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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4 | 칼럼·시평 [문화칼럼]
낙동강 상수원 페놀오염사건의 교훈
지역사회연구모임(2004-01-29 12:15:52)

때는 바야흐로 제 1,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마감되어 가고 한국경제운용의 정책기조가 경공업육성에서 중화학공업화정책으로 전화되던 71년 8월 어느날, 공해방지법 시행령이 처음올 경제장관회의 상정되고 있었다. 회의를 주재하던 당시의 김모 부총리는 자료를 훑어 보다가 시행령 초안을 작성한 보사부 법무담당관을 향해 힐책의 소리를 던졌다.
“돌대가리 같은 친구 같으니, 공해문제가 중요한 지는 나도 알아. 그러니 차관으로 경제건설하는 마당에 공해방지시설까지 하자면 빚을 더 내야 할 것이 아닌가. 지금은 경제건설부터 먼저 할 때야. 공해방지시설은 앞으로 공장들이 번 돈으로 하면 돼.”<한국공해문제연구소 엮음.『한국의 공해지도』,(86, 일월서각)에서 인용>
그후 20년이 흐른 오늘, 삼천리 금수강산은 온통 공해로 물들었고 재벌들은 그 땅을 딛고 우뚝섰다. 사실 지난 20여년간 공업화의 혜택을 받은 지역은 꼭 그만큼의 오염물질을 뒤집어 쓰고 있었다. 서울, 인천에서 부산, 울산, 포항으로, 그리고 마산, 창원을 거쳐 온산, 여천, 광양에 이르기까지 공단이 들어서는 곳이면, 그곳은 어김없이 공해도시가 되어버렸다.
지난 3월 하순 대구, 부산, 마산등지에서 전해온 상수도원의 오염사건은 남쪽으로부터 봄을 알리는 꽃소식을 기대하고 있던 우리에게는 너무도 섬짓한 소식이었다. 이제 공해는 가장 안전해야 할 식수에까지도 침투하고 말았단 말인가! 악취 풍기는 수돗물을 며칠씩 그냥 마셨다는 어느 임산부의 이야기는 연민을 넘어 이제 공해로부터 우리들 중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구체적인 확신조차 안겨주었다. 식수오염문제는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재작년쯤 수돗물 파동이 있었을 때, ‘우리의 수돗물은 절대 안전하다’고 그래서 ‘나도 수돗물을 그냥 마신다’고 카메라 앞에서 수돗물 한 컵을 벌컥벌컥 마시던 어느 고위층 인사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었던, 그래서 그 흔한 정수기 하나 마련하지 않았던 서민들에게는 이번 사건은 충격을 넘어 배신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공해가 국민의 건강 뿐 아니라 생활의 터전 자체를 위협하기 시작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번 페놀사태의 피해자인 낙동강 뿐 아니라 한강, 금강, 영산강, 그 어디도 이미 예전의 맑은 물이 아니며, 심지어는 마을앞 개울까지도 공해에 물들어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던 어린시절’ 은 이제는 그야말로 어린시절의 추억일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영광 원자력 발전소 부근에서 무뇌아를 출산했다는 소문이 헛소문이 아니라는 것도, 농약중독으로 인해 매년 천명 가량의 농민이 목숨을 잃는다는 것도, 정부나 기업가가 아무리 아니라 우겨도 노동자들의 수은중독, 납중독이 공해산업에 의한 직업병이라는 것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말하자면, 이번의 낙동강 상수원 페놀오염사건은 공해가 우리의 삶을 완전히 지배했음을 알리는 극히 부분적인 사건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중요한 점은 이번 사건이 공해의 심각성을 알려주었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공해문제에 있어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밝혀주었다는 점에 있다. 그동안 우리는 정부가 주도하는 ‘자연보호 캠페인’을 보면서 환경문제에 관한 한 국민 모두가 가해자라는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우리강산을 ‘푸르게 푸르게’가꾸자는 캠페인을 대하면서 지난 여름 산과 바다에서 먹고 마신 고기와 숲들을 조금씩 부끄러워하던 우리들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국민 모두에게 책임의식을 강요해 온 정부가 독점 기업가들에게는 이미 선진국에서는 제조가 금지된 맹독성 농약의 제조를 허용해 왔고, 그 농약의 과다사용이 문제가 되었던 골프장건설을 작년 한해에만도 10여건 이상 허가 했으며, 무분별한 공단건설을 통해 수천, 수만의 지역주민을 삶의 터전으로부터 내몰고, 공장에서 흘러나오는 폐수와 오염물질로 인한 피해를 온전히 어민과 농민, 그리고 국민대중에게 전가시켜 왔음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것은 돈이 벌리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는 자본의 논리와 그들 자본으로부터 정권 유지의 근거를 확보해야만 하는 반민중적 정권의 필연적인 결합의 의미하는 것이다.
감히 말하건대, 이윤을 위해서라면 선진국의 공해산업조차 수입하고 또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폐수를 강물에 흘려보내는, 그러다가 문제가 일자, 정말 ‘본의아니게 문제를 일으켜서 죄송’하다는 저들 독점자본과, 경제발전과 지역개발이라는 명분으로 법적, 제도적으로 심지어는 폭력적으로 독점자본의 환경독점을 허용, 조장해 오다가 역시 문제가 발생하자 그것이 하필이면 선거 직전에 그것도 여당의 아성인 지역에서 발생한 그 재수없음을 ‘진정으로 유감으로’ 여기는 정권의 지배자들이 공해문제의 실질적인 가해자인 것이다.
수돗물에서 악취가 난다는 시민들의 진정을 ‘염려말라’며 무시하다가 이제와서는 ‘인력이 워낙 달려서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는 행정관료들에게 무엇을 더 기대할 것인가. 이제는 저들의 각성 또는 윤리의식의 회복에 공해문제의 해결을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어쩌면 저들에게 문제의 해결을 맡겨놓고 있었던 것이 넌센스였는지도 모른다. 비단 공해문제 뿐 아니라 독점과 박탈로부터, 소유와 비소유로부터, 더 나아가 지배와 피지배로부터 비롯되는 모든 문제는 아래로부터 그 해결의 힘이 솟구치는 것이 아니던가.
다행스럽게도 최근 대구, 부산 등지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주민 스스로가 자치단체를 결성하고 또 시민단체연합을 조직하여 지역의 환경을 직접 감시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자본가를 응징하기로 했다. 이것은 낙동강 유역의 문제는 아니다. ‘조국근대화’는 우리 땅 어디에서도 예외 없이 진행되고 있다. 제 2의 <미나마따 사건>이 근대화와 경제성장을 배경으로 발생하기 전에, 더 늦게 전에 우리 스스로가 나서야 한다. 왜냐하면 그 피해자는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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