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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10 | 칼럼·시평 [문화시평]
살아남은 사람을 위한 굿
유영대(2004-01-29 16:01:57)


9월 17일 우석대학 시청각실에 좀 특이한 굿판이 마련되었다. 이 학교의 국문학과와 동아리연합회에서 공동으로 「진도씻김굿」의 굿판을 마련한 것이다. 대학의 마당에 전통굿판이 마련되었다는 사실이 약간은 낯설고 특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대학의 축제마당에서 우리의 전통예술이 공연된 적은 많다. 특히 탈춤이나 풍물패의 사물놀이는 이제 어느 대학에나 몇 개씩의 써클이 있어서 상당히 활성화되어 있다. 얼핏보면 이같은 전통예술에 대한 경도가 대학문화의 주류를 이루고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같은 현상은 대학문화의 성격이 본질적으로 대항문화쪽에만 경사 되어 있다는 비판을 면할 길이 없다. 봉산탈춤의 춤사위와 그 변형이 뜻하는, 현실의 부정과 변혁에 대한 욕구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라든가, 사물놀이 패거리의 신나는 장단에 깃들어있는 신명을 진보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에 의하여 이런 전통예술이 대학문화의 핵심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 그렇지만 바로 이 같은 경향 때문에 대학문화는 그 편식 취향을 쉽게 극복할 수 있는 전망이 마련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아마 당장에는 이 같은 대항적인 성격이 쉽게 눈에 뜨이지 않아서 소홀히 여겨질 법한 전통예술의 여러 분야 가운데서도 그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고 이어 가야할 레파토리들이 엄청나게 많으리라 생각된다. 이번에 국문학과와 동아리연합회에서 공동으로 ‘진도씻김굿’ 공연을 마련한 일은 아마도 대학문화가 갖고 있는 이 같은 경향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올해의 대한민국 국악제 에서도 마침 주제가 ‘굿’이어서 그 굿판이 방송에도 긍정적으로 소개되었다.
지금은 이렇게 낯설어서 문화가 아니라 충격으로 다가오지만, 굿이라는 의식은 불과 반세기 전만 하여도 우리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아주 밀접한 것이었다. 예전에 우리 조상들은 참 굿에 익숙했었다. 아들 낳기를 빌어달라는 굿에서부터 시작하여 병낫게 해달라고 비는 굿, 농사 잘되게 하라고 비는 굿, 죽으면 씻김굿까지 굿으로 이어지는 것이 인생이다. 굿이 우리와 너무 가까웠기 때문에 딱히 굿하는 행위가 아닌데도, “굿보러 간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어라”, “굿 못하는 무당 장구탓만 한다”, “굿구경하려면 계면 떡이 나오도록”, “굿허고 자빠졌네”와 같은 말들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말 가운데 빠질 날이 없다. 굿은 뭔가 마음속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일이자. 아주 흥겨운 떡도 준비되어 있는 일상적인 마당의 공연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식민지를 경험하면서 우리의 정치뿐 아니라 문화마저 송두리째 부인하는 자기부정의 시대를 살게 되었던 것이다. 대학에서 굿판을 벌였다는 것은 그럼 점에서 여러 가지 뜻을 품고 마련된 잔치라고 생각된다.

진도씻김굿은 죽은 이에게 이승에서 미처 다 풀지 못해 맺혀있는 원한을 살아남은 이들이 풀어줘서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의식이다. 노래와 춤과, 음악이 한데 어우러져서 신성한 의식을 만들어 가는 종교의식이다. 이날 공연은 5백명쯤 좌석이 마련된 강당에 천명가량이 들어서서 그야말로 송곳 꽂을 틈도 없었으며 돌아간 사람이 수백명은 되었다. 이같이 시끌벅적한 사람의 열기가 바로 굿판의 열기로 되어 그 날 두시간 가량의 촉급한 공연을 상당히 성공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씻김굿에서 가장 주족 해야 할 요소는 음악적 완성도이다. 기왕의 판소리 장단을 모두 사용하고, 홀림장단이나 터벌림, 선부리, 살풀이등 다채로운 리듬을 구사하여 맡겨진 주제를 연출하는데 치밀하게 사용하고 있다. 무가소리도 일품이려니와 그 반주도 빠른 장단에 오면신들린 시나위 방식으로 바뀐다. 진도굿의 악사들은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예인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고도로 숙련된 악사들이 최고의 기량을 자유롭게 연주하여 자신의 가락을 내보이면 다른 악기 주자는 자신의 소리를 죽여 그것을 돋보이게 받쳐준다. 자유롭게 자신의 선율을 가져가던 대금 주자가 다른 악기를 위하여 뒤로 물러앉고, 이번에는 아쟁이 앞으로 나와서 자신의 선율을 내새운다. 피리가 뚜벅뚜벅 걸어나와서 가장 무뚝뚝하고 서슬깊은 설율로 내노래하며 자랑을 하는가 하면, 해금이나 깽쇠, 장구, 북도 스스로 자신의 소리를 낸다. 이날 마이크가 미처 마련되지 않아 홍옥미의 해금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아쉬움이었다. 진도의 굿음악인 사나위는 주제가 자유이다. 그러면서도 사람의 소리와 여러 악기들이 합쳐 내는 소리가 너무 조화롭다. 서로를 세워주기도 하고, 서로 다른 가락을 연주하는 모든 선율이 조화롭게 얼크러져 있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다고 아니할 수 없다. 그래서 시나위의 다른 주제는 조화이다. 그런데, 이 자유와 조화는 곡조가 너무 슬프다. 계면으로 이루어진 이 슬픈 가락.
진도 무가의 사설은 서사적 내용이 일관되게 긴 소리로 짜여져 있지는 않으나, 한단락 마다 매듭이 세련되게 창작되고 다듬어져 있으며,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되어있다. “넋이로구나, 신이로구나. 가련하다 인생 육은 처량하고 넋이로세. 한번 아차 죽어가니 인간세상 가지가나, 다시 못올길 가시는구나” 이승에서의 삶이 그다지 넉넉하지 않았듯이 저승에서의 삶도 그다지 풍요로울 것 같지 않다. 맨 처음 시작하는 절차인 「혼맞이굿」에서 김대례가 “신이로구나”라고 내뱉는 그 한마디에 그만 소름이 돋던 때의 감동을 지금 말로 표현하기는 좀 어색하다. 망연히, 그 신과 닿아있는 소리를 들었다. 김대례의 그늘 짙은 성음이 돋보이고, 목에 듬뿍 그늘이 붙어서 그 창자의 가슴에 담고있는 만만치 않은 세계의 무게가 처연하다. 이러한 소리의 뒤를 박병천이 막아주었다. 박병천은 목구성이 아주 뛰어난 소리꾼이면서 그 소리에 동네 아저씨다운 친근한 맛이 잘 드러난다. 이런 사설과 목구성이 바로 판소리를 낳은 토양이 되었다.
진도굿에서 춤은 소박하면서도 그것이 지향하는 바가 아주 또렷하다. 춤은 그것이 신을 향한 몸짓이다. 거역과 항의이기도 하고, 순종과 용서이기도 하며, 사랑과 진혼이 되는 것이 춤이다. 고풀이춤, 배가르기, 살풀이 춤은 그것이 무엇을 향한 몸짓인지 확연하면서, 또한 그사위가 과연 아름답다. 고를 푸는데, 미처 풀리지 않아 끝끝내 남아있던 그 정경을 보고 여러 사람들의 가슴이 섬뜩했다는 것도 이날 공연의 중요한 의미가 될 것이다. 살풀이 춤이나 지전춤을 보면, 그 금제를 벗겨내려는 몸짓, 억압을 해쳐내려는 사위, 저 대동세상을 향한 몸짓이 우리를 함께 하자고 부른다. 마지막에 특별히 보여준 박병천의 북춤은 그 같은 자유의 의자가 담뿍 담긴 한 표상이다.
씻김굿은 원래 큰굿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죽은이를 제대로 씻겨서 원한에 찬 삶을 녹녹하게 풀어서 저승으로 잘 보내려는 의도가 담긴 것이다. 그러한 실은 이 굿은 살아있는 이들을 위함 것이다. 죽은 이는 말이 없다. 그러나 살아남은, 죽지 못해 살아남은 이들은 오히려죽은이보다 더 그 정황을 애달파하며, 자기 설움에 쌓인다. 자신이 가진 그 서러움에 죽은이의 원한까지를 가슴에 품고 있다. 사실은 이 굿은 살아남은 이들을 위한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사람이 즐거워야 귀신도 즐겁다. 우리가 이 마당에서 실컷 신명을 내고, 제상에 놓은 그떡도 먹고, 그리고 억울하게 죽은 이를 이제는 잘 보냈노라 마음에 한 가닥 남은 안쓰럼까지를 모두 씻어내야만, 이제 귀신이 된 우리의 친구도 많이 흠향 하고 그리고 편안히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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