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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7 | 칼럼·시평 [문화시평]
반세기 단절 접목시킨 전통문화의 진정한 의미-전주대사습 제옷 입혀야
김은정 편집위원(2004-01-29 14:44:54)



전주대사습놀이 경연장인 전주실내체육관은 예외없이 몰려든 관객들로 빼곡하게 들어차 가뜩이나 누글누글 녹아내리는 열기를 안팎으로 쏟아내고 있었다.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는 염천의 더위조차도 밀쳐 놓은채 무대위의 놀이한마당에 온통 정신이 팔려 있는 수많은 관객들을 보면서 무대위의 소리꾼과 구경꾼을 필사적으로 묶어놓고 있는 그 힘은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올해로 열일곱번째를 맞은 전주 대사습놀이 전국대회가 열렸던 6월 16일과 17일, 경연장인 전주실내체육관은 연일 잔치분위기였다. 이곳저곳에서 구름장처럼 몰려든 관객들은 1만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회장을 가득 메워 근래 보기드물게 성황을 이루었다. 예년에 비해 부쩍 늘어난 관객들로 신명난 잔치 한마당은 흥의 극치를 이루었지만 해마다 그래왔듯이 대중축제의 진정한 의미는 살려내지 못한 이번 대회는 ‘제옷 찾아 입기’의 원형복구에 대한 아쉬움을 상대적으로 더욱 절실하게 껴안게 했다.

판소리 등용의 공식적인 창구 역할을 해오고 있는 전주대사습놀이는 지난 75년에 부활되었다. 해마다 국악인구가 크게 늘면서 부문도 확대되어 지금은 판소리 뿐 아니라 기악․가야금병창․무용․시조․궁도․농악을 비롯한 아홉 개 부문으로 나뉘어 열리고 있다. 그러나 역시 이 대회의 꽃은 판소리 명창 선발이다. 지금까지 대사습이 배출해낸 열여섯명 명창들은 우리 국악의 맥을 틀스럽게 잇고 있는 주역들로 서있고 이 대회를 통해 발굴된 역량있는 국악인들의 활동역시 국악인구의 저변확대와 대중화에 단단한 몫을 해내고 있다. 더욱이 전주대사습을 문화방송이 주최하고 나서면서부터 TV중계를 통해 판소리를 비롯한 국악을 이해할 수 있는 인구의 확대에 크게 기여해왔던 점은 지나칠 수 없는 성과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 평가 못지않게 부활된 전주대사습놀이의 오늘의 모습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 역시 만만치가 않다. 아니, 어쩌면 해를 더할수록 누적되는 부정적 측면들은 긍정적인 성과보다도 훨씬 더 심각한 것이어서 이대로 가다간 전주대사습놀이가 제옷을 찾아입기는커녕 아에 제몸을 옷에 맞출판이라는 자조적인 비판까지도 거론되고 있는 지경에 이르러있다.
금년 대회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화려한 치장으로 꾸며진 무대, 오차없이 출연자들의 신명난 얼굴 표정과 몸짓을 채어내는 조명들, 위압감까지 안겨주는 거대한 방송기자재들이 들어찬 대회장을 찾았던 관객들은 한결같이 진정한 흥은 찾아질 수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기야 마치 무엇엔가 잠식당한듯한 느낌을 주는 오늘의 대사습놀이가 더 이상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 놀이마당은 도무지 제자리를 찾으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횟수를 거듭할수록 놀이의 잔치마당보다는 경연의 심화된 경쟁의식만 더욱 두드러지고 TV의 프로그램물로 정착되어가는 경향이 짙다. 따라서 열일곱번째의 옷을 갈아입은 금년 대회를 지켜본 관객들, 국악인들, 그리고 학자들까지도 이에대한 우려의 소리는 유난히 높을 수 밖에 없었다.
“전주대사습놀이를 오늘에 되살려낸 것은 의미있는 일이고, 민족문화의 전통계승이라는 측면에서도 절실한 작업이다. 그러나 겉치장에만 실경을 쓸 뿐 제모습조치 못찾는 상황에서 오히려 주객이 전도된 채 변색되는 이 놀이가 더 이상 대형화된다해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고 많은 사람들은 문제제기에 분분했지만 정작 대회를 치르고 난 이즈음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내년 대회를 기다리고 있는 분위기다.
전주대사습놀이의 고증을 두고 누가 얼마나 고뇌하고 그 작업에 매달렸으며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앞장선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
한 때 전주대사습고증에 대해 열정을 보였던 홍현식씨는 “정확한 고증자료조차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채 이미 나와있는 학설이나 주장만으로 대사습을 정리하려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세미나나 <공개토론회 등을 통해 고증작업을 지속했던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하고 그에대한 토론을 거쳐 가장 설득력있는 원형을 복구해야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말한다
「전주대사습 놀이란 조선 숙종때부터 전부지방에서 거행된 마상궁술대회와 영조때 거행된 전주 툭유의 물놀이 그리고 판소리 백일장 등 민속무예를 종합한 것으로, 시기도 단오날이었다」는 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측의 대사습 유래정리에 대해 「무예와는 별관계가 없는 순수 통인들의 놀이로 시기도 단오날이 아닌 동짓날이다」는 주장으로 팽팽하게 맞섰던 홍현식씨는 그러나 이제는 고증의 오류를 정확히 잡아내어 원형을 정립하려는 의지가 미진한 국악계 풍토에서 이제는 공개적인 토론석상이 아니면 아예 함구(?)학고 지내겠다는 입장이다. 뚜렷한 명분도 없이 자신의 주장이 원형복구를 위한 고증작업에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데에 대한 자기입장의 확고한 표명인 셈이다.
아무튼 명실공히 국악인들의 권위있는 등용문으로 평가받고 있는 전주대사습놀이는 원형보구와는 거리가 먼채 이를 제대로 고증해낼만한 문헌이나 자료는 찾아보기 어렵다. 원형보존에의 고증작업 못지않게 제기되는 문제가 또 있다. 이대회의 운영방식이 그중 하나다.
현재 이대회는 각부문 예선을 거친 입상대상자들이 하룻동안에 결선을 치루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문제는 이 결선무대에 있다. 대회 현장의 생중계방송을 명분으로 짜놓은 공연순서를 보면 참으로 황당하기 짝이 없다. 판소리&#8228;기악&#8228;무용&#8228;가야금병창&#8228;농악 등 각부문의 입상대상자들이 한사람식 돌아가며 무대에 서는 형식으로 짜여져있는 결선운영은 심사의 정확하고 객관성있는 바탕 마련은 그만두고라도 객석에서 보기에는 무대위의 출연자 뿐아니라 심사위원들까지도 방송 출연자로 밖에 보여지지 않는다는 것이 관객들의 한결같은 의견이다. 말하자면 대회장이 자연스럽게 방송국 공개홀로 변색되어버리는 셈인데 이미 소리에 밝아 신명이나면 추임새고 박수를 가리지않고 쏟아놓는 청퉁들에겐 어색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물론TV방송으로 얻어낸 성과를 굳이 무시할 필요는 없다. “TV방송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전주대사습이 이렇게 성장할 수 있겠느냐”는 자긍심 또한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앞을 내다본다면 지금 당장 화려함에 치중된 이 굿판의 허실보다 소박하지만 하나씩 갖추어가는 내실이 절실하다는 지적은 참으로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원혀을 되찾고 그것을 보존하면서 한편으로는 현재에 재창조해냐는 작업을 해야 할 사람은 누구여야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더욱 필요하다. 사실 오늘의 전주대사습을 옛날의 모습으로 그대로 재현해낼 수는 없다. 아니 명분없는 단순한 재현은 의미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맹목적인 재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원형을 찾아낸 이후에 이어져야 할 작업이다. 더욱이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대사습놀이의 「함께 즐기는 마당으로서」 진정한 의미를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점에서 한때 젊은층 청중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다 근래들어선 오히려 이대회를 외면하고 있는 분위기는 시사하는 의미가 크다. 국악의 고장으로 손꼽히는 이지역의 문화가 이대로 질질 끌려갈 수는 없는 일이다. 이루어진 역사보다 만들어진 역사에 익숙한(?)우리민족이지만 전통문화마저도 변색시켜 포장해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한 관중의 표현처럼『갈수록 가관인 대사습』이 『한풀이와 신명의 정서가 응집된 놀이 마당』으로 정립되기 위해선 무엇보다 제옷을 찾아 입는 일이 절실한 시점에 와있다. 제모습을 찾았을 때야 비로소 우리 전통문화의 반세기 단절을 접목시킨 대사습의 정신이 제대로 찾아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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