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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7 | [특집]
욕얻어 먹기를 게을리 하지 맙시다
김선경․전북청년문학회 사무국장 (2004-01-29 14:32:22)
어떠한 일이든 대상을 너무 가까이서 보면 그 전체를 냉정히 파악할 수 없는 오류를 범하기 십상이다. 「문화저널」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도 적잖이 이런 오류가 숨어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내가 「문화저널」에 대해 보다 풍부한 애정을 키워오지 못한 결정적 장애요소라는 것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나는 「문화저널」을 '비판적 독자'의 입장에서 대하기 이전에 그 내면의 잡다한 것들……, 이를테면 원고 청탁과 독촉의 어려움, 편집회의 하는 모습, 대지 작업 할 때의 조심스러움과 꼼꼼함, 일일이 손으로 자르고 붙여서 엄청난 분량의 발송 부수를 기어이 감당해내고 마는 놀라운 인내력(?)……을 너무 많이 엿보고 말았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책이 완성되어 그 모습을 드러내기가 무섭게 달려들어 글자 획 하나에서부터 선의 위치, 색상의 농도에 이르기까지 그것의 크고 작음, 짙고 옅음을 따지다가는 급기야 자학에 가까운 비판을 쏟아놓고 마는 편집진들의 열정에는 아예 할말을 잃을 지경이었다. 그것은 예전에 어느 시인이 쓴 「문화저널을 옹호함」이라는 시가 얼마나 철저히 '현실적 리얼리즘'에 입각해서 쓰여진 것인가를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문화저널」을 '애정을 가지고 비판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할 수가 없었는데, 그것은 단순히 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저널」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걸 깨닫고 나는 참 놀랬다. 즉 나에게 있어「문화저널」은 항상 '그 정도' 또는 '저만큼'에 있는 대상에 지나지 않았는데 쑥스러움을 무릅쓰고라도 그 이유를 밝히자면, 「문화저널」이 나의 '지식'에는 도움이 될런지 몰라도 나의 '실천'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에 지나지 않아 설득력이 부족한 관계로 부득이 내 주위사람을 끌어 들여야겠다. 나는 현재 문화, 예술의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문학'을 무기로 문예운동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며, 그러한 관계로 문예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과 자주 접하게 된다. 그들 중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나 자칭 '전북 문화, 예술 정보지'라고 하는 「문화저널」이 자신들의 지향과 요구를 충분히 담아내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문화저널」은 우리와는 다른 차원의 문화, 즉 다분히 양식화되고 고급한 문화에 편중되어 있음을 은연중에 토로하게 되는 것이고 더 이상의 애정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물론 나는 어느 한편의 사람들로부터는 「문화저널」이 '너무 진보적'이라는 핀잔(?)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있고, 때문에 다양한 문화를 찾아내고 기획하고 연결해주려는 「문화저널」의 노력을 결코 과소 평가할 생각은 없다. 다만 「문화저널」이 '보다 많은' 계급계층으로부터 애정을 받고 '보다 결정적인' 위치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문예운동의 한복판에 있는 사람들의 애정 어린 비판이 매우 절실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어느 일방의 노력만으로 이루어 질 일은 아니되 우선은 「문화저널」 내부의 주체적인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노력이란 책의 모양이나 편집 형태 등의 형식적 측면에서 진행될 일은 아니고 무엇보다 내용의 '기획'에서 찾아져야 할 것인데 '정보지' 또는 '저널' 이라는 형식상의 제약 또한 이 기획의도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쉽게 지적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예를 들어 '한 문예운동가의 단상'이나 '문학산책' 같은 부분은 내용 면에서 볼때는 충분히 의미 있고 좋은 글일지라도 왜, 굳이, 지속적으로, 그러한 형식을 취해야 하는지, 그 기획의도를 납득하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 또 굳이 쟝르별 비교 분석을 하지 않더라도 '시'에 대한 지면 배려가 과도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매달 고정적인 '신작시'가 있고 '시 이야기'가 있으며 연작시형태를 취한 '문학산책'이 있는 것이 그것이다.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에게 알려 지고 지속적인 향기를 가지게 되고 일관된 흐름 속에서도 신선한 변화를 이뤄낼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구체적인 방향성이 마련되어야 하고, 그 방향성을 읽는 사람이 기쁘게 감지 할수 있어야 한다. '문화에 대한 따뜻한 인식과 사랑을 바탕으로 하는' 「문화저널」은 문화 일반에 대한 태도는 있으되 그 일반을 어느 한 시점으로 집중시켜내고 생생한 힘으로 조직해내기에는 아직도 미약한 구석이 많이 있다. 그것은 기계적이고 도식적인 배합, 배치의 문제가 아니라 '추접스러움'이나 '매끄럽지 못함'이 있을지라도 그것의 본질이 '건강한 힘'이라면 과감하게 껴안고 사랑할 줄 아는 용기의 문제, 나아가서는 사상의 문제이다. 결국은 그러한 '내용'이 이러저러한 '형식'에 영향을 미칠 것이며 "좀 지루하게 느껴진다'는 편집 형식도 편집 자체의 문제로만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만인 「문화 저널」이 아니라면 앞으로 '욕 얻어먹기'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좀 더 아래로 내려갈 필요가 있다. 위로 올라갈수록 '고상한 입'을 가진 사람이 많아 욕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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