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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3 | [서평]
모든 희망의 이름으로 모두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사람의 문학 (1993년, 전북민문협, 도서출판 참나무)
전 정 구 / 전북대교수․문학평론 (2004-02-03 14:07:10)
전북지역에는 매년 이러저러한 단체나 동인회 이름으로 수많은 형태의 문학잡지들이 발간되고 있다. 이러한 잡지들은 그것들 나름대로의 성격이나 의의를 갖고 있지만, 동시에 그것들은 제책과 표지디자인, 편집체제를 비롯하여 필진구성에 이르기까지 매끄럽고 세련되고 유연한 모습과는 일정한 거리를 느끼게하는 ‘오직 척박한 문학토양을 가꾸는 밑거름’으로서의 지방적 한계를 너무나 뚜렷이 보여준 예가 비일비재했다. 1992년을 마감하는 12월에 창간된 “사람의 문학‘은 여러 가지 점에서 이러한 지역적 한계를 거뜬이 뛰어 넘어 전국적으로 내놓아도 과히 부끄럽지 않을만큼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동시에 이 창간호는 1988년 6월에 창립된 전북민족문학인협의회가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세월동안 이 지역의 민중문학 발전을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기획해 왔는가‘라는 질책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 기존 문학집단의 보수적 성향에 일대 반격을 가하는 변화를 외친 점, 그 변화의 외침이 민족문학작가회의라는 중앙단체와의 차별성/독자성으로 가시화되고 있는 점, 다음 세대의 문학을 짊어질 젊음을 바탕으로 민족문학의 꽃씨를 가꾸는 희망을 정초하는 활력을 조직화 한 점 등, ”사람의 문학“은 잡지편집과 내용구성에서 전북지역 뿐만이 아니라 여타지역 문학인들의 주목에 값 할만 하다. 외형적인 변화는 물론이고, 내용적인 면에서도 이 잡지는 중량감있는 ’문학적 읽을거리‘를 제공함으로써 탈중심의 문학적 선도성을 보여주고 있다. 신석정 시의 촛불의 상징적 의미를, 당대의 역사적 현실과 결부시켜 ‘일제하의 소시민적 삶에 대한 거부와 혐오와 고통의 형상화’로 파악한 정양의 〔辛夕?의 촛불〕은, 비평적 감식안과 시인적 감수성이 조화를 이룬 하나의 예이다. 박봉우 시인의 시적 삶을 ‘뼈와 살의 고통스런 비명’으로 읽어낸 김익두의 〔통일의 삶, 통일의 시학〕, 자신의 소설 〔휴전선〕을 박봉우 시인의 ‘토막난 생애’에 결부시켜 얄밉지 않게 얽어놓은 이병천의 〔휴전선의 삶과 토막난 생애〕를 비롯하여 박봉우 시인에 대한 회상을 다른 시인의 친구 김중배의 〔‘새벽의 사람’ ‘새벽의 시인’〕은, 휴전선의 장벽에 가로막혀 토막난 생애를 이 땅에 묻어야 했던 불행했던 한 시인의 문학이 무덤 속에서 벌떡 일어나 화려한 재생/조명을 기약하는 ‘희망’의 기획물이다. 김저운 우한용 이광재의 신작소설, 김유석 김판용 박대호 박성구 심호택 안도현 우미자 최형의 시에 이르기까지 괄목할만한 문학적 역량을 과시하는 원로 중견 신진 시인들의 신작 시편들도 일독의 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괄목상대의 문학적 형상물들이, 진정한 변화의 추동력의 원천을 대중 속에서 확인하고 그러한 확인을 바탕으로 ‘이 땅의 대다수 민중/시민’으로 지칭되여질 수 있는 ‘사람’에게 희망을 건 민문연 창간호의 슬로건과 어떻게 부합되느냐가 문제이다. “진정한 ‘변화’는 지금, 이곳의 대중들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그리 될 것이라는 귀중한 확신을 우리는 1992년에 얻었다. 사회 각 부문에서 눈부시게 성장하고있는 대중운동과 이 원동의 주체인 대중이야말로 우리에게 모든 희망의 이름으로 다가오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끝까지 ‘사람’에게 희망을 걸기로 했으며 그래서 책 이름도 ”사람의 문학“이 담보하고 있는 문학내용은 과연 일치하는가? 민족문학의 꽃씨를 어떻게 구체화했고, ‘사람의 문학’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제호를 형상화한 문예물이 무엇인가에 대한 예를 이 잡지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 잡지는 민족문학의 꽃씨를 뿌리고 싹티우는 구체적 작업과 사람에게 거는 희망을 형상화하는 작업을 결여하고 있다. 내건 문학적 구호와 그것의 결과로서의 문학적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아쉬움이, 아직은 출발의 단계에서 걸음마조차 힘겨운 오늘의 이 지역의 문학적 현실을 감안하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바람들이지만 “사람의 문학”이 민족/민중 전체를 포괄하는 ‘사람의문학’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꼭 유념해야 할 사항들이다. 지금은 중단상태에 있는 부산지역의 “지평”, 활발하게 걸음마를 시작한 경북대구지역의 “?와 ??”등, 중심부/서울로부터 떨어져 나와 지방/주변부로 확산되는 문학활동들은, 실패이든 성공이든 주고 받아야하고 권장되어야하고 끊임없이 지속되어야 할 지방자치시대의 문예운동이라는 성격을 갖는다. 21세기는 분명 중앙의 몇몇 유수한 잡지들이 정통적인 권위 속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시대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의 문학”은 이 지역의 보수성과 폐쇄성을 극복하는 젊음, 비회원의 작품들을 수용하는 개방성, 지역문화의 영역을 확장하는 대중성/민중성 확보, 신진 문학인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매체역할을 통하여 전분지역을 뛰어넘어 민족 전체의 문학으로 확산되어야 한다. 변화는 항상 새로운 세대들에 의하여 가능해 왔다. “사람의 문학”이 다소 침체되고 현실 안주적인 이 지역문단에 참신한 활력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 잡지의 편집진의 힘찬건투와 함께, ‘모든 희망의 이름으로 모두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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