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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7 | 연재 [문화저널]
지금 생각나는 사람
송 미 경․부안여고 1학년(2004-01-29 14:31:34)

TV에서 혹은 길거리에서 우리는 쉽게 장애자들을 접할 수 있다. 그들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온몸에 찡한 전율과 함께 눈시울이 적셔옴을 느낄 수 있었다. 언젠가 교실창가에 앉아 푸른 5월의 햇살을 온몸에 받으며 따스하게 다가오는 5월을 마음껏 만끽하였다. 그러나 점심시간의 끝 종과 함께 나의 유희도 끝이 나고 드디어 5교시가 되었다. 난 졸 것을 걱정하여 국어책을 펴들기 시작했다. 아주 착잡한 심경으로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선생님의 옆구리에는 신문 한 장이 끼워져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우리의 졸린 듯한 눈을 바라보시더니 곧 신문을 펴시고 우리에게살짝 조용히 하라는 주의를 주신다음 무언가를 읽어가기 시작하셧다. 그것은 한 어린이의 시였과 우리는 그 시를 들으며 처음과는 달리 엄숙함과 함께 슬픔속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 시의 제목은 해바라기 였고 그 시엔 어린이 답지 않게 뼈져린 슬픔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었다. 선생님RP서는 마지막 줄을 읽으시고는 이 시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우리에게 전혀 생소한 80년5월의 광주항쟁과 그 항쟁으로 인해 이 진한 슬픔을 맛보아야 하는 이 어린이를 나 이해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그 아이의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난 그 애를 “해바라기”라 부르고 싶다. 광주에서 대대적인 시위와 민주항쟁으로 대처하여 나라에서는 게엄령을 선포하자 이 아기의 가족은 아빠의 트럭을 타고 엄마와 함께 마치 전쟁 속의 피난민처럼 도시의 외각쪽으로 빠져나가는 도중에 군인들의 무차별 사격 속에 아빠와 엄마는 그 자리에서 돌아가시고 다섯 살 난 그 애는 다리를 잃었다고 한다. 너무나도 얼토당토 안은 이 나라의 큰 과오로 한 가족의 해복이 망가짐은 물론 어린이에게 큰 상처와 진한 명을 남겨주었던 것이다. 이 사람들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그 후유증에 시달려 허덕이며 이 땅의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계속해서 그 기억에 치를 떨며 해바라기처럼 하늘을 바라보며 설 수 없는 그 아이의 고통을 표현한 애절한 싯귀가 지금도 귓속에서 울려 퍼지는 것만 같다. 아무것도 모른 채 이제까지 살아온 우리에게 그 아이의 잘린 다리는 많은 것을 깨우쳐주며 잘라진 다리는 많은 것을 깨우쳐주며 잘라진 다리가 다시 살아나 움직이며 이 땅위에 영원히 서서 이 나라를 짐질수 있도록 끝없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는 비록불구의 몸으로 따가운 눈총을 받는 해바라기의 발이지만 그때가 되면 마냥 우리는 그 잘린 발을 자랑스럽게 우러러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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