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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12 | [문화저널]
가슴으로 이어진 뜨거운 사랑 이야기
김형란․부안여상 2학년 (2004-01-29 16:59:28)
엊그저께 내린 촉촉한 비는 겨울을 재촉하고 있나보다. 가을의 운치를 만끽하기도 전에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아쉬움과 마음 한구석을 도둑 맞은 것 같은 허전함이 밀려온다. 자칫 잘못 하다간 우리들 마음마저도 어느새 매끈한 가지만 남아있는 보도블록 위의 나무처럼 삭막함이 차갑게 메워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문득 서점 문을 열었다. 『열아홉의 절망 끝에 부르는 하나의 사랑노래』 전부터 읽고 싶었던 정도상씨의 책이 선뜻 눈에 들어온다. 조심스레 뽑아든 이 책은 나에게 좀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만 헐렁한 주머니 속의 돈을 지불하고 한가한 서점을 빠져나왔다. 시골이면서도 네온사인이 현란한 아스팔트 길 위를 걸으면서 저 사람들은 저렇게들 즐거워서 깔깔대고 잇는데, 나만이 고민에 찬 로댕 마냥 외로워서 허둥대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괜시리 눈물 나도록 기분이 울적했는데 한밤중에 사귀게 된 열아홉의 ‘준석과 채옥, 형수’를 통해 또 다른 세계를 알게 되어 기쁘다. 또한 세월따 라 내 영혼이 얼마나 썩어가고 있는가를 가슴 저리게 느낄 수 있었고, 신선한 충격을 안겨 준 것 같아 추워가는 이 계절에 가슴만 포근하다. 솔직히 난 대학을 가기 위해 잠오는 눈을 억지로 치켜 세우면서 딱딱한 의자에 앉아 굳은 몸을 움직이며 공부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고교생들의 고통을 모른다. 성적을 위해 친구들을 멀리하고 날카로운 눈들이 번득이는 그런 교실의 삭막한 분위기를 모른다.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문제아’라고 따돌림 당하고 호적에서도 지워버린 자식 취급당하는 이들의 아픈 가슴과 쓸씀함 또한 모른다. 그러나 ‘준석과 채옥, 형수’ 그밖의 친구들이 고통과 절망을 씹으면서 서로를 사랑하기 위해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발버둥치는 모습을 보고 입시 위주의 낡은 교육 현실 속에서 많은 친구들이 버림받고 상처를 입어가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가슴 아프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남보다 조금 더 위에 서기 위해서, 나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떠받들어지고 싶어서, 옆 친구와 속시원한 말 한마디 못해보고 많은 친구들을 적대시하면서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현 사회에 물들어 가고 있는 도시의 친구들을 생각하게 됐다. 살아 움직여야 하는 교실이 죽어가는 교실이 되어 간다면 요즈음에 사회의 커다란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청소년 문제는 더욱더 큰 문제로 나타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따돌림 당하는 학생들로부터 대마초, 부탄가스, 음란비디오, 성폭행 등이 저질러진다는 뉴스가 공공연히 방송되고 있는 요즈음에, 정말로 깨끗하고 순수해야만 하는 청소년의 문화가 얼마나 많이 좀먹어 들어갔는지 모르지만 이건 결코 청소년들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억지로 찢어놓은 듯한 청바지를 덜렁거리며 입고 나다니고, 일본인처럼 깎은 머리를 버젓이 드러내 놓고 돌아다니는 것도 결코 우리 청소년만의 문제는 아니리라……. 부유층 자녀들이 백만원 짜리 수표를 들고 장난감을 사러 다니는 모습을 공공연하게 볼 수 있는 반면에, 방 값 이십만원이 없어서 일가족이 자살한 모습도 볼 수 있는 각박한 사회…쓰디쓴 아픔과 땅을 치며 통곡하고픈 슬픔과 진정 인간을 평등한 위치에 놓고 사랑할 줄 아는 따스한 마음을 좀체로 찾아볼 수 없듯이 우리 사회를 어떻게 해야 바로잡을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상대방을 위해서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사랑’이라는 채옥의 말이 해답의 실마리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며, 그래서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아름답게 보인다는 형수의 말 또한 나의 뇌리를 스친다. 모든이를 사랑하며 자신을 변화시켜 갈 수 있는 용기를 우리에게 기쁨의 전율을 느끼게 해 줄 것이라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 자신만이 외롭고 가슴 아프다고 생각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한 권의 책을 권하고 싶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주위 친구들도 나름대로 고민과 멍든 마음을 안고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비로소 남을 위해서 살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필요로 하는 만남보다는 나를 필요로 하는 만남의 참 의미를 깨닫게 되었을 때 비로소 한발 서숙한 자리에 설 수 있게 되리라…… 나를 위해 사는 삶보다는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 줄 아는 마음, 가슴과 가슴으로 이어진 뜨거운 ‘사랑’이야말론 훈훈한 정이 넘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근본 원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준석과 채옥의 입맞춤을 끝으로 마지막장을 조용히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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