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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7 | 연재 [문화와사람]
의료민주화의 실현을 위하여 -윤혜설 (전주예수병원 노조위원장)
조명원 편집위원(2004-01-29 14:46:53)


결코 크지 않은 목소리,그러면서도 전혀 주눅들지 않은 어조로 들려주는 자신과 노동조합,또 여성문제에 관한 얘기들은 꽤 낯익은 듯 하지만 여러 가지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 주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어린시절, 동네를 누비는 꼬마애들 중에 코흘리개가 유난히 많았던 기억이 있다. 잘 씻지 않은 탓이기도 하지만 그만한 감기 쯤은 병으로 알지 않았던 우리네 살림살이의 한 면을 말해주는 것이리라. 요즈음 단순한 감기로 병원을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병원 문턱이 낮아졌다는 얘긴데 이른바 ‘전국민 의료보험 실시’ 덕분이다. 종합병원을 선호하는 경향이 문제시될 만큼 병원과 친숙해진 국민들은 과연 말 그대로 의료보험 혜택을 누리고 있는가. 또 그처럼 성시를 이루는 병워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의사,약사,간호사,일반 사무직,기타 잡역부 포함)은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고 있는가. 병원에 노동조합이 생기고, 심지어는 환자를 볼모로 삼는다는 사회적 비난을 무릅쓰고 파업을 감행하는 일까지 있고 보면 실상은 사뭇 다르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전주 예수병원 노조위원장 윤혜설 약사를 만나보니 그 막연한 짐작의 내용이 하나 하나 본모습을 드러낸다. 그에게서는 삼십대 후반의 가정을 가진 전문직 종사자가 품음직한 온화함과 단단함이 고루 느껴진다. 결코 좋지 않은 목소리, 그러면서도 전혀 주눅들지 않은 어조로 들려주는 자신과 노동조합, 또 여성문제에 관한 얘기들은 꽤 낯익은 듯 하지만 여러 가지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 주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서울내기인 그가 연고없는 전주에터를 잡게 된 것은 남편에 의해서다. 어릴적 꿈과 아버님의 유언을 동시에 실현하는 ‘의사가 되는’공부를 뒤늦게 시작한 남편을 따라 다섯해나 경륜을 쌓은 서울을 떠나온 사실이 그의 표현처럼 “의아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한” 것으로만 여겨지진 않는다. “그저 단순한 약사”였던 그가 노조위원장이란 막중한일을 해내게 되기까지는 예수병원이란 특정 지역의 특정 사업장이 기여한(?) 몫 또한 작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성격상 위원장 감이 못된다”고 스스로를 평할만치 내성적이고 대인관계도 넓은편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런 그를 “남에게 먼저 찾아가서 대화하고 설득하고 부딪치는, 제일 어려운일”로 이끌어낸 건 무슨 힘이었을까. 예수병원에 근무하기 시작한지 4년만인 87년 3월 26일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을 당시에는 “기본적으로 공감은 하면서도 어쩐지” 망설여지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다 해를 넘겨 가입했을 때,약국식구 스물 여섯명이 모두 동참했고, ‘연장자’라는 이유로 대의원에 선출된 그는 자연스럽게 단체교섭 대표가 된다. 그러나 초대 집행부는 임금교섭 실패후 불신임을 받아 물러나는 진통을 겪기도 한다. 의사직종과 일반직 근로자의 정액 임금인상 요구가 의사들의 반발에 부딪혀 결국 의사직 정률인상으로 낙착되었던 것인데. 그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보다 깊은 원인은 다른 데서 찾아지는데.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노조의 역할이 임금인상 요구만으로 끝날 수 없다는 의식이 싹트기 시작한 데 반해 집행부가 그 뜻을 읽어내지 못하고 오히려 뒤쳐지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조합원들의 신뢰를 잃은 것 같다”는게 그의 의견이다. 새 집행부가 들어서면서 노조는 단연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그들이 해낸 가장 큰 일은 임금지급방식을 40여개의 등급으로 나뉘어진 포인트제에서 9개 등급의 직급호봉제도로 전환시킨 것이다. 소모임활동을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이다.
2대 위원장이 임기를 마치고 결혼과 함께 90년 11월 서울로 가게되자 윤혜설 약사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입장이 된다. 조합원들의 모아진 의견이 상집회의에서 받아들여져 그가 위원장으로 내정이 되 있다는 소식을 들은 날 저녁 몸져 누울 정도로 벅찬 일로 여겨졌다. 그때의 심경을 “성격에 나오는 하나님이 모세를 부를 때 모세가 피하고 싶어하던 그때 그심경과 똑같은 것”이었다고 토로하면서 웃는 얼굴에 만감이 어린다.
“결국 내 의지와 상관없이 외부의 거센 물줄기가 거역할 수 없게 만들었다고 해야겠지요. 그리고 또 어떻게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한번 두 번 자꾸 만나다 보니 조합원들의 반응이 차츰 좋아지고 그러면서 지금은 패쇄적 성격의 한계가 어느 정도 극복이 되었다고.
위원장으로서 그의 앞에 떨어진 과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뭐니뭐니해도 임금교섭이 가장 첨예한 문제일텐데 다행히 성과가 좋은 편이다. 매번 쟁의 발생 신고를 하지만 실제로 쟁의에 돌입한 적은 한번도 없었고, 올해는 그나마 신고도 하기전에 19.1% 인상(이 수치는 정부의 ‘한자리 수’의 벽을 깼다는 의미가 더큰 것 같다)으로 타결이 이루어 졌다니 노조의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 알 것 같다. 그러나 그는 여성근로자들이 결혼 후에도 직장을 다닐 수 있게 된 것과 그동안 직급에 딸라 세분화되어 있던 복장의 단일화를 이뤄냈다는 데 더 큰 의의를 둔다. 또한 환자와 보호자를 위한 편의시설을 확충하는 문제도 주력사업중의 하나인데 ‘접수 대기시간 줄이기’와‘보호자침대 설치’가 현재 진행 중이다. 하지만 정작 그가 꿈꾸는 것은 의료민주화의 실현이다. 의료행위가 ‘상품’으로 전락해버린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모순을 극복하는 길은 ‘의료보험제도’가 국민에게 의료혜택을 최대한 보장하는 ‘의료보장제도’화 하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의료행위, 제도, 편의시설은 환자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의료민주화를 가로막고 있는 요인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현행 의료보험제도를 제일 먼저 든다. 조합주의방식으로는 조합지의 80%를 인건비로 소비할 수밖에 없는데, 그중재정이 가장 취약한 지역의료보험 조합의 경우 병원에 대한 체불액수 가 엄청난 실정(약20~25억)이라는 것이다. 조합측의 50% 가까운 의료보험료 인상과 병원측의 의료보험수가 인상요구는 그대로 환자의 부담으로 안겨진다. 또 한가지 병원간에 경쟁적으로 의료장비를 유치하는 문제의 폐해를 꼽는데 CT(컴퓨터 촬영)의 남용이 그렇고, 그것도 모자라 10-20억씩 하는 MRI(핵자기공명영상학)을 병원마다 들여놓음으로써 의사는 연구보다 기계에 의존하고,환자는 ‘더 좋은 기계’에 매달리는 심리 때문에 커다란 경제적 부담을 떠맡게 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그 외국산 기계들은 신식민지적 종속관계에 있는 우리 나라로서는 사지 않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고, 일단 들여놓은 병원에서는 수지타산 때문에 환자들에게 남용하게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문제가 훨씬 복잡해진다. 거기에 대응하는 노조의 힘이란 미력하기 짝이 없다. 실제로 예수병원에서 추진중인 MRI 구입계획에 문제제기를 했지만 병원측에선 “문제점은 인정하지만 다른 병원보다 뒤떨어 졌다는 인식을 줄 수 없지 않느냐”로 맞선다. 수긍이 가는 얘기다. 고작 ‘공개원칙에 입각해서 구입하자’는 선에서 타협하는 수 밖에 없다. 얘기가 자꾸 어려운 문제로 치닫는 것 같아 여성문제로 초점을 옮겨 보았다. 노조의 10개 부서 중에 여성부가 있다는 반가운 사실을 접하면서 분위기가 조금 밝아지는 것 같았다. 그동안 소모임활동을 활성화하면서 이루어진 독서반의 여성 문제 이론공부와 더불어 여성부의 사업도 의욕적인 출발을 보였다. 맨 먼저 제기한 문제가 탁아소 설치였는데 의견이 반반으로 나뉘어 아직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다. 전체 조합원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여성, 특히 그중 절반 가까운 기혼여성들의 절박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현실화될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윤혜설 위원장은 남녀를 불문하고 우리사회에 팽배해 있는 가부장적 의식을 탈피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한다. ‘적은 내부에 있는’경우가 의외로 많다는 것인데, 실제로 여성간부들의 활동이 결혼이후 현저히 부진해졌다고, 그렇다면 여성 스스로가 여성문제의 주체로 당당히 서는 일이 일차적 과제이고 그 다음이 주위의 제반여건과 맞서 싸우는 일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덧붙여 여성만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을터, 여성문제의 궁극적 해결이 여성해방을 넘어선 인간해방이 되기 위해서라도 남성과 함께 해나가야 할 일이라는 것이 그의 여성관이자 인간관이다.
마지막으로 사무직노조의 의의와 전체사회운동 속에서의 위상에 대해 의견을 묻자 그는망설이지 않고 대답한다. “병원노동자란 말이 어색하죠. 사실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레리트 의식이 있는 것도 인정해요. 하지만 그들의 근무조건은 생각보다 훨씬 열악해요. 3교대 근무자들이 그렇고,휴식을 취할 여유가 거의 없는 형편이에요”. 병원 여성근무자들의 유산 발생율이 높다는게 그 한 증거라고.
“그동안 경제투쟁에 치중한 면이 없지 않아 있어요.” 그럼에도 병원노조의 역할과 책임이 환자를 대상으로 한, 대 사회적인 일에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의료제도 모순의 해소를 통한 전체국민 건강의 실현”이 그것이다. 그런 의식 속에는 예수병원이란 단위노조가 해낼 수 있는 일이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며 제도의 모순은 곧 사회구조의 모순과 맥을 같이 한다는 사실도 함께 자리잡고 있다.“그러기 때문에 전체운동 속에서의 연대가 절대 필요한데,생산직 노동자에 대한 편향적 의식을 극복하는 일이 중요한 것 같아요. 결국 우리는 하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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