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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4 | 칼럼·시평 [문화시평]
극단 <불꽃>을 지켜보며
김정수 연출가(2004-01-29 12:03:59)

지리한 봄비가 게속되기도 하고 제법 따사롱누 햇살이 얼굴과 가슴을 간지럽게도 해대는 3월의 변덕스러움속에서도 전혀 이러한 변화를 의식할 수 없으리만치 음습한 德津의 한 귀퉁이 지하실에서는 공연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 흔한 포스터나 팜플렛도 없이 공연작업에 열정을 쏟아 붓고 있는 이들은 작년 10월, 이 지역에서 진보적 연극운동의 역할을 자임하며 창단의 기치를 들었던 극단 <불꽃> (대표:권영술)의 주역들이다.
몇 년 전부터 이 지역 노동자들의 삶과 의식을 고취시키고 노동자문화의 터를 닦는 예술집단을 준비해 온 이들은 주로 전북대학교 극예술 연구회 <기린극회> 출신들로 최근 힘들게 소극장을 마련함으로써 본격적인 공연작업을 착수할 수 있게 되었다.
이미 전북대학교 합동대강당 무대에서 공연된 창단작품 『다시피는 불꽃』(정형수 作/국선순 演出)을 통해 그 지향성을 충분히 드러내 보인 극단 <불꽃>은 지난 2월말 제 2회 정기공연을 통해서도 진보적 극단으로서의 면모를 다졌다.
<창작소극장>에서 공연된 두 번째 작품『미포만의 日出』(박제홍 作/장종택 演出)은 원제가 서울소재 진보적 극단 <한강>의 단원이자 극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박제홍씨의 희곡『골리앗 그보다 더 높이』로 작년도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의 골리앗 점거농성투쟁을 그 소재로 취하고 있다. 사건 전개의 순서를 따라 구성된 이 작품은 단원들의 의욕적인 노력만큼이나 상당한 호응을 얻어냈지만 작품의 조연출을 담당했던 최은봉씨의 설명처럼 현대중공업투쟁을 감동적으로 보여주고 전망까지 제시하기엔 작품의 한계, 혹은 극구성의 한계가 엄존하고 있지 않았나 싶다.
자체 연습장면 공연장으로 활용하고 있는 <불꽃 소극장>에서 갖고 있는 제3회공연 『동숙이의 꿈』(국성순 연출)도 비슷한 양상의 작품이다. 극단<불꽃>이 현장 투입용으로 제작한 이 작품은 문화운동단체에서 구성된 작품을 여성 사업장이 많은 지역상황에 맞추어 주인공을 여성으로 바꾸어 개작한 2인극으로 노사간의 싸움을 통해 눈떠가는 주인공 <동숙>의 의식과 정신적 무장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이처럼 일관된 주제로 작업에 임하고 있는 <불꽃>의 성과를 가늠해 보는 것은 아직 이르다는 생각이며 3회에 걸친 공연의 평가도 다양하게 엇갈린 반응을 예상할 수 있다. 이것은 예술을 접근하고 이해하며 행위 하는 시각에 관한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한 문제이며, 기존 극단과는 사뭇 다른 <불꽃>의 특징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활동에서 드러난 두드러진 면모와 문제점은 분명 존재하며 최소한 예술장르에 복무하는 극단으로서의 자기점검은 꾸준히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노동자들에겐 문화가 없다’라는 극단적 진단이 나오리만치 열악한 환경속에서 <불꽃>이 안아야 할 짐은 크다. 여타 극단이 고질적으로 안고 있는 재정난, 인력난은 훨씬 뒤로 미루고라도 현장운동을 전개하는 입장에서의 과제는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그 첫째로는 보다 명확한 위상확립과 방향설정에 관한 문제다. 일면 날카롭게 보이는 지향점이 의외로 관념적인 함정에 매몰되는 현상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아울러 노동자로서의 현장 경험이 없는 공연제작자의 의도가 자칫 노동자의 눈엔 ‘풋’ 스럽게 비춰질 수도 있다. 이를테면 심각한 노사분규를 경험한 노동집단에서의 노사분규소재의 연극공연은 상대적으로 덜 심각한 생각거리에 불과하거나 웃음거리로 전락할 우려가 다분히 있는 것이다. 말장난 같은 말인데 극이 극보다 더 극적인 현실을 예술적인 힘으로 극복하지 못했을 경우 야기될 수 있다. 때문에 작업에 있어 보다 구체적인 지향과 변화를 꾀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대중성 확보이다. 모든 극단의 고민에 해당되는 말이지만 노동현장공연을 목표로 하는 경우에는 관객을 기다리지 않고 쉬임 없이 찾아 나서야 한다. 이것은 기획능력에 관한 문제인데 현재 <민중문화예술운동연합>측의 기획협조를 능가하는 자체 내 기획, 섭외능력을 배양시켜야 할 것이다. 또한 일반 관객과의 만남도 지속적으로 유지시켜 노동자의 문제를 사회에 제기하고 사회의 문제를 노동자에게 전하는 매개체의 역할도 기대해 볼만하다.
마지막으로 예술성의 제고이다. ‘예술을 통한 운동’을 표방할수록 예술적 완성도에 대한 집착이 더욱 더 상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이 예술은 서로의 감동을 교류한다는 기본적 애정과 이해로부터 싹터야 한다. 극작에서 연출, 배우등 극단 역량을 고조시키는 모든 부문들을 독자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틀을 갖추는 것도 시급한 문제중의 하나다.
아무튼 90년대 전북 연극에 새롭게 태동하는 극단<불꽃>이. 겨우 20평이 될까 말까한 좁은 연습장겸 극장도 기뻐 사용하는 <불꽃> 단원들이 이 지역 연극발전에 일익을 담당하며 지속적인 공연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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