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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9 | [문화저널]
순창 돌보 장승과 짐대
이상훈․편집위원 (2004-01-29 15:32:00)
요사이 종말론으로 인하여 세상은 떠들썩하다. 길거리에서 종말이 다가왔음을 핸드마이크로 알리는 모습은 대단히 희생적(?)이다 외려 종말론의 당위성보다는 목이 터져라 외치는 종말론자의 모습자체에서 그 날이 머지 않았음을 느끼게 해준다. 세상은 진짜 어지럽다. 그러다가도 또 다른 관심에 휩쓸리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잔잔해질 터인데. 지금 우리는 분명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 더욱이 정신의 뿌리가 온통 썩은 상태에 살기도 한다. 필자는 장승에 미친 환자이다. 누군가가 필자에게 ‘장승에 환장한 사람’이라고 불러준다면 고맙게 여길 것이다. 왜냐하면 필자는 장승을 만나는 것을 계기로 건강한 우리 삶의 방식․표현이랄 수 있는 민속을 피상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해서 필자는 거듭해서 장승과 짐대를 찾아보게 되는 이유를 설명한다. 이러한 열정을 가지고 있더라도 혹 「저널여정」을 읽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필자에게 핀잔을 줄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그 핀잔을 고맙게 받아드릴 자세를 갖추고 있다고 밝히고 싶다. 다음 여정부터는 주제가 다른 곳을 찾아가게 될 것임을 미리 밝힌다. 이번 여정지는 순창 볼보란 마을인데, 돌보마을에는 나무로 만든 장승과 짐대가 함께 한다. 동생이 지난번 여름 휴가 중 그 마을에 농활을 다녀오면서 형이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사진에 담아왔다. 그리고 필자가 전북지역 장승현황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라도 새롭게 알게된 곳을 찾아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휴가철이라 터미널은 무척 혼잡스러웠다. 전주에서 다시 정읍에서 순창행 완행버스에 몸을 싣는다. 버스는 내장산으로 향하고 어느새 가을고개(추령)을 넘고 복흥을 지나 답동에 머문다. 여기서 쌍치쪽으로 20여분을 걸어 돌보마을에 닿는다. 이곳에 직접 와보니 오지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산을 가르는 포장된 도로는 더 이상 이곳을 오지로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돌보(42호, 각성바지, 논․담배농사)마을 앞에 흐르는 시내에는 피서객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이제는 마을 앞에까지 와서 쓰레기더미를 쌓아 놓는다. 마을 여기저기에는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고 세워져있는 푯말이 무색했다. 인간은 종국에 자기네 스스로가 돌아갈 곳마저도 내동댕이치고 있는 것이다. 돌보마을을 중심으로 양쪽과 가운데에 나무로 만든 장승과 짐대가 모두 3군데 있다. 마을입구 왼쪽에는 2기의 장승과 3기의 짐대가 함께 있다. 이곳 장승의 특이점은 다른 지역의 장승과 같이 부릅뜬 눈, 커다란 코, 찢어질 듯 치켜 올라간 입과 같은 형태로 조각한 것이 아니었다. 1미터 남짓 되는 크기의 소나무에 상반부 정면만을 조금 깎고 붓으로 얼굴형상을 그린 모습이다. 그리고 윗부분 뒷면에는 비녀라 하여 가로로 해서 나무를 고정시켜두었다. 또 다른 특이점은 장승을 한 곳에 1기씩 세웠다는 점이다. 보통 쌍을 이뤄 세우는데. 장승 정면에는 남방축귀대장군(南方逐鬼大將軍)이란 명문이 새겨져 있다. 형태면에서는 돌보마을의 다른 장승도 유사하다. 짐대는 역시 소나무로 만들며 커다란 기둥에 Y자 형태 나무를 올려놓고 거기에 머리와 목을 세워놓은 새형태로 만든다. 3기중 1기에는 새가 없다. 가운데 위치한 장승과 짐대는 1기씩 세워져 있고 형태는 마을입구 것과 유사하다. 명문을 확연히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마을 오른쪽에도 역시 장승 1기와 3기의 짐대가 길 양쪽에 각기 세워져 있다. 이곳 장승은 비녀와 같이 막대기를 대놓지도 않고 그냥 소나무를 세워놓은 형태이며, 정면에는 북방대장군(北方大將軍)이란 명문이 새겨져 있다. 돌보마을에 사는 김기섭(54세)씨에 의하면 마을 세 군데에 장승과 짐대를 세우게 된 것은 마을이 본시 윗뜸, 가운데뜸, 셋째뜸으로 구분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장승과 짐대는 3년마다 3기씩 2월 초하룻날에 세우게 된다고 한다. 그 날 새벽에 소나무를 정성스럽게 베어다 아침에 세운다. 별다른 신앙의식은 없고 이때 풍물이 울리고 참여한 사람들이 술 한잔씩 돌려 마신다고 한다. 특히 장승과 짐대를 세운 것은 마을 앞 백방산이 정면으로 비쳐 화재가 발생하기 때문에 세웠다고 한다. 짐대는 농경문화와 관련해서 풍농을 기원하는 신앙대상물 역할을 하는데 특히 산간지대에 분포하는 짐대의 기능은 화재막이 역할이 강하다. 장승의 경우에 있어서는 마을수호와 함께 짐대와 같은 화재막이 역할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우리 조상은 재앙에 자연스럽게 대처하면서 정신적 안정을 찾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의 정신적인 뿌리가 외는 민속신앙을 미신이라는 미명아래 뿌리 채 뽑기 시작했다. 뿌리뽑힌 나무가 온전할 리 없는 것처럼 정신이라는 뿌리가 훼손된 사람이 온전할 수 있겠는가. 요즘 종말론이 팽배한 것도 다분히 이런 연유에서 찾아지리라고 생각하나다. 온전한 뿌리는 제토양의 양분에서 꿋꿋하게 세워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양분 중 하나가 민속에서 찾아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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