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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6 | [신귀백의 영화엿보기]
웃긴다는 것과 재미있는 것의 차이 「아래층 여자와 위층 남자」
장세진․문학평론가 (2004-01-29 14:00:34)
계속되는 흥행 참패에도 불구하고 우리 영화들이 속속 개봉되고있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것이긴 하지만 「이혼하지 않는 여자」,「아래층 여자와 위층 남자」, 「땅끝에 선 연인」, 「모두가 죽이고싶었던 여자」, 「빠담풍」이 그런 우리 영화들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아래층 여자와 위층 남자」(신승수 감독)의 경우 개봉(5월 2일)9일만에 10만명 가까운 관객이 들었다는 '낭보'가 전해지고 있다. 또 어느 일간신문에서는 "한국영화의 고질척인 불황을 타개 할 조짐"이라며 흥분을 굳이 감추지 않기도 한다. 하긴 「아래층 여자와 위층 남자」는 관객들의 눈길을 끌만한 표피적 요소들이 더러 있다. 우선 영화진흥공사․스포츠서울주최 시나리오 공모 입상작(가작)이라는 점만으로도 그 참신성을 들 수 있다. 말할 나위없이 신인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국악계와 마찰을 빚었던 TV드라마 「춤추는 가얏고」로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오연수와 「일요일 일요일밤에」의 사회자 등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최수종의 나들이도 눈길에 값하는 요소라 생각된다. 우리 영화의 침체원인인 시나리오 빈곤이나 스타부재현상을 어느 정도 극복하고 있는 듯 보여 그런 것들조차 반갑게 느껴지지만 역시 관심은 완성도에 모아진다. 장기적으로 우리 영화의 불황을 타개할 만한 재미와 감동이 있느냐는 것이다. 「아래층 여자와 위층 남자」는 1101일동안 연애한 양철수(최수종)와 유영희(오연수)가 축복을 받으며 결혼하지만 3개월만에 이혼하고 마는 이야기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이혼한 그들이 연립주택 위 아래층에 살게 되면서 겪는 일상의 자질구레한 이야기로 이어지고 있다. 이를테면 관객의 상식을 뒤엎는 (멜러물의 경우 대개 이혼 따위는 끝이었으니까) 서사구조로 짜인 셈이다. 그들은 애정의 다른 가지(枝)라 할 증오행각을 서로 벌인다. 가령 "돼지발톱보다 더 더러운 자식"(유영희) 운운하며 증오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어머니의 방문을 받거나 친지 결혼식에 참석하는 등 도저히 이혼한 부부로 보기 어려운 일상의 행동들과 만나고 있다. 말하자면 코미디인데, 유영희의 임신으로 인해 그들은 싱겁게 (앞의 사건들의 심각성에 비해) 화해하고 만다. 영화 현실이 일상의 현실적 진실과 같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들의 이혼풍경은 세태 꼬집기에 값하는 바 있다. 요즘 젊은이들의 쉬운 사랑과 함부로 하는 이혼의 풍속도를 풍자․비판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재미와 감동이라는 우리의 관심사는 별개의 문제다. 우선 그것에 접근하는 카메라 앵글이 너무 서툴다. 촬영과 같은 기기적 문제가 아니라 희화된 인물과 박진감 없는 서사구조가 그렇다는 말이다. 어느 스포츠신문은 "작품에 나타난 신선한 웃음과 현실감 넘치는 소재가 관객에게 그대로 공감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라며 흥행호조를 진단하고 있지만 웃긴다고 재미있는 것은 아니다. 재미는 대상(代償)의 체험에서 온다. 가령 친구들의 기지로 그들이 위아래층에 살게 된 것을 처음 알았을 때의 소리지르기는 억지 춘향식 웃음이었을 뿐더러 장면의 공허함과 연기자들의 어색스러움을 동시에 드러낸, 봐주기 역겨운 대목이었다. 결코 신선한 웃음이 될 수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아무리 세태 풍자에 포커스를 맞췄다고 하더라도 4명의 주․조연 인물들이 모두 회화된 것도 그런 점에서 문제의 본질을 호도할 소지가 다분하다. 개성 있는 성격창조에 실패한 것이다. 현실감 넘치는 소재일지라도 코짜임새에 박진감이 거의 없는 것도 이 영화의 흠이다. 남부럽지 않은 신혼생활을 하는 양철수가 우연히 만난 제자(가정교사로 가르친 바 있는)와 놀아나는 것도 그렇지만 그로 인해 결혼 3개월만에 미련 없이 끝장을 내는 유영희의 저돌적 행동 역시 예외가 아니다. 혹 사회 일각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그것은 서로의 이해와 신뢰로 맺어지고 불완전하나마 그걸 둥지삼아 살아가고 있는 일상의 많은 현실인들에게 순간적 혀무주의를 심어줄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해독이라고 할 만하다. 라이타를 매개로 사랑확인과 동시 재결합하는 결말도 박진감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생겨날 아이 때문에 재결합할 부부라면 결혼3개월 그것도 외간 여자와 고작 스키장 다녀온 정도만으로 이혼이 성립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굳이 영화의 의도를 말하면 세태 꼬집기라는 풍자성은 나무랄 게 없지만 '그래, 어쩜 저렇게 내 경우와 똑같지'라는 실감이 좀처럼 와닿지 않기에 하는 말이다. 신문이 허위사실을 보도할 리가 없으니 관객 10만명 운운은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20명 남짓의 관객과 더불어 영화를 본 필자의 '실제상황'은, 이를테면 그 증거인 셈이다. 물론 심심하니까 영화나 보자며 극장을 찾는 사람들에게 「아래층 여자와 위층 남자」는 코믹물로 부담없이 어필할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관객취향을 겨냥한 카메라 워크는 영화 곳곳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예컨대 정력이 넘치는 신혼부부의 '이층집'과 프로복싱 장면의 오버랩이라든가 분을 삭이지 못하여 내뱉는 서로에 대한 욕설 등이다. 「아래층 여자와 위층 남자」가 관객동원에는 비교적 성공한 듯하지만 「장사의 꿈」, 「달빛사냥꾼」, 「수닭」등 사회적 메시지가 강한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신승수감독의 화려한 변신이 우리 영화의 장기적인 불황을 타개할 교두보 역할은 하지 못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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