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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5 | 연재 [교사일기]
밤마다 사표 쓴 교사
김민․전 진안여고 교사(2004-01-29 13:39:02)

교단에 선 8년 5개월 동안 나와 만났던 수많은 학생들에게 알게 모르게 지은 죄/ 혹은 말로ㅡ 혹은 체벌로, 혹은 비웃음으로, 혹은 무관심으로, 혹은 멍청함과 게으름으로 -를 이루 다 헤아릴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아니 끔찍하다 그러나 이 끔찍한 죄상을 낱낱이 고해하기에는 아직 내가 사람이 덜 됐다. 그 중 아주 경미한 것만 그것도 햇병아리 교사 시절의 하루 생활을 중심으로 고해하여 죄의 탕감과 보속을 구하고자 한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 1981년 3월, 나는 장수군에 있는 장수중학교 교사로서 첫발을 내딛었다. 1학년 담임을 맡았다. 54명이었다. 2학년때도 입을 수 있는 큼직막한 검정교복에 쑥 나와있는 빡빡머리, 산호알처럼 까만 눈동자, 영락없는 새끼 까마귀들이었다. 사무분장은 교내 생활지도를 맡았다. 아침마다 졸개들(선두부 학생) 두세명을 거느리고 교문 앞에 서서 학생들을 단속하였다. 명찰, 뺏지, 모자, 신발 등등이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지각생 단속이었다. 한줄이나 두줄로 세워서 운동장을 돌게 하거나 토끼뜀을 시키고 풀을 뽑고 휴지를 줍게 하였다. 물론 위반 학생들의 명단과 반별 숫자를 주임과 담임에게 보고․전달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게 끝나면 교무회의에 참석한다. 말이 좋아 회의-모여 의논하는 것이지, 일방적인 지시, 명령, 전달시간이었다. 교장, 교감, 주임교사가 열심히 말하면 평교사는 열심히 듣고 qe아 적을 뿐이다. 심지어 교장, 교감의 지시 사항이 학생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교무수첩을 제출하여 검사할 정도였으니. 이제 학급조회다. 먼저 교무회의 시간에 교실에서 뛰고 떠든 학생부터 잡아낸다. 우리반 교실 바로 밑이 교무실이다. 조금만 떠들거나 뛰어도 교무실에 그대로 들렸고, 이 소음의 크기와 내 능력의 크기는 반비례하였다. “아침자율학습시간에 누가 떠들라고 했어? 니가 이학교 전세냈냐? 아침 일찍 와서 조영히 공부하라고 했잖아!. 너는 왜 뛰어다녀? 교실이 느그 마당이냐? 뒷꿈치는 들고 앞꿈치로만 살살다니라고 했잖아!” 이렇게 기를 죽이고 분위기를 잡은 다음 ‘내라’는 소리다. 수업료 내고, 저금내고, 성금내고, 청소도구 내고, 똥내고, 반공 포스트와 글짓기 내고, 다음엔 ‘하지마라’소리다. 떠들지 말고, 싸우지 말고, 남의 물건 소대지 말고, 도시락 너무 일찍 먹지 말고, 내가 교무실서 아무 말 없이 그저 듣고 있었던 것처럼 학생들도 아무말 없이 듣고만 있었다. 수업시간이다. 무섭게 하였다. 어린애들 이뻐하면 코 묻은 밥 먹는다. 처음에 풀어줬다 나중에 잡을려면 안된다. 애들한테 오냐오냐 하면 어깨 위로, 머리위로 올라탄다는 말을 발령 전은 물론 후에도 누누이 들었다. 옆사람과 얘기하거나 흐트러진 자세를 용납하지 않았다. 판소하다가 떠드는 소리가 들치면 누가 입으로 글씨쓰냐? 그래도 안되면 분필이 화살되어 날아갔다. 그래도 학생들 입은 살아 있었다. 결국은 잡아냈다. 앞에 나온 학생으로 하여금 떠든 학생을 잡아내게 하여 ‘이어보초서기’를 하였다. 심한 경우에는 학생 두 명을 마주보고 왼손으로 상대편의 귀를 잡게 하고 오른손으로 상대편의 빰을 때리게 하였다. 만약 철썩 소리가 나지 않으면 내가 대신 잡아서 어떻게 때려야 정신이 번쩍 드는지 시범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편했다. 손 안대고 코 푸는 것 같았다. 덕분에 수업시간은 절간처럼 조용했다. 간혹 고약한 녀석들은 교무실로 따라와! 무릎 꿇어! 이 정도만 해 놓으면 옆에 있는 교사들이 여기저기서 무차별 폭격을 한다. 저 녀석 왜 또 왔어. 저거 사람되기는 떡 쪄먹고 시루 엎었어. 그렇게 안봤는데 다시 봐야것어. 그렇게 선생님 말씀 듣기 싫으면 일찌감치 공장에 가 돈이나 벌어라. 점심시간이다. 서둘러 밥을 먹고 교문에서 무단 외출을 단속하였다. 선생님들도 나가시던데요 선생님하고 학생하고 똑같냐. 선생만 사람이고 우리는 사람이 아닌가요. 느그는 일반인이 아니다. 배우는 학생여! 학생! 학생은 뭐 사람 아닌가요, 요놈 자식 학생놈이 선생님에게 꼬박꼬박 말대꾸 하는 것 좀 봐. 청소 시간은 동료들과 탁구를 치거나 나무 그늘이나 양지 바른곳에서 팔짱끼고 잡담하다가 이따금 한번씩 고함으로 감독하였다. 간혹 재수없이 걸린 학생은 엎드려 뻗쳐를 시켜 다른 학생들의 본보기로 삼았다. 물론 교실 청소 감독은 실․부실장에게 전권을 위임하고 정 말 안든는 학생은 명단을 제출케 하였다. 드디어 종례시간이다. 조회가 총론이라면 종례를 각론이고 각개격파 시간이다. 돈얘기가 가장 중요하다. 왜 우리반만 이렇게 가난하냐? 쓰고 남은 돈을 저금하지 말고 저금하고 남은 돈을 쓰라고했다. 그리고 교무실가서 각반 저축 실적표를 보라고 했다. 창피해서 어디 담임해먹겠냐고 했다. 이제 수업료다. 하나하나 부른다. 언제 낼래? 고름이 살되냐. 이왕 낼 것 빚이라도 얻어서 제 때 내라고 했다. 누에고치 감정 언제 하냐. 담배 감정 끝난지가 언젠데 왜 여태까지 안냈냐. 그저께 약속했었지. 오늘까지 낸다고. 근데 선생님하고 한 약속을 왜 안지켜. 모레가 장날인데 글피는 낼수 있지. 잉! 왜 말을 안해. 글피는 내는 거다. 잉! 알았지. 가져와! 예 모기소리다. 약속했다. 틀림없지. 예. 됐어. 들어가. 0번 나와! 성적으로 조질 차례다. 우리반이 또 꼴등이다. 공부해서 남주나. 머리가 멍청하면 손발이 고생한다. 너희 부모님이 입지 못하고 먹지 못하고 가르치는 이유는 그 지긋지긋한 고생을 물려 주지 않기 위해서다. 공부 안하고 이 촌구석서 평생 농사짓고 살을래! 아니면 중학교만 졸업하고 공장에 가 공돌이 될래! 요새는 돈 없어도 저만 잘하면 얼마든지 고등학교․대학교 갈수 있다. 다 저하기 나름이다. 마지막엔 ‘하지마라’다. 집에 갈 때 해찰말고, 야구하지 말고, 까먹지 말고, 만화가게 가지 말고, 집에 가서 놀지 말고, 일찍 자지 말고. 텔레비 보지 말고, 공부하고 숙제하고 내일 아침 늦지 말고! 술을 먹고 밤마다 사표를 썼다. 일신상의 사유로 사직코자 하오니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한번도 제출하지 못했다. 한참 후에야 알았다. 지극히 자유로워야 할 우리 학생들의 신발에서 머리까지를 누가 왜 통제하는 가를. 학생들의 겨드랑이에서 누가 왜 날개를 떼내는 가도 알았다. 교무회의, 학급조회, 조․종례 시간에 교사와 학생들로 하여금 누가 왜 말한마디 못하게 하는가도 알았다. 지역과 학생들에게 맞지 않는 내용을 왜 가르쳐야 하고 정답이 하나밖에 없는 이유도 알았다. 그래서 촌놈을 억누르고, 빼앗고, 따돌리는 구조가 어떻게 확대 재생산되는가도 알았다. 왜 교사로 하여금 세금 징수원이 되게 하며, 결국은 빈부격차를 심화시킬 저축은 누가 강요․경쟁시키는가도 알았다. 교사는 진도만 나가고 학생은 공부만 하고, 학부모는 돈만 내라고 강요․협박하는 무리의 정체를 알았다. 가장 죄스럽고 고통스러운 것은 내가 그들의 충실한 앞잡이로서 엄청난 죄를 지었다는 것이다. 결국 난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고 자유인이 되기로 하였다. 그러나 나 혼자 자유인이 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고 무의미한 것이다. 생각했다. 그래서 함께 싸우기도 했던 그 싸움의 과정과 방법으로 해직을 결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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