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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11 | [문화저널]
갖출 것을 아는 것이 멋을 아는 것이다
김두경(2004-01-29 16:12:22)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던 친구나 동창생을 만나면 묻게 되는 말이 대부분 공통적인 궁금증일 수 밖에 없지만 “지금 뭐하냐?”를 거쳐 이르는 곳이 어디 사는가? 라는 물음이고 어디 산다는 답변 뒤에는 반드시 무슨 아파트? 라는 그 지역 대표적인 아파트를 들추며 그곳에 사느냐가 묻는 것이 보편화 되어 버렸다. 이렇듯 요즈음에는 단독 주택에 사는 것보다 아파트에 사는 인구가 훨씬 많은 것인지는 모르지만 모두가 아파트에 사는 것이 당연시 되어 버린다. 마치 아파트에 살지 않으면 별 볼일 없는 놈 또는 세상의 흐름에 역행하는 똘아이인 양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되는 것이다. 어떻든 아파트는 우리 주거 문화의 표준(?)으로 자리해 버렸으니 아파트에는 살지 않지만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아파트 이야기를 조금만 해보자. 달빛이 은은한 여름날 고층 아파트 옥상에 올라 볼 기회가 있거든 아니면 고층 아파트 베란다에서라도 맞은편 아파트를 내려다 보라. 그러면 보일 것이다. 무엇이 보일지는 각자의 생각에 따라서 달라지겠지만 조금만 생각하면 오늘을 살아가는 나를 진하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쉽게 만나지지 않는다면 아파트 모든 벽면이 투명한 물질로 되어 있는 것처럼 상상해 보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같은 수직선상에서 똑같은 일이 거의 비슷한 시간에 이루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래도 가슴 밑바닥에서 현기증 같은 미열이 느껴지지 않거든 한발만 더 자신을 향하여 내딛어 보자. 거의 같은 위치에 상표만 다를 뿐 또는 상표까지도 같은 거의 똑같은 크기와 성능의 TV, 전축, 피아노, 식탁, 침대, 그리고 여기에 딸려서 살아가는 사람들 ……. 아파트와 일반 주택이 수직적 공간이동과 수평적 공간이동의 차이 밖에 없는 것을 무슨 호들갑이냐고, 대한민국 어느 집이라도 삶의 양식은 비슷한 것이지 단독 주택이라고 특별하게 사느냐고 반문하시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획일회된 군집의 예로서 아파트와 공간이동이 가까이 밀집되어 있기 때문에 삶의 형태도 개성이 없는 장식적 획일화가 쉽다는 예인 것이다. 그리고 실제 그런 현상들이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음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진짜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삶의 형태와 생각이 맞아 떨어지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아파트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손님접대라야 먹고마시고 화투짝이나 두드리는 일이 고작이고 비스듬이 기대고 앉아 TV나 보는 등넓은 응접실, 몇백 천만원까지 한다는 자개농 진열을 위한 안방, 허리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침실에는 침대, 대중가요 테이프가 고작인 몇십 몇백만원짜리 전축, 특별한 애정도 없고 의미조차도 모르면서 장식된 그림과 글씨, 싸구려지만 비싸구려로 산 도자기, 쓰임도 없이 자리를 지켜야 하는 고가구, 사두면 돈이 될 것이라는 착각으로 사놓은 골동품, 호화장정의 책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진정 내 주변에 놓여진 것들이 내 삶의 일부인지 아니면 남들이 하니까 나도 그렇게 장식하지는 않았는지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쓰시던 물건 내버리고 생면부지의 것들을 모시지 않았는지……. 장황한 나열이다. 하지만 진정 멋을 알고 누리는 사람이 사는 삶은 어떤 삶을 택할 것인가? 예 말씀에 “갖출 것을 아는 것이 멋을 아는 것이다.” 했고 “양반 산 놈이 갓치레 사당치레 한다”했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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