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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12 | [문화칼럼]
「같아요 문화」로 우리 미래를 볼 수 있겠는가
김민성․시인 (2004-01-29 16:30:51)
창 밖에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있다. 아이들에게 “지금 비가 오느냐?” 하고 물으면 “네. 비가 오는 것 같아요”하고 대답을 한다. “그 물건이 마음에 꼭 들었습니까.” 하고 점원이 물으면, 이리 저리 물건을 골라내던 주부는 “네. 이것이 좋은 것 같아요.” 하고 서슴없이 대답을 하는 것을 우리는 늘상 보아온다. 비가 오면 오고, 안 오면 안 오는 것이고, 선택한 물건이 마음에 들면 들고, 싫으면 싫은 것이지 왜 오는 비를 눈 앞에 또렷이 보면서도 「오는 것 같아요」 하는 것처럼 어법에도 걸맞지 않는 애매모호한 대답이 나오는 것인가. 그러면 먼저 「같아요 문화」를 말하기 전에 「~같아요」의 말부터 살펴 보기로 하자. 언제부터 이 「~같아요」하는 말이 일반 대중에게 퍼지기 시작했는 지는 몰라도 우리는 특히 여성층, 대학생층 방송인 또는 국회의원 연설에서까지, 심지어는 우리나라에 와 있는 외국인의대화에서도 최신 유행어를 멋있게 사용하고 있다는 과시(誇示)로 까지 번지면서 항용 이 신어(新語)(?)가 아무 부담없이 뿌리깊게 쓰여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잇다. 이런 말은 그 시대나 사회에서 새로 생겨 널리 퍼져 쓰이는 일종의 유행어(流行語)라고 볼 수 있겠고, 유행어는 어느 한 시기를 타고 유행하다가 자연스레 없어지고 마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 「~같아요」는 근 30년을 두고 끈질기게 폭 넓게 대중속에 자리잡고 있으니, 이는 이 시대상(時代相)을 그대로 반영하며 혹은 풍자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다시말해서 말이, 특히 한 유행어가 그 시대상을 반영하고 그 시대의 생활과 사상과 의식구조의 단면을 그대로 표출(表出)하는 구실을 한다면 이 「~같아요」라는 말의 발생 과정 및 원인과 배경을 살펴 봄으로써 오늘날의 현상과 위상을 그대로 분석하고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신어가 나온 시기는 1970년대로 짐작이 된다. 그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면 당시 우리나라는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호경기를 이룩했지만 바로 뒤를 쫓아 온 세계적인 에너지파동으로 막 궤도에 올랐던 경세성장이 뒷걸음치기 시작하면서 혼이 나기도 했고, 또 세계적으로 노정된 동서(東西)의 정치적인 불안과 혼돈의 판도와, 국내적으로는 남북의 대립 갈등 상태가 있었고, 또는 경제지상고 사회발전이 이룩되면서 부수적으로 전통(傳統)과 현대(現代)의 불협화음(不協和音)이 파생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모든 가치관의 변이등 불확실성의 요인이 커지면서 일반대중의 정신생활에도 불안의 요소가 끼어들게 되었으며, 생활환경과 사상에는 많은 변화와 영향을 주었던 시대적인 상황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출세를 위하여는 카멜레온과 같은 변신술과 배신의 논리가 판을 쳐야 했었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의리와 가치관이 뒤집히어 충혈된 눈으로 대상을 바라봐야 했었고, 인기를 위해서는 웃음을 팔아야하는 인간상실(人間喪失)의 불확실성시대의 사고방식과 행동철학이 팽배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를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 「~같아요」가 된 것이라 분석할 수 있다. 이를 다시 한번 살펴 보면 첫째는 한민족의 의식구조 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겸양이나 사양에서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측면도 생각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은 자기주장이나 생각을 얼른 밖에 내놓기를 싫어했고, 남에게 양보하고 조신(操身)하며, 자기희생에 만족하고 마는 민족의식이 있다. 이것을 은근과 끈기라고 미화도 했고, 동방예의지국의 겸손하는 미덕이라고 찬양도 했으니, 유교적 윤리도덕에 깊이 젖어있는 예절과 습속에서 나온 장점(長點)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사실은 이는 장점이 아니라 우리문화의 후진성 내지는 내향성의 타성에서 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둘째로는 비판정신의 결핍에서 온 것이다. 비판정신은 단순히 삶에 대한 조용한 관조가 아니라, 검토하는 일에서 시작하여 보다 나은 생활이나 위상을 꾀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민족은 오랫동안 피압박민족으로 억압 혹은 지배만 당하여 오면서 순종과 복종을 강요당하고 왔을 뿐으로, 비판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상실 또는 박탈당하고 만 것이다. 따라서 비판정신이 싹틀 겨를이 없었고, 우리가 사는 사회에 숨겨져 있는 부조리나 비인간화 현상에 주의를 환기시키고, 교정하기 보다는 방관자로 적당히 넘어 가려는 소극적 자세와 관념이 앞섰을 뿐 서로 자유스럽게 논박한다든지 자기성찰과 자기확신이 뒤따르지 못하는 민족의식으로 변질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무슨일에 처했을 때 확고한 단정을 내리지 못하고 가정(假定)을 앞 세우게 되면서 「네. 그럴 것 같아요」가 되었으며, 자기의 주장이 없이 큰 것에 말려버리는 사대주의(事大主義) 또는 무사안일주의(無事安逸主義)가 결부된 관념에서 「~같아요」가 오랫동안 시들지않고 뿌리를 내린 것이라고 판정을 내릴만 하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요지음 크게 인기를 얻고 있다. 나는 그런 것을 잘 모르지만, 노래가 아니면서 ‘노래같은’, 이야기가 아니면서 ‘이야기같은’, 춤이 아니면서 ‘춤같은’, 몸짓을 하면서 부르고 또 고함지르는 것을 좋아하는 이 시대의 청소년을 보면, 그 저변에는 확실히 과거의 「같아요 시대」에서 유입된 배경속에서 알게 모르게 「같아요 문화」에 젖으면서 커왔고, 거기에서 새롭게 생성(生成)된 「같아요 세대(?)」가 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요지음처럼 정치가 아니라 「정치같은」가짜 정치가 판을 치고, 문화가 아니라 「문화같은」 아류(亞流)문화가 우위(優位)에 서고, 종교가 아니라 「종교같은」사이비 저질 종교가 환영을 받는 세상이 지속하는한 「~같아요」하는 유행성최면어(流行性催眠語)(?)는 가장 적절한 표현방법이며 그 생명력이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판단이 선다. 사실 「같아요 정치」를 하기 때문에 탈법과 범법과 변절을 기호물처럼 좋아하는 정치배가 범람하여 국민대중이 정치에 식상한 지는 이미 오래되었고, 「같아요 종교」 때문에 휴거라는 종교 코메디를 연출하면서 성직자나 종교인의 신심(信心)과 위신은 비참하게 땅에 떨어져 주어 담을 수 없게 되었으며, 이제 마지막 보루로 지켜야할 것은 참다운 문화뿐이게 되었다. 그러나 문화도 그렇다. 분명 우리에게는 역사도 전통도 떳떳한 문화도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는 미국문화같은, 일본문화같은, 중국문화같은 「같아요 문화」만 있지 참다운 우리문화는 없게 되었다. 문화란 말이 이시대에서처 처럼 천대받는 때도 없을 것이다. 어떻게해서 그렇게 천대를 받게되었는지 문화란 말이 죽을 쑤고 멸시를 당하면서 놀이문화, 시위문화, 소비문화, 자동차문화는 고사하고, 찬거리문화, 증권문화, 폭력문화, 선거문화 등 문화란 말만 붙이면 문화가 되는 것처럼 착각하게 되었다. 이제 하루빨리 이 사시(斜視)에서 벗어나야 하겠다. 누가 말했듯이 「문화는 역사적 기억이다」그러나 새로운 미래를 창출하는 원동력인 것이다. 문화인은 그 원동력에 횃불을 당길 선구자인 것이다. 그러니 어찌 「같아요 문화」에 국척(跼蹐)하겠는가. 진실된 문화의 쟁취를 위해서 이제금 참된 문화인이 많이 뛰쳐 나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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