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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3 | [특집]
서점에서 살수 없는 책
조 명 원 / 편집위원․주부 (2004-02-03 14:24:25)
딸아이가 돌이 되기도 전에 세계명작이라는 이름으로 선별된 동화집을 구입한 적이 있다. 이른감은 있었지만, 처음엔 그저 그림책으로 나중엔 이야기책으로 읽힐 수 있으리라는 욕심에 가계에서 무리인 줄 알면서 감행했다. 꽤 유명한 출판사에서 믿을만한 편집자들이 엮어 냈다는 최소한의 정보만 가지고 충동구매를 한 셈인데. 그것도 집집마다 방문판매하는 아주머니를 통해서였다. 그 뒤 배달되어온 50권의 책과 25개의 테이프를 점검하면서 상품을 보지 않고 성급히 결정한 미욱함을 탓해야 했다. 왜냐하면, 엄마들이 아이의 옷을 살 때 흔히 부리는 욕심처럼 오래오래 (아마 ‘국민학생이 되어서 까지’라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읽히기에는 내용이 너무 간략하게 압축되어 있었고 그 때문에 줄거리 이해도 쉽지 않게 여겨졌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그중 한 두권을 제일 즐기는 장난감(!)으로 가까이 하게 되었고, 엄마의 우려에 상관없이 동화의 세계를 나름대로 체화해가는 듯 했다. 그 뒤로는 동화책에 대한 관심이 다른 놀이에 밀려 조금씩 숙어드는 듯 싶더니 다섯 살 되던 어느 날인가는 다 낡고 찢어진 그 애호품을 사촌동생에게 선물하는 것이 아닌가. 주고 나서도 처음엔 좀 섭섭한 눈치더니 곧 포기하는 아량을 보이는 아이의 심성이 기특해서 빠진것들을 채워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결과부터 말하면, 서점에서는 그 책을 살 수 없었다. 아니 아예 볼 수도 없었다. 그럼 서점에 갔던 이야기를 해보자. 솔직히 아이의 책을 사기위해 서점에 가기는 처음이었다. 당연히 진열된 장소도 알지 못했다. 그곳은 안내인의 도움을 받을 필요까지 없게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한켠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서 내가 원하는 책을 찾는 일은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에 나오는 수도원의 미로를 헤매는 것 못지 않았다. 거의 30여분을 그렇게 맴돈 뒤(물론, 그 한가지 책만 찾았던 것 아니고 이왕 온김에 무슨 좋은 책이 있나 뒤적여 본 탁도 있다), 급기야 그 코너를 담당하는 안내인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는데 여러사람을 거쳐 전달된 대답은 “없다”는 한 마디였다. 같은 출판사에서 발간된 다른 책들이 있는 것을 확인한 나로서는 참으로 허망한 느낌이었데, 그렇다고 “왜없냐”고 따질 엄두도 나지 않았다. 단지 없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 기다려야 했던 시간과 책방이라고는 도무지 생각할 수 없이 소란스러운(대개는 책을 찾는 직원들의 인터폰과 안내방송 때문이었다) 분위기를 떠올린 때문이었다. 또 내가 필요로 하는 책을 찾아야 하는 일이 아직 남은 탓이기도 했다. 거의 비슷한 과정을 거쳐 몇권을 사는 데 성공(?)하고 나니 아이에게 빈손으로 돌아가야 할 일이 미안해졌다. 다시 어린이 코너로 진입, 사람들의 엉덩이와 부딪치면서 보물찾기를 한 끝에 전래동화에 색칠공부가 곁들인 가벼운 책을 뽑아들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귀가했다(그때까지만 해도 아이에게“겨우 이거야?”라는 핀잔을 들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사실을 밝혀야 겠다). 가뜩이나 속상했던 터에 도대체 우리 주변에는 왜 그리 괜찮은 서점이 없을까, 새삼스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내가 겪은 경우는 서점의 문제라기보다는 출판의 문제일 수도 있다. 더 나아가서는 우리 나라의 아동작가 부족이라는 보다 중요한 사안일 수도 있겠고. 하지만 푹 곯아버린 속은 모른체 하면서 시들시들 말라비틀어진 수박껍질과 그 떨어져 나간 꼭지를 붙들고 실갱이 하는 것은, 풍족하지 않을망정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고(이를테면 연령별이라든가 주요 관심분야에 따른 분류)구매자의 편의를 도모하는 일은 전적을 h서점의 몫이라는 생각에서이다. 거기에 한가지 더 바램이 있다면, 어린이 전문서점이 있으면 하는 것이다. 어른들 대상의 전문 서점들도 문을 닫는 판국에 왠 망발이냐 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책을 가장 많이 읽어야 할 사람들이야말로 우리의 자라나는 새싹들임을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건 아닌지, 책에 관계하는 분들은 한 번쯤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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