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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1 | [한상봉의 시골살이]
사마귀는 왜 발을 들어 수레바퀴를 세우려 하는가
김유석․시인(2004-02-03 10:04:46)
당랑거철(螳螂拒轍) 혹은 당랑지부(螳螂之斧). 이는 춘추전국시대, 제(齊)나라 장공(莊公)이 사냥을 나갈 때 범아재비가 그 수레를 향하여 앞발을 들고 덤벼들었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것으로 흔히 제 분수를 모르고 부질없는 만용을 부리는 상황을 비유하는데 쓰여지는 말이다. 헌데 나는 년전에 같은 제목의 시를 쓰면서 좀 어줍은 생각들을 앓아본 적이 있다. 객쩍은 상상이지만 사마귀가 굴러오는 수레를 막아선 까닭을 관용화된 의미대로서가 아닌 뭐랄까. 사람사는 일에 비유하자면 자식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달리는 차바퀴 밑으로 대신 끌려들어간 어느 모성애라든가 불의에 맞서 의연히 일어선 어떤 열사의 모습이라든가 아니면, 사마귀라는 곤충만이 가진 독특한 본성이 아닐까하고. 그리고 적어도 후자의 생각 만큼은 어느 정도 근접했음을 얼마후, 그때 제나라 장공을 황송하게한 그 사마귀의 몇 백대 후손을 몸소 만나봄으로써 알게 되었다. 아마 작년 여름이었을 게다. 마빡을 벗겨내리는 후줄근한 땡볕을 한차례 소나기가 두드리고 간 화단가 땅바닥에 몸집으로 보아 어미는 못되고 학생쯤 되어보이는 사마귀 한 마리가 죽은 듯이 엎드려 있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어렸을 때만해도 풀섶에 흔해서 곁눈조차 주지 않았던 다소 신경질적으로 생긴 녀석들이었지만 그간 농약과 무분별한 쓰레기 방기 등으로 인한 생태계 오염으로 여간해서 통 눈에 띄지 않던 놈을 내 집 마당에서 보게된 우연이 하도 시기해서 나는 풀잎을 뜯어들고 수작을 붙여봤다. 그러자 죽은체 하고 있던 녀석이 벌떡 일어서더니 달아날 생각은커녕 왜, 짱께영화에서 곧잘 선뵈는 예의 그 포즈를 취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예컨대 사마귀는 생태학적으로 공격적인 본성을 가진 곤충인 듯 싶었다. 좀더 거칠게 다루었더니 더 성가신 자세를 취하다가 그제서야 상대가 풀잎이 아니란 것을 깨닫고는 슬슬 꽁무니를 빼는 녀석을 보며 대륙인들은 비유도 그럴싸하게 잘하지만 과장도 심하다는 누군가의 말을 씁쓰레 떠올려야만 했다. 그런 사마귀의 모습에서 정작 내가 시로 형상회한 것은 이땅의 농민이었다. 오버랩시킬수록 수레를 향해 발을 세운 사마귀의 모습은 영락없이 줄곧 이나라 사직의 그늘이 되어왔던 농투성이들이었다. 지난날은 고사하고 작금에 이르러 농사물 수입개방이라는 거대한 수레바퀴 앞에 초라하게 버티고 선 바로 그 모습이었던 것이다. “안된다 못한다” 외장을 치면서도 웬지 뒤가 마려운 우루과이라운드협상, 문제는 쌀이다. 한때는 비교우위론이니 국제적인 추이니 운운하며 대두되다가 잠시 식량안보상의 비교역적 품목으로 어필되어 온 국민의 회의적인 반응을 얻는가 싶더니 최근 협상의 급진전에 따라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쌀개방 대세론, 교과서적인 경제논리를 저변으로 일부 언론과 학계에서 제기하고 있는 쌀개방불가피론의 시비는 무엇이며 과연 누구를 위한 명분인지, 등이 물음표처럼 흰 이 땅의 머슴들은 새해벽초부터 주인의 눈치를 살피며 모름지기 젖어드는 패배주의를 털어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쌀에 대한 개방론자들의 기본 시각은 한마디로 합리적인 경제 논리에 입각해 이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으로 그 주요논지는 크게 세가지로 요약된다. 그 첫째가 쌀수입개방이 국가전체에 이익이 된다는 주장이다. 우리 쌀값보다 싼 외국쌀을 사먹을 경우 식비도 절감될 뿐아니라 추곡수매 등에 소요되는 쌀관련 지출을 농업구조조정 등 다른 부문에 돌릴 수 있어 훨씬 효율적이고 농업에도 이익이 된다는 시각으로 쌀 수입개방반대에만 집착, 협상에서 많은 것을 양보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 논지는 쌀의 수입개방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는 주장으로 현재 세계경제의 흐름을 볼 때 개방화는 이미 선택의 여지가없는 단계에 와 있는데도 이를 피하려는 것은 결국 개방을 막지도 못하면서 대응도 하지 못하는 이중의 손해를 감수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쌀 개방론의 세 번째 논지로는 빗장을 풀어도 외국산과 충분히 경쟁이 가능하다는 주장인데, 우리 쌀의 높은 품질을 감안하면 외국쌀이 들어와 값싸게 팔린다해도 쌀의 가계비중이 작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사먹지 않을 것이라고 농민들을 안심시키는 자상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렇듯 경제논리만 내세워 불가피성을 강변하는 개방론자들의 시각은 대체로 UR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미국과 유럽공동체의 첨예한 대립에서 볼 수 있듯(미국은 우루과이라운드를 통해 유럽공동체에게 빼앗긴 세계 농산물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회복하는 기회로 삼으려 하고 있고, 유럽공동체는 어렵게 이룩한 역내(域內) 농업의 부흥기반을 지키려 하고 있음) UR협상은 냉혹한 국제사회에서의 정치적인 힘의 논리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지 경제논리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님을 주지하지 못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쌀시장을 개방함으로써 쌀이라는 상품을 소비자에게 값싸게 공급할 수 있고 무역마찰의 해소를 통해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 품목인 공산품의 수출신장을 가져올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지만 쌀개방으로 얻는 이익은 단기적이고 제한적인 것으로, 현재 쌀을 보호함으로써 창출되는 경제적인 가치보다 반드시 크다고 할 수 없음을 간과하고 이싿. 개방으로 인한 농가의 직접피해는 물론 농지의 유휴화, 농촌 지역의 구매력 가퇴로 인한 지방 경제의 위축, 쌀생산 축소로 인한 비료․농약 등 쌀 관련산업의 쇠퇴 등등의 간접적인 피해도 고려하지 않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가 쌀개방 반대를 관철하기 위한 서비스, 공산품분야를 대폭 양보했다는 주장 역시 UR협상의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데서 기이된 것이다. UR협상은 7개그룹별로 나뉘어 진행되는 다자간 무역협상이다. 따라서 각 그룹별로 무든 회원국에 무차별적으로 적용되는 이른바 일반협정을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인 만큼 그룹내의 각 품목간 또는 그룹간 교환적보호는 구조적을 불가능하고 특정국가간에 개별적인 양보도 있으 수 없는 것이 사실임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쌀은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두말할 나위없이 중요한 생명줄이다. 또한 우리 농업의 전부라해도 과언이 아니 만큼 농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개방론자들은 건듯하면 일본에 비유하거나 의지하려고 애쓰지만 농업소득면에서나 생산여건에서 열악한 실정에 처해있는 우리의 농업을 일본과 단순비교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다. 식량안보로서의 쌀의 중요성은 물론 쌀의 경제외적 기능 역시 쌀시장을 보호해야 할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이다. 바람, 홍수 등에 의한 토양유실을 막아주는 논의 환경보전기능을 충실히 수행한다. 그리고 수천년동안 이어져 내려온 쌀을 중심으로한 문화와 국민정서 역시 경제적 가치로는 따질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그러나 정말 안해도 괜찮을 것인가, 죽어도 못하겠다는 말을 언제까지 믿어도 되는 것인지 자꾸 의심만 가는 하 수상한 세월. 수레바퀴를 향해 발을 든 사마귀는 생각하는 관점에 따라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공격적인 모습일 경우에는 무모한 만용이 되지만 방어적인 자세일 때는 못내 처연한 느낌을 떨칠 수 없다. 그런 후자의 생각 속에 오늘의 농투성이 얼굴을 그려넣어 보는 것은 혼자만의 난해한 사랑일까. 깔려죽는 한이 있더래도 수레바퀴를 향해 끝까지 발을 세워야 할 이 땅의 사마귀들이여 지금은, 부질없는 만용만으로 치부해버릴 것이 아니라 절망의 힘으로 의연히 막아선 사마귀의 슬픈 용기를 다시 한 번 돌아다볼 때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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