고독”이라든가 밀튼의 「실락원」에 나오는 ‘당신의 옷자락은 어두우면서도 눈부시게 빛납니다’라고 하나님의 외모를 묘사하는 대목같은 수사학적 기교가 그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자구의 의미 그대로 모순이론이라 하는데, 인간의 정서, 감정, 심리 등에 서로 상치되는 개념이 뒤섞여 있을 때를 말하며 노름꾼의 도박심리가 그 좋은 예이다. 여기서 도박의 심리를 열거해 보면
첫째, 도박 심리의 근저에는 오이디프스 콤플렉스가 깔려 있다.
둘째, 도박꾼은 도박꾼 자신이 스스로를 징벌하는 심리현상이다.
셋째, 정신적 자기학대의 한 형태이다.
넷째, 삼라만상의 상대성과 한계성에 관한 성숙한 이해가 아직 정립되지 않은 유년기의 어린이들에게서 보이는, 무엇이든지 원하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자신의 전지전능함에 대한 근거없는 확신이 반영된 행위이다.
다섯째, 이겨서 따겠다는 의식적인 욕망보다 져서 잃겠다는 무의식적인 욕구이다.
위 항목들을 다시 요약하면 잃는 불쾌감이 무의식적으로 죄책감을 불러 일으키고, 그래서 스스로를 징벌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정신적인 자기 학대이며 동시에 자기처벌의 쾌감이 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처벌을 무효화시키는 교묘한 심리적 장치를 스스로 만들어 가고 있는 셈이며, 다시 도박에 탐닉한 바탕을 마련해 주고 있다.
열거한 위의 항목들 가운데서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둘째, 넷째, 다섯째 항인데 두 번째 항부터 살펴보자.
도박은 건전한 사회에서는 항상 지탄의 대상이 된다. 거기다 돈까지 날렸으니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반성을 하게되며 이것이 극에 달하면 다시는 도박을 하지 않겠다는 징표로 손가락까지 자르는 징벌을 자행한다. 그러나 며칠이 못가서 손가락의 붕대를 풀기도 전에 논문서, 집문서 거머쥐고 다시 그 판에 뛰어드는게 노름꾼이다.
유년기의 어린이들은 막무가내로 떼를 잘 쓴다. 그것은 앞에 쓴 네 번째 항의 내용이 바로 말해주고 있듯이 자기의 뜻이 관철될 때까지 아무곳에나 나뒹굴어 발을 퉁탕거리며 악을 쓰고 울어댄다. 대개는 매를 맞기도 하지만 목적을 달성할 때도 있다. 논리의 비약인지는 모르지만 이런 떼씀은 「나 아니면 안된다」는 극단적 이기심으로까지 발전되며 무의식적으로 도박심리에 기저를 둔 것이다. 어린이가 아닌 성인이 이런 이기심을 키우면 어떻게 될 것인가. 자명한 이치대로 그것은 바로 독재자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독재자의 수명은 길지 못하며 말로가 도박사의 그것처럼 처참한 것이다.
특히 다선번째 항을 분석해 보면, 이제 그럴듯하게 국민적 오락으로까지 발전(?)한 고스톱은 어느새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으며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어떠한 조건에서도 버젓하게 즐겨지고 있다. 그런데 해가 거듭 될 수록 소위 고스톱 규칙이 더 보태지며 복잡해지기도 하거니와 지역간 계층간에 따라 유행하는 규칙도 달라지고 있는데, 그 양상이 한탕주의로 자꾸 흐르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일격에 상대방을 거덜내자는 수작이다. 그런데 가관인 것은 ‘쓰리고’는 예술이니 기립박수를 쳐주자는 것이다. 대로는 가진 돈을 몽땅 날려버릴 수도 있는데 일어서서 박수를 쳐주자는 것은 분명 모순이다. 바로 이 모순이 도박심리의 핵심인 것이며 이런 행위는 꼭 딸 수 있다는 확신감 보다도 잃어도 화끈하게 잃겠다는 무의식적 태도에 다름 아니다. 이 화끈함이 때로는 가증스런 결과를 초래하곤 한다. 이미 보도되리라고 인파속으로 차를 질주시켜 어린이 한명이 생명을 잃고 여러명이 중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 본인의 개인적 불행이나 사회적인 냉대는 논과만을 놓고 볼 때 이 또한 잃어도 화끈하게 잃겠다는(죽겠다는) 도박꾼의 막판생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지금까지 거칠게나마 우리 사회와 인간의 병리적 현상을 도박심리의 이론으로 풀어보았지만, 이런 것은 차라리 한두어 가지의 예에 불과할 뿐이다. 가깝게 살펴보아 작년 한해 동안 일어난 굵직한 사건들을 보면 실로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그러나 더욱 경계하고 염려해야 될 일은 우리 이웃 대다수가 자신도 모르게 도박심리에 너나 할 것없이 집단적으로 감염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스스로 평범한 사람임을 자처하는 보통사람들 또는 이 나라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지식인들 조차도 기회만 포착되면 자신이 손가락질하던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보려고 안달이 나 있는 것이다. 자다가도 웃을 일이지만 가히 ‘도박심리 신드롬’이라 할 만하다.
어쩌면 인간은 누구나 잠재적으로 도박성으로 타고 났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잠재우고 순치시키기 위하여 이제는 올바른 놀이문화에 대하여 다시금 곰곰이 생각해 볼 때이다. 물론 나름대로 타당성과 목적을 가지고 많은 예산과 정열을 기울여 치루는 행사이겠지만 외형이나 모방하고 화려함이나 꾸미는 복제품 같은 정부가 이끄는 행사이거나 떠들썩 하기만한 일회성 잔치 또는 포장지와도 같이 순간의 보여짐을 위한 행위로 끝나는 놀이가 아니라, 그 정신까지 일생생활속에 녹아 들어 ‘살아가는 사람의 살아가는 사람에 의한, 살아있는‘놀이 이면서도 좀 더 생산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놀이가 되어야 되지 않을까?
그래서 도박 심리의 모순이론이 가설이나 추측, 다시 말해서 이론으로서만 존재할 뿐 더 이상 사실적으로 확인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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