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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8 | [문화저널]
샤샤의 게르니카
김원호․전북노문연 의장 (2004-01-29 15:02:59)
「게리 쿠퍼」와 「잉그릿드 버그만」이 주연한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는 유명한 키스씬이 나온다. 반파시즘 빨치산의 근거지에서 첫눈에 사랑하게된 두 사람이 코가 부딪혀 입맞춤을 제대로 하지 못하자 얼굴을 기울여 하는 키스씬인데, 서로의 처지를 긍정하며 처량하게 희희낙락하는 아주 구슬픈 키스씬이다. 영화는 그렇다치고 헤밍웨이의 동명소설은 단문(短文)의 천재답게 그 빨치산의 사흘간의 투쟁을 숨가쁘게 그려내는데, 여두목(?)을 위시한 그 어설픈 빨치산의 인물들이 어떻게 해서 반파시스트 전선에 서게 되고 갈등을 하면서도 그 생활을 유지하는가가 생생하게 인간적으로 잘 그려져 있다. 행동주의 작가였던 헤밍웨이는 이 소설을 쓰기 전에 당시 세계의 지성이 그랬던 것처럼 그 유명한 스페인 내란으로 달려갔었다. 그 참여의 의미와 대상의 질은 엄청 다르지만 70년대 초의 암울한 남한의 저성 주의 한 사람이었던 소설과 황석영이 월남전으로 달려갔던 것과 같은 ‘인텔리적 고뇌’를 가지고. 20세기를 전후하여 독점을 완성한 선진자본은 1930년대의 세계대공황을 맞이하여 커다란 위기를 갖게 된다. 그러나 독일혁명의 실패에 힘입은 자본의 반동이 독일, 이태리등지에서 사이비 민족주의 구호아래 파시즘을 대두시키어 그 위기를 극복해낸다. 이 때부터 각국의 민중들은 반파시스트 전선을 결집하며 싸운다. 스페인의 민중들도 인민전선을 구축하여 1936년의 총선거에서 반동세력을 분쇄하며 드디어 의회를 압도적으로 장악하여 스페인 국민의 대다수의 지지를 받게 되는 공화국을 세우게 된다. 졸지에 야당이 된 파시스트들은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지원을 받아 프랑코를 중심으로 무력으로 인민전선을 와해시키려 들면서 스페인은 내란으로 빠지게 된다. 이 때 프랑스, 폴란드, 러시아, 불가리아, 영국, 캐나다, 미국 등지의 공산다원 및 좌파 사회당원의 투사들이 인민전선을 지지하여 이 내란에 참여한다. 이들은 전세계 반파시즘 세력을 크게 격려했지만 그들의 50%가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채 인민전선은 결국 패배하게 되고 그 악명높은 프랑코의 오랜 독재를 용납하게 된다. 이 스페인 내란 때 파시스트들이 스페인의 한 마을을 무차별 공습하여 주민들을 몰살시키는 사건이 벌어지는데 그 마을이 곧 게르니카이다. 이 사실에 전세계의 민중들은 격분하였고 화가 피카소는 그 격분을 거대한 벽화로 그리는데 이것이 세계적 명화가 된 반파시즘의 상징인 『게르니카』이다. 이 『게르니카』의 복제화가 샤샤의 침대 머리맡에 걸려 있었다. 샤샤는 영화 『샤샤를 위하여』에 나오는 주인공이 중동 6일전쟁 전후 이스라엘의 키부츠를 배경으로 이상주의자들이 꾸며내는 개척적 휴머니즘을 그려내는 2류 애정영화인데, 「소피 마르소」라는 건강한 애인을 둔 샤샤는 여기서 이스라엘군 장교이다. 이상주의자이자, 팔레스타인 인민의 삶터를 무력으로 빼앗아간 그 이스라엘의 군인이 샤샤가 매일 들여다보는 그림이 『게르니카』인 것이 야릇했다. 반파시즘의 상징과 유태적 민족주의와의 그 어울리지 않는 교호는 어떤 경지일까가 궁금해지면서, 예술 창작자와 수용자간의 현실에서의 얽힘―재미와 감동과 깨달음의 그 ‘사회적 서정’의 질이 더욱 깊어져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필자는 부러움과 질투심이 났는데 그것은 샤샤의 일견 팍팍한 자기 공간에까지도 ‘그림이 걸려있다’라는 사실이었다. 필자는 직업상(?)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인데 그 때마다 화가 나는 것은, 그들의 어떤 공간에도 몇 점씩의 그림이 걸려있으며 노동자들이 「드보르작」을 듣는다라는 사실이다. 근래에 본 영화만 잠깐 얘기하더라도, 『그린카드』에 나오는 식물학자 「앤디 맥도웰」의 현관에는 유명한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의 그림 「멜라니 그리피스」의 헛기침이 이뻤던 영화 『워킹 걸』에서 그녀의 아이디어를 훔쳐간 사사 「시고니 위버」의 거실에는 그 워홀식 자화상이 커다랗게 붙어 있다. 최루영화인 『사랑과 영혼』의 도예가 「데미 무어」의 작업실에는 100호 이상가는 그림이 덕지덕지 붙어 있더니만 나아가 점장이 무당인 「후피 골드버그」의 집 복도에도 무려 20여점의 그림이 걸려 있다. 심지어 포스트모던한 미드나이트블루의 건조함을 수준높게 드러낸 영화 『택시 드라이버』에서 그 유명한 계단총격씬이 벌어지는 창녀촌 건물의 정사를 나누는 한 방에도 「뭉크」의 그림이 걸려 있다. 물론 거의가 복제화 일터이짐ㄴ 그림을 거는 풍토가 이미 형성되어 있는 것이 참 부러웠다. 그러면서도 필자가 화가 나는 이유는 그들은 르네쌍스 이후부터의 축적된 그들의 ‘전통’이 나름대로 있다는 것이며 우리는 단절되어 아직도 헤매이고 있을 수 밖에 없는 신식국독자라는 점 때문이다. 물론 이는 우리의 전통을 지금부터라도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것에 대한 강조이다. 좋은 미술품은 여타 예술과 마찬가지로 대중의 인식과 가치를 의미있게 제고시킨다. 그런데 미술의 수용방식은 독특하다. 미술은 어떤 장르보다도 종합화된 현실인식에서 나오는 직관력에 의한 미술적 상황 창출의 예민함과 그 결정력, 그리고 공간안의 섬세한 설계를 해낼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한다. 미술은 문학처럼 오랫동안 두고 읽으면서, 또 연극등의 연행예술처럼 연행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대중이 자신 삶의 총체적인 것을 이리저리 삼투시켜나가면서 감동을 받는 것이 아니라 최초 그림을 보는 순간에 감동을 결정지워주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내용―형식 구성의 치밀함과 섬세함의 미술적 현실반영과 변형은 높은 수준을 요한다. 그리고 그 최초의 감동이 교호된다면 미술은 ‘장식성’을 얻게된다. 즉 감동을 사서 자신의 공간에 걸어놓고 대화를 하게되는 것인데, 이때 자신의 삶의 성숙과 더불어 그림이 계속‘낯익은 새로움’을 주어야만 현실의 우리 삶에 유의미한 가치를 가지게 된다. 게다가 사회적 서정성의 전형을 획득한다면 그 그림은 당대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미술의 특수성상 그림이 우리의 생활 공간에 걸리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당연히 잘해봤자 골동품이 된다. 물론 거의 대부분은 유통개념이 없이 사장(死藏)된다. 우리의 공간에는 수준 높은 그림이 ‘감동으로 선택되어’ 걸려 있는 경우란 거의 없다. 운이 좋아 혹 미술품을 접하더라도 그 주영역은, 조악한 인쇄상태로 된 국판정도 크기의 책의 표지나 삽화정도이며 좋아봤자 달력수준이다. 심지어 신문의 인쇄질, 나아가 흑백으로도 감상(?)된다. 주간만화나 선데이서울의 표지보다 조야한 인쇄상태로 미술품이 회화적으로 감동될 수 있다라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게다가 화랑등 전시공간은 아직 새발의 피이며, 앙포르멜 이후의 소위제도권의 현대미술은, 서구의 정신사와 미술 한계의 궁여지책인, 오리엔탈 환기의 닌자적 관심이 우대권 쥐어주며 한코 쳐준 것에 편승한, 속없는 모더니즘態이다. 그리고 우리의 소위 민중미술의 수준은 고전주의의 엄격함조차 놓쳐버린 「꾸르베」의 초라함과 조선의 민화(民畵)가 통합한 남한적 변종의 초라함이 아직 다수이다. 이 완벽한 내용―형식적 제정신없음과 누추함이 반복되는 한 남한에서는 복제화일지라도 그림이 걸릴 리가 없다. 게다가 자본주의 시각문화의 점차 증폭되는 세련됨과 설득력은, 예술적 인식과 가치평가의 제고를 통해 현실 속에서 ‘현실’을 찾게끔 훈련해내는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점차 파편화시키고 있다. “대중문화조작을 통해 부르주아지의 이데올로기를 은연중 동조해내게끔 한다”라는 닳고닳은 인식정리와 아직 수공업적 생산능력인 우리의 미술운동에 대한 비웃음은 여지없이 커지고 있다. 나아가 그것은 이성, 감성, 직관, 합리, 의식, 무의식, 계획, 자연발생 등의 중층적 종합, 즉 삶의 총체적 형식이 아닌 대중의 ‘감각’만을 자극적으로 키워내는데 더 큰 문제를 야기시킨다. 당대 노급의 미술은 이러한 시각문화의 영역까지도 책임져야 한다. 즉 미술쟝르의 현대적 영역넓힘 속에서 미술의 핵심이라할 수 있는 繪畫)의 전통적 깊이의 당대성, 즉 ‘현대의 회화’적 깊이를 창출해내야 한다. 그리고 우리 미술운동 진영은 독접자본주의의 과학기술 발전, 그중에서도 인쇄와 복제기술의 정밀한 발전을 미술운동의 유리한 조건으로 변화시켜내려는 노력, 즉 새로운 장식성의 개념도출 노력은 극히 부족했다. 이는 우리가 제도권적 시각(화랑전시회, 비싼 미술품)을 벗어나지 못하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아직도 진도지방에는 어디를 가나, 심지어 대포집에도 서넘점의 그림이 걸려있다. 물론 그 그림은 낮은 수준의 소위 동양화가 주종을 이룬다. 그러한 그림을 그리는 작가도 의외로 많다. 외상술값으로 기꺼이 내놓을 수 있고 그 받을 수 없는 외상의 손해보다 그림을 좋아할 수 있는 감수성의 전통, 즉 자생성 수준의 민중창작의 환경이 오랫동안 보존되어왔던 이유를 우리는 캐들어가야 한다. 혁필화(革筆畵)를 과거로만 닮으러 가거나 이발소 그림 운운하며 스스로 초라해지지 말고 우리는 인류가 만들어낸 고전부터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루벤스」의 변화의 복잡함과 무게와 연관한 웅장함, 「브뤼겔」의 정결함, 고전주의의 규율과 완결 지향, 「들라크로와」의 화려한 유동성과 생기, 「고야」의 인간학적 출발, 표현주의의 장점, 「샤갈」적 꿈의 공간, 「모딜리아니」와 「피카소」의 현대―미술적 사물접근법의 당대성 등 신식국독자 우리것의 전통으로 만들어낼 요소가 있는, 좋은 그림은 엄청 많다. 이제 남한에서는 대중들이 나서서 복제화일망정 사서 자신의 공간에 거는 전통을 만들어 내야한다. 이스라엘의 착한 군바리 샤샤보다 남한 민중의 사회적 서정의 향유수준은 분명 높다. 그런데 우리들의 집에서 『카레의 시민』이나 『게르니카』가 아니라 우리의 동생이나 아들딸들이 유덕화나 이선희의 조야한 브로마이드를 걸어놓고 있지 않은가! 물론 고전만 걸어놓을 것이 아니라 우리는 신학철의 『한국 근대사』나 박불똥의 『강제부검』등 당대성을 얻어나가고 있는 화가들에게 “우리에게 그림을 팔아라!”라고까지 요구해야 한다. 그래야만 신학철과 박불똥을, 미술을 골동품화시키는 화상의 투기 대상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다. 이것이 미술품이 대중의 운동과정에서 발전되는 정서와 삼투, 상승되면서 계급적 미술수요로 휘이드백(feed-back)되는 통로이다. 신학철이, 자기 그림 『한국 근대사』를 무려 수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삶의 공간에 걸어 놓는데 무슨 용기가 있어서 앞으로 엉터리 그림을 그려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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