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1991.8 | 칼럼·시평 [문화칼럼]
지역감정, 그 몇가지 신화의 제거
이성호 전북대 강사, 사회학(2004-01-29 15:10:01)


1.
87년 6월 항쟁 이후, 좀 더 구체적으로는 7, 8월 노동자 대 투쟁이 절정에 달하던 시기부터 우리사회에서는 지역간 대립의식으로 내용으로 하는 지역감정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은 87년 말의 대통령선거와 88년 초의 총선에서 그리고 최근의 지방의원선거에 이르기까지 선거철만 되면 어김없이 대중의 정치적 선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거대한 힘으로 되살아나곤 한다.
우리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가 어느 지역에 살고 있는지 또는 어떤 정치적 입장을 지니고 있는지에 관계없이 이러한 악랄한 힘의 실체로서의 지역감정이 지니는 심각성에 대해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인지, 왜 그처럼 엄청난 힘으로 확산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의 정치적 기능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상당한 인식상의 차이가 존재한느 것이 현실이다.
이제 우리는 일견 비합리적인 감정의 덩어리로 여겨지는, 그러나 중요한 정치적 선택의 시기에 이르면 돌연 실질적인 힘으로 살아나는 지역감정의 실체를 정확하게 드러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단지 몇 차례의 선거과정에서 현상적으로 드러난 정치적 결과 때문이 아니라, 현재 지역감정이 민중운동의 성장에 커다란 장애물이 되고 있고, 또 다른 정치적 변혁기에 민주변혁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등장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역감정의 실체를 드러내는 작업이 우선 지역감정을 보는 몇 가지 신화의 제거에서 출발해야 한다.

2.
첫 번째로 짚어보고자 하는 한 가지 신화는 지역감정을 ‘호남인의 한(恨)풀이 의식’으로 보는 견해이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호남지역 주민들의 한은 수십년(또는 훨씬 오랜기간) 동안의 호남지역에 대한 정치․경제․사회적 차별로부터 발생한 것이어서, 지역감정은 이처럼 역사적을 뿌리를 지니고 있는 호남인들의 함을 풀어줌으로써만 비로소 치유될 수 있는 것이 된다. 대체로 ‘자유주의적 관점’을 이론적 배경으로 하는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지역감정은(중앙과 지방, 영남과 호남의) 지역간 사회경제적 격차, 주요 권력기구 및 상층 관료조직에서의 엘리트 충원 및 승진에서의 지역간 차별, 대기업의 관리직이나 사무직 사원 충원에서의 호남지역 출신이 배제 등의 지역문제에서 유발되는 것이다. 즉, 지역감정은 소외되고 차별받아 온 호남지역민들의 한(恨)이 표출된 집단적 감정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이해방식에 따르면, 지역감정을 유발시키는 지역문제의 해결책은 그간 차별을 받아온 호남 지역에의 집중적 자본투자를 통한 지역개발, 관료기구나 대기업의 충원 및 승진에서의 지역적 차별의 철폐, 지역간 사회․문화적 교류의 확대를 통한 차별의식의 철폐 등으로 제시된다.
물론 그간 중앙집권화된 권력구조하에서 진행되던 산업화과정에서 호남지역이 낙후되었던 것이 사실이라 할 때, 이러한 자유주의적 시각은 객관적 현상에 입각한 파악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런 관점에서 지역문제를 이해할 경우, 지역문제의 본질을 올바르게 파악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자칫하면 오히려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즉, 이들은 지역문제를 경제․정치․사회의 영역에서 각각 분리된 채 나타나는 것으로 파악함으로써, 그 해결을 각 영역의 지배 세력에게 의존하려 한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경제적․정치적 지배세력이 맺고 있는 계급적 동맹관계나 그러한 계급관계가 나타나게 되는 사회구조의 문제는 중요한 것이 아니며, 이들이 제시하는 지역문제의 해결책은 정치권력이나 독점자본의 각성을 요구하는 도덕적 권유 이상의 의미를 갖기 힘들다.
그러나 자신의 몸뚱이를 부풀리는데 도움이 되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서 삼켜버리는 자본의 냉혹성과 이들에게 의존해서 권력을 유지하며 이들의 이익보호를 기본목표로 삼는 정치권력에게 지역적 차별의 철폐를 호소한들 그것이 가능할 리가 없다. 왜냐하면 이들이야말로 지역불균등 발전을 통해서 손해본 것이 전혀 없는 집단들이며, 오히려 그것을 통해서 자신의 입지를 유지․강화 시켜 온 집단들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지역간 차별의 철폐가 현재의 지배세력에 의해서 해결될 가능성이 없다고 볼 때, 결국 문제는 ‘그렇다면 과연 누가 호남인들의 한을 푸러줄 수 있을 것인가’에 이르게 되고, 결론은 자연스럽게 ‘역시 신민당(실제로는 김대중) 뿐이다’로 귀착되고 만다. 이러한 논리가 가져올 결과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3.
그렇다면 지난 몇 차례의 선거과정에서 나타난 지역감정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그것은 정치적 위기에 직면한 지배세력에 의해 의도적으로 동원된 지배이데오로기이다. 주지하다시피 87년 6월 항쟁과 뒤이은 7, 8월 노동자 대 투쟁은 지배세력을 정치적 위기상황으로 몰아넣었다. 즉, 87년 하반기의 거대한 민중적 저항은 정치권력에게는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한 심판을 수용할 수 밖에 없는 조건을 제공하였고, 노동자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안정적 축적을 계속해왔던 독점적 자본갇르에게는 노동자계급이 더 이상 축적의 도구만이 될 수 없음을 일깨워 주었다.
이처럼 그 간의 안정적 지배구조가 더 이상 ‘누워 떡먹기’가 아님을 확인하게 된 지배세력에게 한층 더 불리했던 것은 그간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해주는 기능을 담당했던 반공이데올로기와 성장이데올로기가 점차 효력을 잃어가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80년대 중반 이후 민중의 의식에 각인되고 있었던 자주․민주․통일의 이념은 전국민을 항상적인 ‘붉은 색 콤플렉스’로 무장시켰던 반공이데올로기나 민중의 유혈적 착취를 정당화시켰던 성장이데올로기의 효과를 감소시켰던 것이다. 이러한 위기상황에 처한 지배세력에게 현재의 지배체지를 정당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이데올로기적 재료가 절실하게 필요했음은 물론이다. 이렇듯 지배세력의 정치적 위기상황에서 기존의 지배이데올로기를 대체할 목적으로 개발된 ‘묘약’이 바로 지역감정이다.
이처럼 지배세력이 지역감정을 지역간 분할지배를 위한 지배이데올로기로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은 당연히 역사적으로 형성된 지역간 격차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60년대 이래의 독점적 지배체제하에서의 지역차별정책이 지역감정형성의 직접적 원인이 된 것이다. 지배세력은 이러한 지역간 격차에서 나타나는 호남인의 소외의식을 한껏 이용하면서 한편으로는 비호남지역인들의 (허구적인) 수혜의식을 동원하면서 지역간 대립의식을 확산․중폭시켜낸 것이다.
이러한 지역감정의 이데올로기적 동원을 통해 지배세력은 다양한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우선 야당의 분열을 통하여 선거국면에서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당장의 성과였지만, 그 보다 중요한 효과는 민중운동역량을 약화시킬 수 있었다는 점이다. 즉, 지배세력은 지역감정의 이데올로기적 동원을 통하여 사회의 계급간 지배-피지배관계를 지역간의 지배-피지배관계로 왜곡․전도시키는데 성공함으로써 자신들의 지배구조 속에서 형성․심화되어 온 체제의 모순을 은폐시키고, 동시에 민중운동진영을 지역적으로 분할시키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현실세계를 왜곡․전도․은폐시키는 전도된 사회의식의 체계’를 이데올로기라 부른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계급사회에서는 주로 사회의 지배계급에 의해 창출․동원되면서 계급적 지배관계를 은폐시키는 기능을 한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의 지역감정은 지난 수십년간의 독점적 지배체제의 모순이 응집되어 결과된 감정의 집단적 표출이지만, 그 속에는 체제의 모순을 호도하기 위해 지배세력에 의해 동원된 허위의식으로 형성된 지배이데올로기가 자리하고 있다.

4.
한편 지배이데올로기로서의 지역감정은 기존의 반공이데올로기와 결합하면서 신민당(김대중)과 호남지역, 그리고 민중운동진영을 묶어 ‘대체로 붉은 색의 집단들’로 규정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것은 한편으로 비 호남 지역주민들에게 반 호남감정을 주입시키는 효과 뿐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는 민중운동과 보수적인 지역정당과의 차별성을 희석시키면서 민중운동의 공간을 지역적으로 협소화 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즉, 계급관계가 지역관계로 전도되면서 민중운동이 지역적인 것을 협소화 된 것이 오늘의 민중운동의 활동공간을 한껏 좁혀 놓는데 부분적으로 기여하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자제선거가 끝난 오늘의 시점에서 지역감정의 표출이 지니는 보다 중요한 의미는 단순히 선거에서 드러난 지역간 정치적 성향의 차이가 아니라 그것이 지니는 민중운동에의 영향에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지배세력에 의해 동원된 이데올로기로서의 지여감정을 통하여 혜택을 보는 세력은 이제 단순히 집권세력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 지자제선거의 과정 및 결과에서 나타나는 것처럼(또는 이번 선거의 결과로 말미암아), 야당은 정치적 보수주의를 노골화하면서 지역당으로서의 자신의 지위를 통해서 현재의 독점적/파시즘적 지배체제하에서 한계적 생존을 유지하려는 듯이 보인다. 말하자면 보수야당은 이제 지역감정을 통해 자신의 생존을 보장받는 지역감정의 수혜자로서의 지위를 누리려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들은 더 이상 지역감정 해소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문제가 그렇다고 한다면, 지역감정의 부정적 영향을 극복할 수 있는 민중진영의 방도-지역감정을 이데올로기화하는 가장 중요한 메카니즘으로서의 언론, 특히 방송매체를 완전히 지배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현재의 조건 속에서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만, 그러나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전체적으로 지역간 지배관계로 전도되어 있는 계급간의 관계를 온전하게 드러낼 수 있는 방안을 모색에 있다할 수 있으며, 이것은 우선 보수야당과 민중운동진영의 차별성을 분명히 밝히는 데에서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5.
마지막으로 우리가 제거하고자 하는 지역감정에 대한 기존의 이해방식에 있어서의 또 하나의 신화는 그것을 보편화하려는 입장이다. 지역감정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정치적 선진국에서도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현상이라고 보는 견해나, 우리나라의 지역감정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존재했으며, 고려 왕건의「훈요십조」에서, 정도전의「팔도인심론」으로, 그리고 이중환의「택리지」로 이어져 온 전통적인 우리의 민족적 정서라고 보는 견해를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물론 우리의 역사 뿐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도 지역간 경제적․사회문화적 격차는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자본의 논리에 의해 지배되면서 파시즘적 지배체제를 정당화시키는 기능을 담당하는 오늘의 지역감정을 단순히(그 속에 존재하는 매개적인 과정을 고려함이 없이) 보편적 지역주의나 전통적인 지역민의 정서로 환원시키려는 것은 자칫 현재의 지배구조를 정당화시키거나 또는 오늘의 지역격차와 지역감정을 유발시킨 데 전적인 책임을 지니고 있는 지배세력에게 면죄부를 발부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지역감정을 지배이데올로기로 동원한 지배세력의 의도에 충실히 부합되는 논리인 것이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