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1991.9 | 칼럼·시평 [문화칼럼]
특별기고/우리의 딸들에게 물려줄 아름다운 세상은
이윤애(2004-01-29 15:50:23)

지리한 장마와 함께 오대양 사건이 연일 보도되는 가운데 일간 신문의 사회면 한편을 크게 차지했던 사건이 바로 「김부남 사건」이었다. 이제 김씨 사건은 개인적 인생사의 한 부분이라기 보다는 성폭행 피해여성들의 고통이 얼마나 극심한 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 되었다. 그만큼 이 사건은 혼돈된 우리 사회의 성문화에 큰 충격이었으며, 성폭력 근절을 위한 여성운동에 불을 당겨 주었다.
김씨는 아홉 살을 어린 나이에 이웃집 아저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했지만, 유교적인 윤리관이 뿌리깊은 사회에서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 할 수 없었다. 두 번이나 결혼했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여자 구실도 못한다는 심한 죄책감으로 건강한 결혼 생활은 누려 보지도 못한 채, 정신 질환으로 사달리면서 과거 악몽의 흔적은 더욱 더 깊어만 갔다. 이렇듯 겹쳐지는 고통들을 스스로 감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끝내는 자신을 성폭행한 남성을 찾아가 20여년을 묻어두었던 원죄에 단칼을 꽂았던 것이다. 현재 살인 혐의로 전주 교도소에 구속 수감중인 김씨는 가해자가 되어 법의 심판 만을 기다리고 있다. 사건 발생 직후 ‘원한에 사무쳐 일을 저질렀다.’ ‘후련하다’ 고 말했으며, 구형공판이 있던 재판정에서 최후진술을 통해 ‘사람이 아닌 짐승을 죽였다’라고 말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실정법상에서 살인 행위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아홉 살 때 성폭행당한 사건이 신고되지 않아 법의 보호를 받을수 없다고는 하지만 21년이라는 시차를 두고 빚어 진 두 사건을 동일 시점으로 놓고 본다면 김씨의 살인 행위는 틀림없는 정당방위이며, 피해자와 가해자는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이란 원래 약한 자에게는 최대한의 보호 장치이며,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지 사람을 벌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이사건의 경우 법의 차원에서만논의 된다면 법에 의해서 보호받게 되는 것은 실제적인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라는 모순에 빠지게 될 것이다. 가부장적 정서와 이중적인 성윤리 규범이 한 여성의 삶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파괴했는지를 이 사회가 안다면 「김부남 사건」의 경우는 법의 운용차원을 넘어선 귀중한 판례로 남게 하여야 한다.
정부가 ‘범죄와의 전쟁’ 선포를 한 이후에도 성폭행은 시간과 장소, 아이에 상관 없이 양적․질적으로 급격히 팽창하고 흉포화되어 가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에 전반적으로 팽배해 있는 힘의 논리와 무관하지 않다. 폭력이 정의를 압도하고, 힘있는 자가 약한 자를 억압하는 사회적 병리 현상이다.
성폭행에 관한 정확한 통계를 기대할 수는 없으나, 지난 ‘89년 한 해 동안 성폭행 피해 사실의 신고는 무려 5천여건이 넘었다고 한다. 피해자들의 2%정도로 극히 낮은 신고율을 감안한다면 통상적으로 1년에 25만여건 정도의 성범죄가 발생하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성폭행 사건이 10% 정도이며 피해 대상의 연령이 갈수록 낮아진다는 점에서 유아 성폭행은 심각한 사회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일반적으로 아이들은 성이 없다.(無性)고 하지만, 유아 성폭행의 경우 가해자들이 성을 대상으로 폭행을 했고, 피해자들도 폭행 시점에서는 성을 인지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사춘기가 되어 성에 눈을 뜨면서 과거의 폭행 사실을 성관계로 잘못 인식되기도 한다. 유교적 습성에 젖어 여성에게 정절이 강요되는 우리 사회의 이중적 성규범으로 피해자들의 순결 논리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된다. 뿐만 아니라 한참 자라나는 아이들의 성격에도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가져오며, 성인이 된 후에도 심한 우울증으로 정신 질환까지 앓게 된다. 만약 자신의 아이가 성폭행을 당했다면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는 명분을 내세워 덮어두려고 하지말고, 아이가 입을 수 있는 마음의 상처와 정신적 충격을 가능한 한 빠르고 자연스럽게 치료받을 수 있어, 그 충격을 최소화 시키고 손상된 감정을 회복시키는 데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한 부모일 것이다.
교통사고와도 같이 빈번히 발생되고, 여성들의 삶에 직접 간접으로 영향을 미치는 성폭력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대안은 없는 것인가? 일반적으로 성폭행을 성관계로 잘못 인식하여 피해자들을 정숙하지 못한 여자라고 비난하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피해자들은 피해 사실을 숨기고 신고조차 꺼리며, 신고가 되더라도 가해자 중심으로 처리되어 기소율이 낮아 재판 과정에서 증인으로 나선 피해 여성을 오히려 재 강간하는 법 적용의 모순을 드러내는 실정이다. 피해자 본인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저항할 겨를 도 없이 강제에 의해 저질러진 성폭행을 신체 한 부분의 상해 정도로 넘길 수 있는 사회적 인식 변화가 무엇보다도 선행도어야 하며, 성 윤리 차원이 아닌 인권 보호 차원에서 새롭게 인식되어야 한다.
또 성폭행 가해자들에 대한 인식이다. 성범죄를 저지르는 가해자들이란 원래 성도착증 환자이거나 변태성욕자, 아니면 험상궂은 흉악범정도로만 여기는 일반적 인식 또한 잘못이다. 성폭행은 가해자의 대부분이 피해자와는 아는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고, 어린 아이들의 경우도 평소 잘 따르고 친하게 지냈던 어른들에 의해서 자행된다는 사실을 보면서 ‘성폭행에 관한 한 안전 지대가 없다’라는 말에 동감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예방의 차원에서 올바른 성교육이 필요하다. 우리의 성교육은 근본적이고 체계적인 공식적 교육이 아니라, 음성적으로 성학습이 되어지기 때문에 성에대해서 올바르게 이해하기보다는 오히려 왜곡된 성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숭고한 성이 상품화되고 향락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한 성폭력은 계속 될 것이며, 인간상실의 도덕적 일탈 행위를 근절시키기 위한 사회 문화적 측면의 노력이 없이는 여성들은 피해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길이 없는 것이다. 순결과 정숙만이 여성의 지고한 가치로 여겨지고, 남성이 성본능은 묵인해 주는 가부장 사회의 이중적 성윤리와 성규범의 모순을 극복하여, 여성과 남성이 다 같이 순결을 도덕적 의무로 받아들일 수 있어, 잠정적인 피해자와 가해자들이 동시에 구제 받을 수 있는 성교육 프로그램의 개발이 시급하다.
「김부남 사건」을 비련의 한 여인에게 보내는 동정적 시각이 아니라 실체적 정의의 승리를 위해서라도 무죄로 석방하여 이 사회가 빼앗아 버린 한 여성의 건강한 삶을 사회가 책임져야 할 때다. 한 여성의 인생 역정을 계기로 성을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것으로 여길 수 있는 제대로 된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이루어 우리의 딸들에게 자랑스럽게 물려주고 싶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