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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6 | 칼럼·시평 [시]
첫날이불이라는 간판
안도현․시인(2004-01-29 13:55:41)

가고 싶은 곳을 가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불행하다. 그 불행이 자신의 의지 부족으로 생긴게 아니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바깥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모든 시인은, 아니 모든 인간은 가고 싶은 곳을 가기 위해 노력하는 자들이다. 인간의 역사는 가고 싶은 곳을 가로막는 세력과의 싸움의 기록이다. 이때 시인은 인간의 싸운을 또박또박 새기는 필경사가 된다. 밤낮없이 손에 잉크가 지저분하게 묻는 가난한 업을 천직이라도 되는 것처럼 죽자살자 매달려 안달하는 시인이라는 물건들! 이렇게 ꡐ물건들ꡑ이라고 표현해도 비아냥거리는 말인 줄도 모르고 마냥 흐뭇해 할 것같은 얼굴들이 떠오른다.
이 숨가븐 시절에 그래도 숭어같기도 하고 산토끼 같기도 한 착한 눈빛을 간직하고 있는 시인들-이광웅, 김용택 두 분과 함께 경부선 열차를 탄 적이 있다. 대전에서 부산으로 내려가는 길이었는데 우리는 무슨 이야기 중에 중국 연변을 꺼내게 되었고, 이야기는 아주 빠르게 진행되어 연변땅에 같이 한번 가자는 데까지 도달하였다. 가능하면 방학을 택해서 백두산 기운이 사납지 않을 때 가자는 이야기, 홍콩으로 비행기 타고 가는 것보다는 인천에서 중국 가는 배로 서해를 건너자는 이야기, 모드들 한번씩 침을 꿀떡 삼키는 조선 처녀 이야기, 공산주의자로 몰려 징역살이까지 했던 사람이 끼여 있어서 함께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이야기, 어떻게든 가려면 지금부터 한푼 두푼이라도 여비를 모아놓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
그 이야기를 세 사람이 합의한 위도 방학이 두 번이나 지나갔는데 아직까지 우리는 10원도 모아놓지 못했다. 우리에게 연변은 단지 ꡐ그리운 땅ꡑ일 뿐인가, 시인 누구누구도 갔다 왔다고 하고 교수 아무개도 다녀왔다는데 우리는 돈이 없어 못가는가, 이런저런 생각을 머리 속으로만 굴리고 있을 때였다.
대구 터미널에서 전주행 고속버스가 출발하기 전이었다.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주룩주룩 눈물을 흘리면서 다른 몇 사람과 손을 맞잡고 있는 풍경이 보였다. 대낮에 저렇게 구슬피 우는 것으로 봐서는 초상을 치룬 사람들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차가 출발한 시간이 되었다. 그 중년의 부부는 주위의 시선에도 아랑곳 없이 여전히 눈물을 흘리면서 버스 안으로 올라왔다. 그들이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고 좌석을 찾아가는 모습이 나는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수수한 그들의 차림새로 봐서 심성이 참 깨끗한 사람들일 거라고 여겨지기도 했다. 마침 그들은 내 뒷자석에 앉게 되었는데, 사정을 들어본즉, 그 부부는 연변에서 온 ꡐ조선족ꡑ이었다. 모국 방문길에 대구에 있는 숙부를 생전 처음 만났고, 전주에는 다른 친척을 만나러 간다고 했다. 나는 그 후로, 그들이 눈물 흘리던 모습을 떠올리면서, 옛날 조선사람의 습속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연변에 대한 상사병이 내 마음 속에서 도지는 것을 어렴풋이 감지할 수 있었다.
그 병은 박범신 선배의 중국여행담을 듣고 난 뒤에 더욱 깊어졌다. 연변의 한 혼수품 가게의 간판이 ꡐ첫날 이불ꡑ이라니! 이 네 글자를 들은 순간 나는 온몸이 다 전기에 감전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조선 말의 아름다움과 함께 조선사람의 삶의 아름다움까지 내 가슴에 끊임없이 밀물져 오는 것이 있었던 것이다. 언어에 함부로 취한다는 것, 이것은 모름지기 시인으로서 경계해야 마땅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ꡐ첫날 이불ꡑ을 제목 삼아 나는 즐겁게 한 편 시를 썼다.

소설가 박범신 선배 말에 따르면
중국 연변 땅에 가면
ꡐ첫날 이불ꡑ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혼수품가게가 있다고 합니다.
그 집의 분홍이불 한채 같이 덮고 자면
주구나 착한 짐승이 될 것 같습니다.
그 찬란한 날이 올 때까지는
사랑하고 미워하는 일이 눈비오듯 해야겠지요.

우리가 아득바득 살아가는 조선 사람의 정통성을 면면이 이어 내려오고 있다는 남한 땅 어디에서도 나는 ꡐ첫날 이불ꡑ만큼 이쁜 간판을 보지 못했다. 위크앤드와 프로스펙스와 아식스와 타운트다운이 미국의 한 거리처럼 휘황찬란할 뿐이다. 그리움도 순수도 참사랑도 되찾기는 영글러 먹은 듯이 보이는 따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그러나, 연변에 대한 그리움이 한낱 그리움으로 그쳐서는 안되는 까닭이 또한 여기에 있다. 연변으로 가고 싶은 마음과 연변으로 가는 길이 조국이 처해 있는 현실과 관계맺지 않을 때 그 길은 한가한 관광객의 길이 될 뿐이다. 나는 시인 박배엽 형이 ꡒ철조망 지뢰밭이 앞을 막아도/내 나라 내 땅 질러가는 길이라면/통일을 기약하며 가는 길이라면/온몸이 찢겨지고 발목이 잘려서도/백번ㄴ이고 천번이고 기꺼이 가겠지만/남과 북이 하나되어 가는 길이 아니라면/투쟁과 승리로서 얻은 길이 아니라면/나는 백두산 안 갑니다.ꡓ라고 당당히, 배짱있게 선언한 데 대해 적극 동조자가 되고 싶다.
보라. 내 딸과 아들에게 ꡐ첫날 이불ꡑ가게에서 혼수품을 장만해 줄 그날이 저기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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