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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7 | [교사일기]
꿈이 더 필요한 세상
이경애․군산여자중학교 교사 (2004-01-29 14:30:30)
햇빛이 내리쬐는 운동장, 아이들은 우리 학급 선수들을 위해 소리를 높여 응원을 하고 있다. 평소 교실에서 말이 없고 얌전하던 아이가 나와 응원에 앞장을 서고 있다. 경기가 끝나자 비록 졌지만 열심히 했다며 선수를 위로하는 아이, 물을 떠오는 아이, "힘들었지" 하며 어깨를 주물러주는 아이, 모자로 부채질을 해주는 아이. 모두가 한마음이다. 교실 밖에서 보는 아이들의 모습과 마음은 하나같이 귀엽고 자신감에 차있으며 생동감이 넘친다. 그동안 담임을 맡지 않았기 때문에 신학기 학급 담임을 맡으며 마음이 설레였던 기억이 난다. 담임을 맡지 않아서 생기는 시간적 여유로 교육운동에 대한 시각 정리와 동료 교사들과의 토론, 학습방법에 대한 연구 등 교육 현장에서의 문제점을 다시 한번 검토해 볼 수 있었다. 또한 다른 선생님들의 학급운영을 보면서 '아, 나는 저럴 땐 이렇게 했었지. 그래, 저렇게 해야겠구나', 혹은, '저게 아니야, 그래선 안되겠구나' 하며 내가 그 상황에서 느끼지 못했던 점을 객관적 입장에서 판단하여 그동안의 나의 학급운영과 교과지도에 대한 반성의 계기가 되었던 시간이었다. 신입생 입학식 날, 국민학생 티를 벗지 못한 채, 호기심과 약간의 두려움을 가지고 학교 운동장에서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천진난만했다. 이 아이들에게 공부만을 강요하는 그런 선생님이 아니라 학교생활을 즐겁게 만들어 주고 꿈과 이상을 가지도록 도와주는 선생님이 되리라는 각오를 했다. 새 생활과 선생님에 대한 기대로 반짝이는 수많은 눈동자들의 집중에 잠시 당황했던 시간이 지나가고 학생들에게 새로운 생활 준비와 학교 안내, 선생님의 바램등을 얘기하고 학부모님들에게도 아이 들이 스스로 생활하는 자세를 가지는데 도움을 주도록 부탁을 드렸다. 영어 선생님이 담임이 되어서 좋다는 한 학부형의 말에 묘한 여운를 느끼며 아이들과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첫 수업시간, 새로 배우는 과목, 다른 나라말을 배운다는 신기함과 더불어 열심히 해야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아이들은 앉아 있었다. 영어과목의 중요성에 대해 누차 들어왔고 한글 자모보다는 영어 알파벳을 더 잘 알고 있는 아이들에게 다른 나라말보다는 우리나라 말이 더 중요하고 정확히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자 아이들은 의아함을 나타냈으나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교사의 말을 이해해 주었다. 아이들은 스스로 잘 해나갔다. 신입생으로서의 미숙함 때문에 우왕좌왕한 면도 있었으나 친구들 사귀기에 여념이 없었고,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고 학급 문제도 각각의 재능과 개성에 따라 서로 분담하여 해결하고 '머리는 깊은 생각을, 마음은 따뜻한 사랑을, 몸은 바르게 실천하는 학급'이 되자고 의젓하게 써 놓기도 하였다. 학급문고의 책을 가져다 독서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과 혹은 옆짝궁과 영어로 인사를 하며 웃고, 더듬거리며 영어로 자기와 가족 소개를 했으며 영어노래를 흥겹게 배워 불렀다. 그러나 즐겁고 활기 있는 적극적인 학교생활을 바라는 교사의 기대와는 달리 아이들은 과중한 학습부담을 떠안고 있었다. 매일 1시간씩 지도를 받을 컴퓨터반 희망자를 조사하자 과 외 받으러 갈 시간 때문에 하지 않겠다던 아이, 환경정리를 위해 방과후 남아달라는 부탁에 학원을 가야 한다며 미안해하는 아이, 흥미와 더불어 쉽고 재미있어야 할 1학년의 영어시간, 과외에서 배윤 어려운 문법 내용을 질문해 왔을 때 일종의 분노를 느껴야 했다. 많은 학습량과, 창의성과 개성보다는 성적으로 자녀를 평가하며 자녀의 학습능력을 과대 평가하는 학부모의 기대로 인하여 아이들의 생동감은 점점 약해졌고 학교에서의 수업 시간은 잦은 비교, 시험과 보다 높은 점수를 올리려는 교사의 욕심에 의해 아이들의 능력을 위한 다기보다는 시험을 위한 수업으로 변해 나갔다. 영어 단어 문장 하나를 더 외우고 맞추기 위해 애를 쓰는 아이들을 위한 좀더 나은 교육 방법은 무엇일까? 고교 평준화 해체이후 중학교 1학년까지 입시에 몰두하게 되었다. 학교 수업 후 학원 수강, 개인과외 등으로 저녁 9시, 10시에 귀가하는 우리반 아이들, 자기의 개성과 적성과 이상에 맞는 진로를 찾아야 할 이들에게 책을 읽고, 토론하고 꿈과 정서를 키워나갈 시간은 어디로 갔는가? 이들에게 학력신장을 위한다는 보충수업의 부활로 아이들의 학습부담은 더 거워지고 교사와 학생간의 대화시간마저 빼앗기게 되었다. 어느 날 아이들에게 물었다.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 "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공부 잘하는 거요." "얘들아 학교란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란다. 선생님은 너희들에게 공부만을 요구하는 게 아니야. 선생님은 너희들이 인간답게 올바르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 순간 아이들의 얼굴이 환하게 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힘들고 괴로운 입시지옥의 어려움을 꿋꿋이 이겨내고 뚜렷한 주관을 가진 어엿한 성인이 되어 있는 제자들을 만났을 때, 그들이 생활을 충실히 이루어 나가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느꼈던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이 아이들을 대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자라는 동안 더 나은 교육환경이 이루어지도록 선생님으로서 노력할 것이다. 다음 시간에는 아이들에게 이 노래를 가르쳐 주고 싶다. 이 땅의 누런 금덩이들은 모두 종이 비행기를 만들어 아이들이 가지고 놀게 다 나누어주고 아이들에게 물려줄 교과서들은 모두 종이 비행기를 만들어 하늘 가까운 학교 옥상에서 다 날리게 하자 영어 단어 몇 개보다는 꿈이 더 필요한 세상이게 하고 일류 대학 졸업장보다는 꿈을 더 소중히 여기게 하자 “얘들아, 영어 단어 하나보다도 더 소중한 것이 꿈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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