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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4 | 칼럼·시평 [시]
박봉우 시인 1주기를 맞이하여
문화저널(2004-01-29 12:11:11)





시인 박봉우. 그가 세상을 떠난지도 벌써 1년이 넘었습니다. 휴전선의 시인이라고도 불리웠던 그이름처럼 분단조국의 질곡 앞에 온 몸, 온 가슴이 참담하도록 좌초되며 살아갔던 시인이었습니다. 이 지면이 그의 일주년 추모기념 특집으로 꾸며짐이 마땅했으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한 그 부족함을 그를 아끼던 모든분께 사과드립니다.
여기에 실은 3편의 시는 그가 작고하기 이전 근래에 쓰여진 시입니다. 말년의 분단조국앞에 선 그의 외로운 분노와 세상에 대한 쓸쓸한 그리고 그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라 여겨 많은 미발표 유고중에서 발취한 것입니다. 이글을 실을 수 있도록 원고를 쾌히 주신 시인의 아들, 딸, 나라, 겨레 두분께 이 지면을 통해 감사드리며 앞으로 박봉우 시인의 시비 건립등과 같은 추모제가 그가 말년을 보낸 이 지역의 산천에서 이루어 질 수 있는 작은 기반들을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봄 비


한이 있다면
웃으리라
저문 밤에
홀로 남아
촛불을 켜리라
사랑도
이별도
고독한 이름이다
봄비를 맞으며
양지를 향하리
한 많은 이름들아
나는
눈을 부릅뜨고 있다.








기다리는 그날 앞에 동지여

공장들은 자꾸 세워지는데
길은 자꾸 넓어지는데
나는 더욱 가난해 지는
변두리의 고아
모든 신문들을 피해서
살아가는 육신은 금이간다.
알뜰한 양심도
피끓는 조국애도
이 땅에선 버림 받은
슬픈 일기를
하늘에 그리면서
지평에 서 있는 안타까움이여
뼈에 사무친 음악을 들으면서
언제고 올 우리들의 날을
아아 우리들의 날을
역사에 두고 거즛없이
눈물로 살아가는 구나
한마디 만세를 부를 수 있는
진정 기다리는 그날 앞에
동지여 동지여
없는가
우리는 병원에서도 버림받은
흐느끼는 갈대다
한번 다시 터질
진정 그날이여














밤이 되면 만나지

문을 열면
만나지
떨리는 손목으로
술집 문을 열면
여려 얼굴들을
만나지
쌀값도
연탄값도 걱정없이
술을 들고 있지
아들 딸 들의
껑충 뛴 등록금도 잊고
술을 들고 있지
나도 한잔 오랜만에
화난 기분에
들어볼까
어린 북어새끼들을
우선 씹으며
목청을
가다듬는다


고약한 세상에
고약한 얼굴들은
없고
또 한잔에
어둠들이 물러난다
한잔 더 마셔야지
또 마셔야지
반가와서 마시고
억울해서 마시고
슬퍼서 마시고
젊어서 한잔
늙어서 한잔
밤은 이렇게 만나지
신문기사 일단짜리를 읽으면
용케도
흥분을 참는
대담한 동지들은
우선 술을 들지
밤엔 약속없이
문을 열면 만나지…



․1934년 시인 박봉우 선생은 전남 광주에서 5남매중 막내로 태어났다.
․1955년 광주고등학교를 거쳐 전남대 문리대 정치학과에 입학하였다.
․195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휴전선’이 당선되어 문잔에 등단했다.
․1990년 3월 1일 밤 평소 그가 즐겨하던 술자리가 파한 후 잠자리에 들어 고요히 세상을 떠남
유족으로 그의 남다른 뜨거운 조국애의 숨결을 알 수 있는 남매 ‘나라',‘겨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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