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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11 | [교사일기]
우리 제자들은 수족관속의 열대어가 아니다
김용락․순창제일고 교사 (2004-01-29 16:16:19)
우리 사회에는 어떤 사건의 결과만을 가지고 잘잘못을 따지려드는 나쁜 습성이 팽배해 있다. 이렇게 되기에는 국민정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언론, 특히 TV나 신문의 영향이 컸다고 본다. 9시만 되면 “○○○대통령은⋯⋯”이 뉴스 앵커의 첫마디를 장식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다음은 대통령의 하루 일과를 늘어 놓는다. 그 다음은 화염병이 날아가는 모습이다. 원인을 설명해주는 일은 절대로 없었다. 이러기를 10년,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틀림없이 무슨 이유가 있을거야.’라고 고민하던 국민들조차 어느덧 양비론을 이야기하게 됐다. 복잡한 내면을 고민하기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만을 보고 판단하기에 이른 것이다. 선생님들도 일반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현상이 교단에서도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어리석은 것은 아니다. 감추면 궁금해지고 궁금해지면 알아내고자 하는 것이 사람이 아닌가? 그러면 다음 사건을 놓고 좀 더 생각해 보자. “팔각정에서 내일 아침 8시에 만나자. 그래서 서울로 뜨자.” 이 말은 어느 3류 잡지에서 나오는 이야기도 아니고 전교조 선생님들이 서울집회에 가자는 것도 아니며 농민들이 여의도 집회에 가자고 띄우는 비상연락 또한 아니다. 순진한 시골고등학생들 사이에 귓속말로 오가는 말이었다. 다음날 아침 한 학급생 여덟명 중 여섯 명이 모였고 이들은 모두 학생부 선생님에 의해 학교로 끌려오고 말았다. 대사(?)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 사건은 금새 선생님들 사이에 전해지고 여러 반응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첫 번째 반응은 이렇다. 팔각정에 나타난 여섯 학생은 문제아이고, 나머지 두 학생은 모범학생이다. 좀 더 심한 말을 리얼하게 표현하면, “죽일 놈들”, “떼거리로 몰려서 지랄하고 있네.” 등이다. 두 번째 반응은 조금 다르다. ‘학생들이 왜 그런 일을 벌였을까?’ 하고 생각해 보는 부류이다. 한 학급이 여덟 명이라니 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농업계 고등학교에서는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사건의 발단을 이렇다. 금요일 오후 환경정리 심사가 있는 날이다. 담임선생님은 점심시간까지 환경정리를 끝낼 것을 명령했고 학생들은 수업시간에도 오전내내 게시물을 준비하느라 부산했다. 수업시간에 담당과목 선생님께 꾸중을 들은 것이 어디 한두 번인가? 그래도 상관없다.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쓰고 오리고 붙였다. 그러나 정해진 시간이 너무나 빨리 온 것일까? 학생들은 단체로 벌을 받았고 매를 면치 못했다. 억울했다. 할만큼은 했는데⋯⋯ 그래서 대사(?)를 꾸민 것이다. 어떤가. 여기까지 알게된 선생님들은 심적으로 학생들을 동정하게 된다. 이것이 두 번째 부류다. 세 번째 반응은 결과에 관계된 일이다. 뒤처리 문제까지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1. 자식들 건방져. 한번 죽어봐라. 다시 몽둥이를 찾아든다. 2. 자존심이 있으니까 은근슬쩍 넘어간다. 3. 잘못을 사과하고 용서를 빈다. 그리고 환경정리를 같이 한다. 4. 기타 이날 저녁 열띤 토론으로 소주안주는 따로 필요가 없었다. 안타까운 것은 첫 번째의 반응이나, 세 번째 반응의 1번 부류 선생님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이다. 만약 당신이 맡은 학생반에서 이러한 일이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 깊이 생각해보자. 지난 여름 우연히 어느 국민학교에 가게 되었다. 내가 몸담고 있는 고등학교가 아니기 때문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여기저기 다니다가 교실 뒤쪽 칠판과 환경게시물에 시선이 멈췄다. 세련되지 못한 붓글씨, 웃음이 나오는 그림들, 그리고 한쪽에 학급신문 등이 자유롭게 꾸며져 있었다. 보기에 좋았다. 옛날 일이 생각났다. 학급 게시판에 있던 학습란을 떼어내고 ‘기억해 봅시다’라는 란을 만들어 학생들의 주소와 생일을 적고 마지막 번호에 내 이름과 생일을 적어 넣었고, 시사란을 떼어내고 ‘조국은 하나’라는 란을 만들어 각종 통일관계 소식을 전하고, 벽에는 인형과 시화판넬을 걸었을 때 들리던 말, “어느반은 환경물이 너무 지저분 합니다. 규정된 대로 고치세요. 그리고 못을 박을 때는 말씀을 미리 하세요⋯” 쓴웃음이 나왔다. ‘우리의 교육은 거꾸로 가고 있다.’ 내가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유치원에 입학한 어린이는 학교에 가고 싶어 난리인데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로 올라갈수록 학교가 지옥으로 보이는 이유는 무얼까? 우리는 즐거운 학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좀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비록 상대가 학생일지라도 자기 의 잘못은 과감히 사과할 줄 알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선생님이 되어야 한다. 현상만을 볼려고 하지 말고 내면을 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학생들을 수족관 속의 열대어쯤으로 관망하지 말고 그들 속으로 뛰어 들어가 그들의 고민을 함께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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