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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10 | [사람과사람]
새로운 모습 갖추기에 바쁜 나날 창단 10년째 맞는 극단 「황토」
윤희숙․문화저널 기자 (2004-01-29 16:33:35)
92년 올 한해가 극단 「황토」에게는 뼈저린 고통과 거듭남을 위한 각고의 시절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올여름 독단적인 극단의 운영으로 단원들과 마찰을 빚고 결국 상임연출이 극단을 떠나게된 사건의 파장은 컸다. 어렵게 따낸 동경국제연극제 출전이 무산된 것은 물론이고 거의 풍지박산 일보직전에 까지 이르러 서너명의 단원이 극적으로 매달려 사건을 수습하고 한때 존폐의 위기에까지 몰렸던 극단 「황토」는 새로운 운영체계를 갖추고 흩어져 있던 단원들을 하나둘씩 모아 구색을 갖추고 이전에 「황토」와 인연을 맺었던 이호중씨가 상임연출을 맡아 새모습 갖추기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걱정과 우려를 갖게 했던 「황토」는 이미 최근에 <그 입술에 파인 그늘>과 <탁류>를 이호중씨의 연출로 연달아 무대에 올려 그들이 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서너명의 단원들이 남아 절망적으로 지키던 썰렁했던 극단 연습실은 떠났다가 다시 찾아온 단원들과 보강된 단원들의 활동으로 활기를 되찾고 있다. 어려움에 처한 「황토」의 상임 연출 맡기를 선뜻 수락한 이호중씨는, 오전 9시부터 밤 12시까지는 어김없이 연습실을 지키는 연극에 전력투구할 수 있는 배우들이 다른 극단에서는 볼 수 없는 극단 「황토」만의 큰 재산이고 이런 바탕 아래서라면 「황토」는 곧 이전보다 훨씬 더 나은 극단이 될 수 있을거라는 가능성과 전망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황토」와 운명을 같이 하기로 했다고 말한다. 이전의 생활로 이미 굳어져 있던 연출과 배우, 선배와 후배 사이에 팽배한 불신감과 경직된 분위기를 바꾸고 단원들 사이에 신뢰감을 쌓는 일이 새롭게 출발하는 「황토」의 단원들에게 중요한 일이었다. 새로운 집행부와 상임 연출을 중심으로 이끌어온 짧은 기간 동안 단원들은 공연작의 연습과정과 일상활동을 통해 배우와 배우, 연출과 배우 사이에 신뢰감이 생기고 전반적인 극단의 운영이 자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최근 무대에 올린 두 작품은 중요한 변화의 분기점에 서있는 극단「황토」의 여러 가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창작 소극장 무대에 올린 신동엽원작<그 입술에 파인 그늘>은 사회참여적인 성격이 짙은 작품으로, 단정하기에 때이른 감이 있긴 하나 이전과는 다른 작품성향을 보여주었다. 또한 <그 입술에 파인 그늘>을 창작극회가 운영하는 창작소극장 무대에 올렸다는 점과 채만식원작 <탁류>를 군산의 극단 「동인무대」와 합동으로 올린점, 그리고 전주시립극단의 정기공연작 <석관>에 「황토」의 단원 두 명이 객원으로 출연하는 모습들은 전북연극계에 매우 고무적이면서 의외의 사건으로 받아 들여진다. 전북 연극계의 고질적인 문제중의 하나인 각 극단들 사이의 불화는 많은 연극인들을 안타깝게 했다. 그 원인이 어느 극단에 있건 간에 각 극단끼리의 밀접한 교류에 「황토」의 역할이 적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황토」 단원들 스스로도 이런 변화들을 기뻐하며 내년 상반기쯤에 지역의 극단들이 함께 모여 연합공연을 해낼 계획을 가지고 있다. 「황토」가 극단을 새롭게 추스르는 일중 가장 큰 일이 새식구를 맞이하는 일이다. 단원을 보강하는 문제는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지만 작품의 필요에 따라 단원을 보강하다보면 배우가 제대로 기량을 닦지 않은 상태에서 무대에 투입되게 되고, 이로 인한 단점들은 이미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신입단원모집을 미루게 되었다. 「황토」가 창단한지 10년이 지났지만 그 세월만큼의 연륜을 갖춘 탁월한 배우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연극에 대한 모습중 매력적인 허상만을 쫓아 덤벼드는 지망생들은 많으나 지금껏 그들을 탄탄한 연기자로 키워내는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여 결국 진정한 연극의 맛은 보지도 못하고 애꿎은 험한 일만 하다가 결국 극단을 떠나 버리는 일이 많다. 하지만 이런 일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황토」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연기를 하면서 스스로 갖추어야할 역량은 개인적인 노력으로 가능하겠지만 연극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제대로 알고 그 마력으로 수많은 어려운 상황들을 극복할 수 있는 진정한 연기자로서의 능력을 키우는데 안내자로서의 역할은 극단의 중요한 몫이다. 연극을 하겠다고 찾아오는 지망생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실시하고 오디션을 통과한 신입단원과 기존의 단원들에게 연극이론학습을 집중적으로 시키고 풍물연습과 신체훈련 등의 기능훈련을 병행해서 시켜 나갈 방침이다. 공연보다는 교육과 워크&#49406;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들을 열심히 가르치고 도와주고 기회를 준다면, 이런 과정을 통해 단원들 개개인이 연기자로서 필요한 연기력을 갖추고 자신들만의 독특한 개성과 색깔을 지니게 될 것이다. 86년 9월 개관했던 황토예술극장을 지난해 폐관함에 따라 「황토」는 대극장 공연을 위주로 해왔다. 소극장은 연극인들이 가지는 희망이자 연기활동의 터전이다. 소극장에서의 장기공연은 한 작품에 대해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보고 의식개발과 실험 의식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니기 때문에 작품의 완성도를 점차로 높여나갈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황토」만의 전용 소극장을 갖는 일이 지금의 사정으로는 어려운 일이지만 전주지역에서 그나마 창작소극장이 그대로 버텨주니 「황토」로서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극단 「황토」가 <그 입술에 파인 그늘>을 창작소극장 무대에 올린 사실은 그들 스스로에게 소극장 공연의 새로운 계기가 되었으며, 앞으로도 소극장 공연을 통해 관객들과의 긴 만남을 가질 예정이다. 극단 「황토」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가지는 자신감은 그들이 만드는 작품이 빈틈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자신감은 자칫 작품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작업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했지만 정확한 내용을 바탕으로 극단과 작품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평론이라면 그들로서도 못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매 공연때마다 설문지를 만들어 관객들의 평가와 반응을 모아 좋은 작품을 만드는데 활용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새로운 모습 만들기에 여념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 할 일들이 무척 많다. 연출에 대한 배우들의 요구를 폭넓게 수용하기 위해 내년 상반기 중에 중앙에서 활동하는 능력있고 유능한 연출가의 객원연출도 시도하고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조승철씨의 연출로 내년 1월 작품을 올릴 계획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12월 중순께에 올해를 마감하는 공연으로 <리타 길들이기>를 무대에 올린다. <리타 길들이기>는 영국의 극작가 윌리 러셀의 작품으로 지난 80년 영국 로얄 세익스피어 극단에 의해 런던에서 초연된 이래 장기공연에 들어간 작품으로 영화로도 제작되어 널리 알려진 희곡작품이다. 이번 작품은 어둡고 무거운 주제의 작품을 주로 연출해온 이호중씨가 처음으로 무대에 올리는 희곡작품이라 기대와 관심을 갖게 한다. 창단 열 돌 잔치도 제대로 못한 극단 「황토」가 아픈 상처를 딛고 더 나은 열 하나. 열 둘로 자라나 지역 연극의 대들보가 되라는 덕담으로 이 글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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