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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6 | [문화저널]
목타는 나날에 부른 희망의 노래
이희찬․시인 (2004-01-29 13:56:39)
내 나이 서른 아홉. 내년이면 마흔 살이다. 사람드은 마흔 살을 불혹이라고 부른다. 중량있는 의미를 부여하려는 것일게다. 링컨도 말했다. 마흔 살이면 자기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내 생각은 이렇다. 성년이 두 번 포개지는 나이라고, 성서를 읽은 기독교인들의 사고방식으로 표현하자면 다시 거듭난 어른이라고 할게다. 또 달리 곤충학자처럼 표현하자면 허물을 벗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야 할 완전탈바꿈의 어른이라고 할게다. 열 여섯 살이 되기 전까지의 나는 비교적 무심한 소년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오늘 날의 내가 있기까지의 싹수를 그때의 모습에선 전혀 발견할 수가 없다. 또래의 아이들 보다 더 조숙했었고 조금 더 고생을 했다는 것뿐 별로 이렇다 할 만한게 없었다. 나 자신을 들여다 보는 면에서, 세상의 사물을 보고 듣고 추리하는 면에서 나는 아직 훈련이 부족한 어린애에 불과했었다. 무엇보다도 정서가 메말라있었기에 무엇을 느낀다는 것이 나에겐 극히 드물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오히려 그것이 행복일 수도 있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지만. 열 여섯 살. 중학교 3학년, 1969년의 여름은 찬란했다. 희고 눈부신 햇살은 하늘에서 축복처럼 쏟아졌다. 첫사랑은 내 심장을 투명하게 만들었다. 한 여학생을 대상으로 아주 어려서부터 맺혀지기 시작한 봉오리가 조금씩 입술을 열어 깨끗한 속 색깔을 드러낸 것이다. 햇살이 맑은 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솟아있는 백목련 흰꽃봉오리들을 보면 저게 바로 내 소년 시절의 첫사랑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구나하는 느낌을 지금도 받는다. 나는 요즘 그때 그 어린 나이에 느꼈고 생각했으며 꿈꾸었던 여러 가지를 다시 맛보려 애를 쓰지만 그게 잘 안된다. 나는 지금 심장이 투명하지 못하고 칙칙하다는 것을 안다. 심장이 칙칙하므로 내 눈빛도 어둡다. 무엇을 보고 듣고 생각할 때마다 착하고, 순결하고, 거룩하고, 아름다운 것만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었던 그때가 너무나 그립다. 선악과를 따먹기 전의 아담과 하와의 모습을 나는 종종 그때의 내 모습을 지금의 내 모습과 비교하여 유추하곤 한다. 낙원에서 불렀던 내 노래는 몇편 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은 그 노래들이 잘 기억되지 않는다. 어쩌다 다시 샘솟는 감각도 지금의 때묻은 인격 때문에 막대기로 휘저어버린 흙탕물처럼 흐려지고 만다. 그리고 바이러스에 오염된 컴퓨터처럼, 내 소중한 감각은 지금의 인격에 오염된 채로 내 영혼속에 저장된다. 이게 나는 슬프다. 그래서 나는 그때의 추억과 감각을 때묻히지 않으려고 마음을 단단히 먹지만 나는 아편 중독자처럼 그때의 추억과 감각을 자꾸만 갈구한다. 첫사랑을 첫사랑 그대로 두었더라면 아마 지금의 내 운명은 이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평범하면서도 내면이 평화로운 그저 보통 시민이 되었을 것이다. 나의 낙원 추방은 열 일곱에서 열 여덟이 되어가던 겨울방학 때에 있었다. 그때의 고통스런 내면 파괴를 나는 지금도 달리 표현할 방도를 알지 못한다. 첫사랑이 건설한 낙원의 황홀에 도취하여 나는 나를 인간 완전성의 높은 곳까지 자꾸자꾸 강요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큼은 나는 성공 했었다. 그러나 하루 스물 네 시간. 일년 삼백 육십 오일 내내 항상 순결하고 숭고할 수는 없었다. 이따금 스쳐 지나가는 때묻은 생각들이 없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나 역시 죄 많은 인간 가족의 한 바람이었기에. 그러나 그때의 나는 티 한점 없는 보석과 같은 마음 상태를 원했기에 나를 스쳐 가는 나쁜 생각의 아주 작은 움직임조차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신경질적이라고 밖에 달리 판단할 수 없는 고통의 시작은 나를 기진 맥진, 녹초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세월은 엄청나게 흘렀다. 천사라도 견딜 수 없었을 그 오랜 고문에서 해방 되었을 때 나는 악마가 되어 있었다. 잉게보르그 바하만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고 썼다. 그 구절을 곰곰이 씹을 필요도 없이 매 순간 순간마다 눈썹 끝이 파르르 떨릴 때가 있다. 자신이 선하지 않고 악하다는 발견만큼 종교적인 자세가 있을까? 그러나 나는 왜 남들처럼 더 착해지지 못하고 오리혀 악마가 되어갔을까? 아무리 노력해도 숭고한 신성에 도달할 수가 없었기에 추락하여 깊은 어둠 속으로 추락한 것이 아닐까? 나의 문학은 이 추락에서 다시 비상하고자 하는데서 출발한다. 그러나 예전처럼 오로지 숭고함만을 추구하고자 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육체의 아픔을 함께 노래하며 고통의 신음소리를 토하고자하는 동기가 훨씬 더 짙어진 것을 발견한다. 아픔으로 하여 신음을 토할 때 느끼는 기쁨과 슬픔의 뒤범벅은 나를 또 다른 아편 중독자로 만든다. 이 중독은 진실함이 없이는 얻을 수 없는 것이기에 또다른 기쁨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어찌 기쁨뿐이랴. 경기전의 나무 그늘 아래 풀밭에 앉아서 타고르의 시를 읽던 시절이 그립다. 헤르만 헤세의 시집을 들고 다니던 시절이 그립다. 푸시킨의 시를 읽고 바이런의 시에 공감하던 시절이 그립다. 하이네에 심취하고 릴케처럼 되고 싶던 시절이 그립다. 영어 시간에도 시를 읽고 수학 시간에도 시를 써내려가던 시절이 그립다. 월말 고사 시간에도 학기말 고사 시간에도 박목월과 한용운과 신석정을 흉내 내에 시를 써내려가던 시절이 그립다. 그토록 치기 만만하고 당돌하며 인습을 거부하던 그 엉뚱한 시절이 그립다. 꿈속에서도 시를 쓰고 시를 읽어 나가던 그 시절, 하루에도 열 편, 스무 편 씩 시를 생산해내던 시절이 그립다. 장래 희망으로 시인이 되기로 못을 박았던 그 시절. 그때 그 시절의 열망을 위하여 나는 어떻게 살아 왔으며 어떠한 보람을 쌓아 왔는가 가끔 자문해 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부끄러움과 자책이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나는 아직 시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참다운 시인의 면모는 지금의 나와 같은 면모는 결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신춘문예에 두 번 당선되었다 해도 그것이 지금의 나에겐 별로 중요한 의미가 되지는 못한 것 같다. 오직 자기 자신의 고통을 견디며 가슴속으로 희망을 분수처럼 뿜어내던 그 나이 어리던 소년 시절이 오히려 더 참다운 시인에 가깝다고 생각되어진다. 이제 계획표에 따라 살 나이가 되었다. 왜냐하면 나도 어느새 살아온 날보다 살아가야 할 날들이 적게 남은 축에 들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아까운 날들을 위하여 나는 지금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할까? 다른 사람들처럼 불혹의 의미를 곰곰이 헤아리거나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지려는 자세가 필요하기는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나에겐 무엇보다도 다시 비상하여 창공으로 날아올라 높은 세계를 찾아가는 것이리라. 그리하여 또 다시 낙원 안에서 노래하고자하는 희망을 지금 노래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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