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1992.7 | [저널초점]
우리에겐 이미 너무 많은 선정비가 었다 전라 감영탑의 건립
윤덕향․발행인 (2004-01-29 14:29:59)
최근 신문 한구석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볼 수 없을 만큼 작게 전주에 전라감영탑을 세우는 것을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는 기사가 실렸다. 가십에 가까운 식으로 별로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으나 이 기사는 몇 가지 점에서 우리네의 생활과 연결하여 생각할 꺼리를 제공하였다. 본디 사람들은 기념물 만들기를 좋아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역사적으로 예를 들자면 거석기념물의 하나인 선돌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이 선돌은 무슨 이유로 만들었는지는 모르나 하여튼 우리나라 청동기 시대 또는 그 이전 시기부터 세운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또 우리나라 각지에는 돌아가신 선사들의 사리를 모시는 부도탑이 이곳저곳 사찰마다에 자리하고 있다. 또 제법 구색을 갖춘 사찰마다 있는 탑도 결국은 부처의 사리를 모시고있는 기념물의 하나인 셈이다. 그뿐만 아니라 근래에 들어서는 이런저런 기념물이 거리마다, 마을마다에 넘쳐나는 실정이다. 기념물중의 하나가 탑이며 이 탑을 문자 그대로 국어사전에서 그 뜻을 찾아보면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이미 간단히 말한 바와 같이 불교 사원과 관계시켜서 "(대개 절에 세워지는) 부처의 유골, 유품, 머리카락을 안치하고 공양하기 위하여 세운 좁고 높은 건축물"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일을 선전, 기념하기 위하여 세워진 높고 좁은 부분"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이를 좀 유식한 척하여 영어로 구분하자면 전자는 Stupa나 Pagoda이고 후자는 Tower로 번역될 수 있을 법하다. 지금 논의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 모르나 계획되고 있는 전라감영탑이라는 것은 짐작 하건데 우리나라가 불교를 국교로 하고 있지 않으니 아마 타워로서의 탑이라고 짐작된다. 이같은 류의 것은 우리나라에도 적지 않게 있어 남산 타워란 것도 있고 또 수출의 날 같은 때에 대통령이 유공 기업체에 주는 몇 백만불, 몇 억불 수출탑 같은 것도 있다. 전라감영탑은 이들 중 어느 부류에 속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전라감영의 공이 많아서 주는 것은 아닐 것이므로 전라감영이 있었던 곳이 전주라는 점에서 이를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짐작되는데 이것이 우선 마뜩하지가 않다. 짐작컨데 전주가 조선시대에 전라도의 중심이었으며 그런만큼 이를 알리기 위하여 탑을 세우겠다는 정도의 발상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전주가 전라도의 중심이었다는 것은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것은 전라도라는 이름 자체가 전주와 나주를 아우른 데에서 명명된 것이라는 점에서도 분명한 것이다. 그런 판에 새삼 전라감영탑을 세우겠다는 의도는 도대체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구태여 의미를 부여하자면 전라감영이 있었던 곳을 찾아 그곳이 감영이 있었던 곳이었다는 기념탑이나 표지를 세우는 정도는 그런대로 의미가 있을 법도 하다.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곳에 기념물을 세우고 이를 알리는 것은 우리 지역에 대한 인식이라는 점에서 의미도 있고 지역민들에게 자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될 법도 하다. 그러나 그런 경우라고 하더라도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작금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을 보건데 감영탑을 작은 규모로 세울리도 없고 적어도 다른 지역에 부끄럽지 않게 세울려면 수억원의 예산이 투입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더구나 전라감영이 있던 자리가 전주시내의 중심지로 변한 지금 탑을 세우기 위한 땅을 마련하는 데에도 적잖은 어려움이 있을 것은 뻔한 일이다. 어쩌면 적당한 도유지나 땅값이 싼 곳을 잡아서 탑을 세운다는 발상을 할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적인 의미가 전혀 없는 일이니 도무지 세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탑을 건립하는 측에서 내세우는 명분의 하나로 도민의 정신적인 구심점으로 삼고 어쩌고 하는 것이 있을 것에 틀림없다. 도대체가 도민의 정신적 구심점이 된다는 것을 누가 결정하였는가? 집단 공동체의 발의에 의하여 세워지는 기념물은 그 성원들의 동의에 기초하기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전라감영탑을 건립하는 것을 두고 그 흔하게 이루어지는 공청회가 있었다는 얘기 한번 들어본 적이 없다. 또 그같은 계획이 널리 알려져 있지도 않은 것 같다. 신문에 숨겨지듯 작게 취급된 것으로 보면 지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려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적당한 때가 되면 그런 일이 논의될지 모르는 판에 너무 성급하게 이러쿵 저러쿵 얘기를 하는지도 모르겠으나 문화적인 상징물을 세우려한다면 마땅히 그 계획의 목적과 추진 방법이 공개되어야 한다. 이것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도로를 개설하고 공장을 유치하는 것과는 달리 문화란 것은 그 문화의 수혜자들의 의식에 의하여 생명이 결정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역사적 기념물로 여러 가지를 예로 들 수 있지만 도내 곳곳에 방치되듯 자리하고 있는 각종선정비, 애휼비, 청백공덕비 따위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개중에는 물론 참으로 훌륭한 업적과 어진 정치를 편 목민관들을 기린 것도 있으나 그렇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그 결과 비음에 적혀있는 온갖 미사여구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교훈을 우리에게 주지 못하는 실정이다. 만의 하나 그럴리가 없지만 목민관들이 전시적이고 즉각적인 투자효과를 기대하며 전라감영탑의 건립을 구상하고 의미가 있다고 판단하였다면 그에 대한 논의를 공개적으로 전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이는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공장를 짓고 도로를 내는 것과 같은 경제발전과는 달리 지역 성원들의 의식과 관련되는 것이고 그들의 공감에 기초하여 비로소 의미가 있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즉 문화적 활동의 경우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이지만 보다더 공개적이고 여론 수렴적인 자세가 요구된다 지방의회가 구성된 지금 문화사업에 대한 구상과 그에 따른 지역 공동체 성원들의 의견수렴은 의회를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다. 공개적 논의를 통하여 전라감영탑을 세우는 것에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수억원이 아니라 수십, 수백억원의 예산이 들더라도 추진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혹시라도 목민관의 가시적, 전시적인 발상에서 치적의 하나로 기획된 것이라면 한 푼의 세금도 투입되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이리저리 꼴사납게 자리를 차지하는 또 하나의 선정비를 만들기에는 우리에게 이미 너무 많은 선정비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도내에서는 갑오농민전쟁 100주년이 되는1994년을 즈음하여 이를 기리기 위한 민간주도의 움직임이 있다. 또 전주에는 갑오농민전쟁과정에서 전라도 53군에 설치된 집강소의 총본부로서 대도소(大都所)가 설치된 바가 있다. 그러므로 이 같은 민간주도의 운동에 아낌없는 도움을 주는 것이 보다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같은 노력이 바로 관과 민이 일체가 되는 터전이며 굳이 탑을 세우지 않더라도 지역사회 성원이 일체감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겠는가? 문화란 경제개발처럼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선택하여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문화는 끝없는 투자와 관심, 그리고 공동체 성원의 가슴 깊숙한 의식에 기초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실은 답답할만큼 느린 것이다. 문화를 사과나무처럼 인식하고 사과가 열리지 않는 것을 탓하거나 빠른 나무로 바꾸겠다는 식의 성급함은 문화를 망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감영탑의 건립이 공장에서 제품을 얻듯 가시적 투자로 인간 심성이 기초하는 문화에서 즉각적인 결실을 바라는 발상이 아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같은 구상이 있다면 즉각 공개하고 지역주민들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선심 쓰듯 주어지는 감영탑이라면 오래잖아 다가공원아래 천변 선정비들속에 추레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겠는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