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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7 | [문화저널]
군산지역 환경운동의 평가와 전망 -TDI 공장 철거운동을 중심으로-
황경수․군․옥 환경운동시민연합 정책연구실장 (2004-01-29 14:35:17)
1. 군산지역 환경운동의 약사(略史) 서해안 개발과 함께 밀려온 군산지역의 환경파괴는 개발이라는 최면에 사로잡힌 군산 시민들의 환상을 깨기 시작했다. 공해기업일지라도 열렬히 환호했던 순진한 군산시민들은 이제 그 순간이 악몽으로 다가오고 있다. '개발'과 '빵'에 굶주렸던 시민들은 '죽음의 사자'가 '구원의 천사'로 보였던 것이다. 밀려오는 공해기업들이 한 두개가 아니고 집단적으로 그것도 공해기업들만 유치되면서 시민들은 자신들이 속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시민들은 '개발'보다는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언제부터인가'라는 인식의 전환점을 만들기 위한 지역 환경운동세력들의 노력은 엄청난 것이었다. 군산지역의 환경운동의 과정을 평가하고 정리해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한 지역에서 국지적으로 발생한 환경운동이 전국적인 모범으로 제기되고 환경운동의 중요한 원칙과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는 시금석이 되기에 충분하였으며, 더블어 이에 대응하는 자본가와 권력의 모습에서 우리는 환경문제를 바라보는 이들의 모든 것을 알 수 있기에 넉넉했다. 군산지역의 환경운동은 80년 중반(85년부터 87년까지)에 특이한 형태로 진행된다. 이번 14대 총선에서 출마했던 재야정치인 엄대우씨가 개인적으로 주도하는 환경보전운동은 그 시기에 시민들의 반향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상수도문제를 시작으로 한 환경문제에 대한 집요한 문제제기는 당시의 시민들에게 환경운동이라는 인식보다는 정치인이 제기하는 사회문제 정도로 인식하였다. 엄대우씨의 줄기찬 환경보전운동은 지역사회에 신선한 충격과 더불어 '공해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정치인이 주도하는 환경운동은 그 한계를 명확히 노출할 수밖에 없었으며 시민운동으로의 전환은 어려웠다. 더불어 환경문제에 뜻 있는 사람들의 참여를 가로막기도 하였다. 여하튼 초기의 환경 운동을 독보적으로 전개한 엄대우씨는 생활환경문제에서 공단환경문제로 초점을 바꾸어 나갔다. 이같은 전환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것은 첫째, 지역의 구조적인 문제로 다가섰다는 점과 둘째, 본격적인 사회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는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87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지역의 환경운동은 공단지역의 환경문제를 집중적으로 들고 나오게 된다. 엄대우씨와 더불어 별도로 지역의 사회단체인 JC(청년회의소), 여성단체, 보건단체 등에서 광역쓰레기장 문제와 공해업소 유치반대운동을 전개한다. 이같이 군산지역의 사회단체들이 공단지역의 환경문제를 들고 나오면서 시민들은 '개발과 환경'이라는 또 다른 '공해논쟁'을 벌이게 된다. 그러나 이때까지는 대다수 시민들의 호응과 참여보다는 선각적인 인사와 사회단체의 움직임에 국한된 것이 이 시기의 중요한 특징이다. 군산 지역의 환경운동에 불을 당기는 일대 사건이 발생하게 되면서 이 지역의 환경운동은 폭발적으로 전개된다. 그것은 바로 동양화학 TDI군산 공장 입주이다. 동양화학측의 교묘한 서류조작과 비밀행정에 의해 모르고 있던 군산 시민들은 이 공장이 엄청난 독가스 공장이라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TDI공장 입주반대운동을 불길과 같이 전개한다. 이 기간에 환경보전운동을 전개했던 사회단체가 입주반대운동을 벌이고 엄대우씨와 기독교계 지도자들이 결합한 『군․옥 공해추방운동협의회』가 입주반대 운동을 주도해나간다. 이제 군산지역의 환경운동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된 것이다. 그러나 국내 화학재벌회사와 이를 비호하는 권력의 막강한 위력 앞에 이들은 좌초하고 만다. 결국 공장은 입주하게 되고 공장건설을 마친 후 관련부처의 승인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때가 90년이었다. 이 해는 우리지역의 환경운동에서 잊지 못할 해가 될 것이다. 천주교가 주도한 TDI공장 철거 10만 서명운동은 끝내 10만 서명을 받아내고 천주교의 대중적인 투쟁은 TDI공장 철거운동을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시켰다. 뒤늦게 재야단체와 다른 보수적인 사회단체까지 참여하는 범시민운동으로 발전하면서 군산지역의 환경운동은 전국적 관심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이들 제 사회단체들은「TDI공장 철거를 위한 시민단체 연대회의」를 구성하고 이후 대규모 집회와 농성 등을 주도하며 시민투쟁을 끈질기게 전개하였다. 이같은 범시민적인 사회운동은 지난 87년 6월항쟁을 제외하고 처음 있는 단결된 시민운동이었다. 당황한 행정기관과 동양화학은 공장가동을 잠시 멈추는 등 시민 설득에 나서게 되나 결국 공장가동은 승인되고 시민운동은 또 다시 일시적인 '패배'를 안게 된다. 지쳐버린 시민들은 'TDI'라는 말에 싫증을 낼 정도로 무관심해져 갔다. 그러나 이같은 패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진실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명언이 실증되듯이 91년 9월 7일 TDA독극물 분출사고가 가동 3개월만에 발생 한 것이다. 3년간 TDI 공장문제에 대하여 침묵을 지켜오던 인근 피해지역 주민들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폭발적으로 일어섰다. 12일간의 주민투쟁은 다수의 중상자가 속출하였으며 동양화학 건물을 완전히 파손시키는 등 주민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사실상 TDI 철거투쟁은 아직 철거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시민의 승리로 일단락 되어진다. 군산시민 어느 누구도 TDI공장을 옹호하지 않는다. 3년 간의 TDI공장철거투쟁은 이제 시민의 진실로 다가선 것이다. 이후의 주민합의에 의해 진행된 상황은 추후에 설명하기로 하고 간략한 군산지역 환경운동의 약사를 이 정도로 정리하고자 한다. 2. 군산지역 환경운동의 성과와 오류 군산지역의 환경운동은 대단히 중요한 지역운동의 모범적 사례이다. 어느 지역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힘든 운동의 전개과정이었다. 시민의 단결된 투쟁이 얼마나 커다란 힘인가를 알았고 끈질긴 투쟁은 승리한다는 간단한 교훈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더욱이 환경운동이 본질적으로 정치적 문제로 집약된다는 사실을 밝혀주었다. 재벌과 권력의 막강한 위력 앞에서도 굽히지 않고 싸워나간 군산시민들의 위대한 시민투쟁은 비록 지치고 힘들었지만 너무나 값진 경험이었다. 군산에서의 환경문제는 이제 시민의 의식 속에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환경운동에 대한 시민의 참여와 이해는 더욱 더 폭넓어졌으며 환경운동은 대중적인 시민운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또한 군산지역의 환경운동은 전국적인 모범으로 자리잡고 있다. 치열한 전투성. 한치의 타협도 없이 어떠한 개량적인 협상안에도 굴복하지 않은 지역의 환경운동은 자본과 정권의 힘에 무너지지 않은 지역운동의 전형이기도 하다. 세세히 군산지역 환경운동의 성과를 논하기보다는 오류와 한계를 극복하는 이후의 운동이 중요하기에 군산지역 환경운동의 전개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지적해보기로 하자. 초기에서부터 환경운동이 상층인사들에서만 주도되었다. 교계인사와 사회단체인사들이 주도했던 환경운동은 일반 시민의 참여를 보장하지 못한 채 선언적이고 고립적인 운동으로 일관되었다. 또한 중요한 시기에 합법적인 운동만을 강조하여 대중의 폭발적인 투쟁을 담보하지 못한채 단발적인 투쟁으로 끝나게 됨으로써 운동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더불어 선전방식이 유인물에만 의존한채 운동이 전개되어 시민의식을 폭넓게 깨우쳐주지 못했다. TDI공장 철거운동의 경우에도 투쟁의 연속성을 보장하지 못하고 일회적, 산발적 투쟁으로 일관하였다. 또한 TDI공장 철거를 위한 제시민단체들간의 불협화음은 초기의 운동을 어렵게 하였으며 뒤늦게 통일단결하여 많은 아쉬움을 남기게 하였다. 조직운영에 대한 비민주성은 효율적인 철거운동이 되지 못하게 하였다. 중요한 문제로 남는 것은 4년간의 환경 운동과 TDI공장 철거운동 과정에서 뛰어난 지도자가 없었다는 사실과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객관적인 훌륭한 운동역량을 발휘할 지역의 환경 운동가가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예증하기도 한다. 그것은 이후에도 중요한 과제로 남는 문제이다. 결론적으로 TDI공장 철거운동을 중심으로 한 지역의 환경운동은 단결과 줄기찬 투쟁이 가져온 성과와 이를 올바르게 전개하고 지도하지 못한 오류로 집약된다 할 수 있겠다. 3. 군산지역 환경운동의 새로운 전망을 위하여 시민연대의 수준에서 군산, 옥구 환경운동 시민연합으로 발전한 지금의 조직과 환경운동에 대한 시민의 공감대는 이후의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14대 총선에서 지역의 환경운동을 선도적으로 이끌어왔던 엄대우씨의 출마로 인한 선거 후유증은 새로운 운동의 전환을 맞이하게 하였다. 이제 군산에서의 환경운동은 정치인이나, 교계 인사가 주도하는 환경운동이 아닌, 다시 말해 상층 명망가에 의존하는 환경운동이 아닌 기층민중과 시민이 주도하는 환경운동으로 바뀌어 가야 한다. 서해안 개발이 구체화되고 도시화로 인한 도시공해가 새롭게 발생하는 등 이제 군산은 전면적인 환경문제에 부딪치게 되었다. 개발과 환경이 공존하는 '지속 가능한 발전이 요구되는 군산에서 환경운동은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정책과 비젼을 제시하고 모든 시민들이 참여하는 실천적인 환경운동을 전개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운동의 전문성과 대중성을 최대한 확보해야할 것 이 다. 이같은 노력을 구체화시키기 위한 내부의 고민과 노력이 있는 이상 군산의 환경문제는 군산 시민의 힘으로 풀어나갈 것이다. 그간에 전개했던 시민운동의 저력은 지금의 과제를 현명하게 대처하고 새로운 환경운동의 장을 열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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