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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1 | [시]
신동엽시인의 「산문시Ⅰ」를 읽고
정 경 심․전북대 영문과 2년 (2004-02-03 10:22:44)
시와 가을은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 가을과 좋은 시는 사람들을 변화시켜준다는 점에서 서로 닮아있다. 아무리 감정이 메말라 있는 사람도 가을이 되면 조금은 겸허한 자세가 되어 자신의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이 때 시보다 더 좋은 동반자는 없을 것이다. 한때 나는 시라는 것을 나와는 무관한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단정해 버린 적이 있다. 시를 읽으면서 문득문득 그 때가 떠오르곤 하는데, 대학 1년 시절 단발머리에 호기심과 새로운 세계에 대한 불안감으로 두리번거리며, 너무도 다른, 심지어는 극과 극을 달리고 있는 진리가 상존하고 있음에 무척이나 당혹스러워 했다. 바로 그 첫 번째가 의미있는 문학에 대한 나의 가치관과 대학에서의 가치관이 너무도 다른데에 대한 당혹감이었다. 이제까지 나를 감동시키고, 내가 밤새워 암송했던 시들과, 대학신문이건 시화전이건 대학내에서 볼 수 있는 대개의 시들은 그 성향이 너무도 달랐다. 이 시들은 한결같이 강한 이념성을 가지고 거칠고 직접적인 언어로 시인의 이름을 강요하려는 듯 보이기 때문에 나에게는 반발감만이 생겨났다. 또한 이제까지 아무런 비판도 가하지 않고 받아들인 언어장난에 지나지 않는 시들에 대해서도 혐오감을 느꼈다. 이러한 상태에서 나 스스로가 어떠한 결론을 내린다는 것은 너무도 벅찬 일이었다. 결국 나는 시에 대한 가치관의 부재상태로 시에 대한 관심마저 상실하게 되었다. 이런 나에게 신동엽 시인의 시는 시에 대한 나의 생각을 재정립하도록 하는 고무적인 것이었다. 그의 시에는 거부감이 없다. 큰 목소리의 직접적인 토론도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한낱 껍데기에 불과한 언어장난 또한 아니다. 그는 사회적 부조리나 민중의 아픔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자신만의 시작에서 진실되고 절제된 음성으로 이야기한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는 자잔하면서도 그 뒷면에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특히 그의 「산문시(1)」은 내가 고민하던 문제들에 대한 최선의 답을 던져주는 듯하였다. 겉으로 드러나는 이 시의 느낌은 아주 평범해 보인다. 그러나 시 전체를 관통하여 무언가 크게 잘못되어가고 있는 우리 사회에 대한 가한 비판의식이 서려있다. 그러면서도 거부감을 주지 않는다. 그냥 쉽게 읽고 지나쳐 버릴 수도 없고, 그래서 다시 하번 생각해 보게하는 묘한 힘을 지니고 있다. 이 시에 나오는 잘 사는 나라, 평화로운 중립국,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모습은 마땅히 우리의 모습이어야 할 것 같다. 모든 권력을 손아귀에 쥐고 우리나라 전체를 뒤흔드는 그런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아니라, 딸아이의 손을 잡고 칫솔사러 나오는 대통령이나 삼등열차 타고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의 모습에는 우리에게 잔잔한 미소를 떠올리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 이들에게서는 자신들의 정치적 욕심을 챙기는 정치인이라기 보다는 민중의 삶을 알기에 민중이 진정 원하는 바를 실현시켜줄 것 같은 강한 마음이 생겨난다. 또 퇴근하는 광부의 뒷주머니에 꽂혀있는 기름 묻은 책, 하이데거, 러셀, 헤밍웨이와 모두가 대학 나온 인텔리이며 트럭을 두 대씩이나 가진 예술을 사랑하는 농민들의 모습에서는 불결한 작업장에서의 우울한 표정이나 추곡수매를 걱정하는 농민들의 한숨일랑 잊어버리게 한다. 그러면서도 마지막,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가더라는 부분에서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이야기가 현실과는 너무도 동떨어져 있음이 상기되어서인지 시인의 자조적 웃음이 스며있다. 또한 ‘허허……, 과연 대통령 같은 정치인이 시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세상이 오기나 할른지……’라는 강한 의구심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왠지 이 시를 읽고 있으면 기분 좋은 꿈을 하나 꾸고 있는 것 같다. 흐뭇한 웃음이 입가에 번지며 즐거운 기분이 들다가도 시가 끝나고 꿈이 깨면 정직하게 성실히 사는 사람이 잘 살게 된다는 삶의 진실이 통하지 못하고, 많은 부분이 왜곡된채 진실을 이조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커다랗게 다가와 나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아마 나도 신동엽 시인처럼 진실된 삶을 살고 싶은가 보다. 그래서 가슴이 이토록 아픈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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