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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11 | [특집]
우리에겐 아직 꿈이 있습니다.
운영의원․편집의원(2004-01-29 16:17:03)
벌써 5주년입니다. 힘겹게 버티어온 세월이기에 ‘벌써’라는 말이 더욱 실감 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매달 80여 쪽의 잡지를 만들어내면서, 두 달에 한번 백제기행을 마련하면서, 어렵사리 하나의 문화 행사를 마무리하기도 전에 다음 행사에 대한 고민으로 얼굴 한번 제대로 펴보지 못하면서, 또 한해를 마감하는 순간을 맞게 되었습니다. 과연 무엇을 위한 몸부림인지, 우리들 스스로 ‘마술사에 쫓기는 유령들처럼’ 이렇게 황망 스럽게 뛰어다니는 의미가 무엇인지 되새겨 볼 여유조차 누리지 못한 채 또 다른 시작을 위해 다시 몸을 추스려야 하는 계절이 되었습니다. 하다못해 우리를 성원해 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의 말씀 정도라도 전할 수 있는 여유는 있어야 하는 것인데 올해도 멀뚱멀뚱 담 넘어간 구렁이 신세입니다. “참 잘도 견딘다.” 우리에게 있어 이 말씀은 칭찬이 아니라 채찍입니다. ‘견디는 정도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는 뜻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약을 꿈꾼다는 건 언감생심. 현상을 유지하고 버틴다는 것 자체도 사실은 짐입니다. 모든 중심이 해체되고 있다고들 야단입니다. 상대주의를 넘어 무정부주의적 가치관이 모두 진지한 고민을 희화화하고 있습니다. 노래방, ‘가자 장미여관으로’, ‘뉴키즈 온더 블록’ 서태지 등의 현상에 대한 진지한 우려는 구시대적 편협함으로 매도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의미가 있으며 모든 것이 다 의미가 없다. 하늘 아래 모든 것은 다 불완전하고 중심도 없다. 하늘도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마당에서는 무엇인가 좀더 나은 것을 위해 진지해지는 것 자체가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운 ‘꼰대’의 짓입니다. 이런 무정부주의적 냉소가 우리를 힘들게 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적어도 우리의 신발을 놓아주지 않는 진흙뻘쯤은 될 것입니다. 5년여의 관록(?)에 대한 시기 때문인지 심심찮게 들려오는 뒷소리들도 우리를 짜증나게 하는 흙탕물 정도는 될 겝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를 더욱 힘겹게 하는 것은, 이 진흙뻘이 어디쯤에서 끝나는 것인지, 우리가 나갈 방향은 잘 잡고 있는 것인지, 그것을 헤쳐나갈 힘이 과연 우리에게 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과연 의미 있는 일인지 등에 대해 우리들 스스로가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입니다. 신발쯤이야 버리고 갈 수도 있습니다. 흙탕물이야 나중에 털어내면 그만 아닙니까? 무엇인지도 모르고 열심히 일에 매달릴 때가 좋았던가 봅니다. 어줍지도 않은 경력이 스스로를 뒤돌아보게 하고, 돌연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 하는 탄식이 우리도 모르는 새 슬며시 가을 바람에 실립니다. 그러나 이렇게 회의와 탄식에 잠기는 것 자체가 그냥저냥 현상에 안주하지는 않겠다는 우리들 결의의 산물임을 우리는 믿습니다. 어렵게 마련한 것이기는 하지만 현재의 상황에 급급하여 땜질식으로 일을 해나가지는 않겠다는 고집, 견디어 살아남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는 우리들 스스로의 욕심, 이런 것들에 근거한 새로운 방향모색의 진통일 게라는 얘기입니다. ‘타고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나뒹그는 나뭇잎은 썩어 새로운 생명의 자양분이 됩니다. 소매 끝에 스치는 스산한 바람에 우리가 마음을 움츠리지 않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푸르르기만 한 맑은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우리들 마음의 묵은 때를 씻어 내는 꿈을 꿀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겐 아직 꿈이 있습니다. 우리『문화저널』이 이 지역의 많은 이들의 참여와 정성으로 빚어지고, 그래서 이 지역을 아끼는 모든이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잡지가 되는 꿈. 진지하게 살아가기를 원하며 그래서 우리의 문화와 예술에 남다른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는 모든 이들의 책꽂이에 자랑스럽게 꽂히고 그들이 공연장이나 전시장을 찾을 때 듬직한 안내 책자로 그들 품에 안겨있는 꿈.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있게 권할 수 있는 잡지가 되어 너무 늘어난 정기독자의 관리 때문에 편집기자들이 짜증을 부리는 꿈. 재정이 조금은 넉넉해져 귀한 글을 주신 분들에게는 응분의 보답을 할 수 있는, 지금처럼 조금은 구차하게 빚진 기분으로 사랑을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보람을 나누어 가질 수 있게 되는 꿈. 신동엽 시인처럼 술을 마시지 않고도 우리는 종종 그러한 꿈을 꿉니다. 이러한 꿈이 그냥 꿈으로만 머무르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는 또 허리띠를 졸라맬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과 격려를 기대합니다. 아울러 이제까지 도움을 주신 모든 이들에게 좁은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운영의원․편집의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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